공동체사회

‘무상’이 과연 전략적인가?

pulmaemi 2011. 2. 16. 06:45



(마케터의 ‘아이디어 Lab’ / 마케터 / 2011-02-15)


21세를 돌파할 성장동력, 복지

 

복지는 한국사회가 보다 질 높은 성장을 하기 위한 필수적인 도구다. 어쩌면 21세기를 돌파하기 위한 마지막 동력일지도 모른다. 이거 없이 고령화 사회의 파도를 절대 넘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활력을 위해서도 복지는 이제 대세다. 결국, 이걸 부정하는 사람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물론 몇몇 거리의 할배들을 무조건 반대할 거다. 하지만 박근혜도 참여정부 비전 2030을 베껴 복지를 떠드는 상황에서 할배들이 아무리 날뛰어도 어차피 대세를 거스를 순 없다. 그만큼 복지는 시대의 당위처럼 우리 곁에 다가왔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이 무능한 국정운영을 보면서 국민들은 더 불안함을 느껴 복지의 따스함에 기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욕망의 불꽃이 훨훨 타올랐던 07년에 비해서 지금은 확실히 다르다

 

굳이 자유와 인권을 들먹이지 않아도 먹고사는 거 자체가 지난 시절에 비해 엄청 힘들어졌다. 고환율에 기대어 수출기업은 여전히 호황이라고 하지만 국내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오른다. 우스운 비유일지 모르나 강남역 포장마차의 떡볶이 가격이 이명박 임기 내에 벌써 두 번이나 올랐다. 역대정부에서 이런 적이 없었다.

 

경제를 살린다는 욕망 하나로 집권한 이명박 정부인데 이제 사람들은 그것이 허위였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그래서 더 복지에 민감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욕망이 휘몰아칠 땐 스스로 미래를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불꽃이 허위와 기만이란 걸 알게 되니 두려움이 닥친 거다. 아무튼, 이런 연유로 복지가 분위기를 탄 것은 사실이다.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되었다.


불필요한 분열과 분란

▲ 20일 한국교총 다산홀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공교육살리기 학부모 연합 등 보수성향의 35개 학부모·시민단체와 함께 ‘포퓰리즘 전면무상급식 반대’ 공동선언식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울시 언론과

 

문제는 복지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가운데 불필요한 논쟁이 너무도 많다는 거다. 여기서 그들이 벌이는 논쟁이란 합의와 균형을 맞추기 위한 논쟁이 아니다. 상대방을 자신과 차별화시키기 위한 논쟁이다. 이건 정치적 술수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결국, 복지라는 정책을 가지고 접근하는 게 아니라 선거라는 정치적 행위를 놓고 복지를 이용해먹는 거다. 지금 이런 수준 낮은 논쟁들이 여기저기서 벌어진다.

 

서울시장 오세훈이 벌이는 이 치졸한 논쟁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전국의 모든 시도단체장이 초등학교 급식을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대세로 인정했는데 유독 서울시장 오세훈만 이 어린아이들의 밥값을 가지고 실랑이 중이다. 예산이 부족하다면 시기를 늦추던가 아니면 다른 예산과 타협을 통해 조절하면 된다.

 

이걸 마치 나라 망치는 무슨 거대한 이념적 충돌인양 떠벌리면서 결국 주민투표까지 가자고 한다. 이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정략적인 것이다. 시민의 대표로 선출된 정상적인 행정가라면 이렇게 무책임하게 행동해선 안 된다. 초등학생 의무급식이 포플리즘이라면 그럼 이제까지 오 시장이 벌려놓은 한강르네상스니, 밤섬 오페라하우스니, 디자인 서울이니 뭐니 하는 전시행정들은 과연 뭔가?

 

이쯤에서 그만 이상을 찾고 칭얼거림을 멈추길 바란다. 하지만, 이미 선거전략화된 오세훈 시장 입장에서 이 걸음을 멈추진 못할 것이다. 결국, 이 흐름은 그가 파멸해야 멈출 수 있다. 불행한 정치적 파국을 맞이할 것이다. 이건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이건희 손자 타령

 

언젠가부터 복지이야기를 하면 ‘복지 = 무상’이라는 등식으로 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무상이면 복지요 무상이 아니면 복지가 아니’라는 사람도 등장했다. 이러다 보니 ‘증세를 해야 복지’라는 논리, ‘증세할 필요 없다’는 논리가 뒤엉킨다. 이 틈을 틈타 조중동은 복지 과잉으로 남유럽과 일본이 망했다는 교묘한 이간질까지 집어넣는다.

앞서 말한 대로 서울시는 급식을 ‘왜 공짜로, 부자에게 무상으로 하냐’를 가지고 날을 새워가며 싸웠다. 근데 따져보자. 과연 이게 공짜 급식이 맞나?. 국가의 모든 복지는 다 세금을 재원으로 한다.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무상이든 뭐든 복지재정은 다 세금이다.

 

결국, 무상급식이 아니라 세금급식인 거다. 그렇다면 세금을 누가 내는가? 세금은 국민들이 소득에 따라 내는 거다. 결국, 복지란 소득과 책임에 따라 국민들이 세금을 내고 그 세금을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지출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건희 손자가 그냥 밥 먹는 건 하등 뭐라 할 이유가 없다. 세금 내고 그 세금으로 밥 먹는데 왜 난리인가.

 

초등학생들에게 밥을 먹이는 것은 군인에게 국가가 군복을 입히고 밥을 먹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의무교육의 일환이니 먹이는 거다. 다른 이유가 뭐가 있나. 그동안은 재원이 마땅치 않아서 국가가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한 것이고 이제 재원을 마련했으니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또한, 재원을 각각 국민이 형편에 맞게 세금으로 이미 다 냈다. 당최 뭐가 문제란 말인가. 다시 말하지만 급식은 무상이 아닌 거다.


‘무상’이라는 단어의 위험함

 

근데 애초에 이 논쟁은 무상이라는 단어를 개념으로 설정한 측의 위험천만한 대응 때문이기도 하다. 무상이 주는 단어적 섹시함이 지난 6·2 지방선거의 쟁패를 갈랐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그럴까?. 내 판단으로 그건 착각이다. 만일 현 정부의 4대강 삽질이 없었다면 무상급식 이슈는 선거의 패배를 자초할 만한 이슈가 될 수 있었다.

유권자들이 무상급식 메시지에 동조를 보낸 건 4대강 예산이 무려 20조라는 가늠이 있었기 때문이다. “4대강에 20조를 쏟아붓는데 그깟 몇백억 몇천억 때문에 애들 밥을 굶겨?”라는 정서적 공감이 무상급식이라는 위험한 단어의 약점을 메운 것이다. 만일 4대강 삽질이라는 희대의 뻘짓이 없었다면 무상급식은 정확하게 여론을 반반으로 나눌 이슈였다.

 

중도성향의 중간층 역시 과연 모두에게 무상이 옳으냐 그르냐로 찬반을 나눴을 것이다. 반반으로 갈라지면 세대 간 투표율 차이에 의해서 선거는 자동적으로 해보나마나다. 저쪽 반은 투표율이 높고 이쪽 반은 투표율이 낮다. 결국, 아마 무상이라는 단어 때문에 진보진영은 패배했을 것이다.

 

이점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고 여전히 무상이라는 단어가 마치 하나의 프레임을 형성한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참 멍청한 거다. 어찌 보면 진보진영은 마케팅적 전략가도 부재하지만 어쩌면 국어전문가마저 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생각의 깊이나 전략적 사고가 너무도 협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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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오판하니 야권의 맏형이라는 민주당도 위험천만한 짓에 동참한다.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 등록금 이른바 ‘3+1 복지’라는 패키지다. 다시 말하지만 네이밍 자체가 너무도 황당하다. 나쁘게 말하면 공갈이요, 좋게 말해도 무모하다고밖에 이야기할 수 없다.

 

우선 원칙적으로 볼 때 이 말은 거짓말이다. 무상의료라고 하면 사람들은 돈을 하나도 안내는 의료로 인식한다. 그러나 민주당의 정책은 돈을 하나도 안내는 게 아니다. 의료보험의 보험 커버리지를 높이는 거다. 그러면서 자동으로 의료보험은 인상된다. 이게 무슨 무상의료인가.

 

그런데 이런 걸 지적하면 이건 선거 마케팅용 구호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상대방과 차별화를 위해서 포지셔닝하는 일종의 기준, 즉 프레임이라는 거다. 이 대목에서 ‘어이쿠’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진보진영은 프레임이라는 개념을 너무도 모른다.

 

한번은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가 토론회에 나와서 복지증세를 거론했다. 그는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예를 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복지 포퓰리즘’이다, ‘세금폭탄’이라고 하니까 민주당이 약간 주춤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몇 년 전에 출간된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프레임론에서 보듯이 사실은 보수세력까지도 복지프레임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중요한 정치적 계기가 놓여 있는 것이고 저는 이때 민주당이 주춤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난 순간 이 사람이 조지 레이코프의 책을 보기는 한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에 보면 이런 글귀가 나온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경구를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그들의 언어와 그들의 프레임을 사용하여 그들의 주장에 대항한다면 그들의 프레임만 더욱 굳게 다져 주고 패배할 것입니다.” - 조지 레이코프

 

조지 레이코프는 보수가 이야기하는 언어와 그들의 프레임을 사용하여 그들에 대항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조승수 대표는 보수가 복지 안에 들어왔으니 마음 놓고 세금 이야기를 해도 된다고 한다. 다시 말하지만 세금은 보수의 언어요 보수의 프레임이다. 세금 문제를 복지에 접목시키는 순간 모든 상황은 보수의 프레임으로 바뀌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이미 지난 선거에서 세금폭탄이라는 프레임으로 승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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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을 대표한다는 정치인의 전략적 워딩 구사능력이 이처럼 부족하다. 그리고 이런 전략적 대응 부재가 불필요한 혼란을 만들고 불필요한 논쟁을 만들어 복지의 진전을 막는 것인지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복지는 21세기 한국사회의 유일한 성장전략이다. 여기까지가 보수조차 반박 못할 진보의 대세 지점이다. 그렇다면 이 대세를 좀 더 강화할 개념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그게 과연 무상이라는 단어일까?

 

복지를 진보가 대세로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거기에 걸맞은 진보의 개념을 등치 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진보적 가치는 가장 한국적인 가치이다. 한국적 가치의 가장 큰 덕목은 협동이다. 서로 돕고 어려움을 나누는 전통이 바로 가장 한국적인 전통이다. 또한, 진보의 전통은 헌신과 보살핌이다. 이건 우리 어머니의 마음과 같다. 마지막으로 진보의 가치는 정의로움이다. 진보는 항상 옳고 도덕적인 것을 위해 노력한다. 이렇게 진보의 가치를 규정할 때 결국 복지란 협동, 돌봄, 정의다….”

 

이런 바탕에서 국민복지, 책임복지, 의무급식, 공공의료, 국가보육… 좋은 말이 이렇게 많은데 왜 하필이면 ‘무상’이라는 메시지를 일부러 사용해서 복지를 두고 불필요한 분열을 조장할까? 난 이게 의문이다. 무상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도 진실하지 않고 마케팅으로 부적합한 단어요 개념인데 그걸 마치 금과옥조처럼 붙잡고 있는 사람들의 전략적 사고 부재가 너무도 아쉽다.

 

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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