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 청년에게 꿈을

못다 핀 '로봇 박사'…

pulmaemi 2011. 1. 12. 11:00

[미디어창] KAIST 첫 공고 출신 입학생의 죽음 …좌절 감싸지 못한 '교육의 좌절'

 

자살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절망하는 상황에서 일어난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자살율을 기록하는 한국에서 그 많은 자살자의 수와 유형에 어찌 차별이 없을 수 있을까마는 어린 학생의 죽음은 자식을 가진 모든 부모의 가슴을 때리는 법이다. 더구나 카이스트같은 훌륭한 대학교진학한 학생이 제대로 꿈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사라진다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는 차원에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숨진 A군은 2007년 국제 로봇 올림피아드 한국 대회에서 대상인 과학기술부 장관상을 받은 데 이어 2008년에는 국제 로봇 올림피아드 세계 대회에서 3등에 오르는 등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로봇 경진대회에 60여차례 참가해 뛰어난 실력을 보여왔다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과학경진대회에 참가해 최우수상을 받는 등 '로봇박사'로 불렸던 A군은 인문계고교를 다니다 로봇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에 로봇 기능 전문계고로 전학까지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재능덕분에 카이스트에 합격한 A군은 특히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는 미적분학을 공부하는데 어려움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1학년 성적에 학사경고를 받을 정도여서 고민이 상당했다고 한다. 특히 영어는 한두학기만에 갑자기 성적이 오르는 과목이 아니어서 그의 갈등과 절망은 더욱 깊었으리라.

 

A군은 로봇분야에 관한한 매우 뛰어난 소질과 잠재력을 보인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그에게 영어로 미적분학을 수학하라고 지도한 것이 과연 적합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특정분야에 비범한 재능을 보인다고해서 영어강의를 수강할 정도의 수준을 갖췄다는 것은 아니다. 특별 재능을 가진 아이는 그 분야에서만 독특한 능력을 보였을 뿐 타분야는 평균이하일 경우도 종종 있었다. 미국의 유명 영화 감독 스필버그나 발명왕 에디슨 등도 학교 수업에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못했거나 부적응자였다고 한다. 빌 게이츠의 경우 하버드 대학을 스스로 중퇴했을 정도였다. 타고난 천재성을 제대로 지도, 관리하지 못하게 되면 그것은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를 한국에서 종종 목격한다.

 

특별한 학생은 의외로 일상생활에서 오는 좌절과 갈등에 쉽게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동차 경주 선수들은 차를 빨리 모는 법을 배우기전에 사고상황에서 어떻게 탈출하는 가를 먼저 배운다고 한다. 승리하는 법을 배우기 이전에 실패에서 탈출하는 법을 먼저 익히는 방식이다.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아이들에게 일상의 좌절과 갈등, 실패에서 먼저 극복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체험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리라. 그들에게 ‘성공’ ‘일류대’를 외치기전에 작은 좌절과 실패를 먼저 경험하여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급선무다.

 

A군에게 카이스트의 선택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가 공고생 최초로 카이스트에 합격했을 때 학교와 학부모 주변 사람들은 얼마나 환호했을까. 그는 주변의 과도한 기대와 자신의 부적응 사이의 현실적 갈등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그의 잠재력을 보고 선발한 카이스트의 입학사정관제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다. 문제는 선택받은 자가 그 학교와 운영방식에 대해 제대로 몰랐고 제대로 대응법을 찾아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부모는 아이가 좋은 대학갔으니 모든 것을 믿고 맡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않다.

 

공고생출신이 과학고 출신들과 로봇이 아닌 공부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은 이미 험난한 과정이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언제든지 그만두고 나올 수 있도록 아이에게 선택의 부담감을 줄여줬어야 한다. 한국에서 카이스트나 서울대 등은 성공을 상징한다. 이런 대학기관을 중퇴한다는 것은 곧 실패를 의미하기 때문에 포기가 쉽지않다.

 

그러나 그런 것은 일반 학생들에 한정돼야 한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학생에게 특정 조직은 특별한 굴레가 될 수 있다. 형식도 껍데기도 넘어설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아이에게 세속적인 기준과 한계를 보인 것은 아닌지...

 

   
  ▲ 김창룡 인제대학교 언론정치학부 교수.  

세 살때 천자문을 외우고 구구단 등을 뗀 한 영재(gifted child)가 있었다. 영국교육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영재 아이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강남의 사설영재학원들을 다녀봤지만 ‘평가’조차 제대로 받지못했다. 엉터리 영재학원들은 돈벌이에만 급급했다.

 

암기력이 뛰어난 그는 뭐든지 외우는데는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돌발행동, 컴퓨터게임에 빠지기 등 일상의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운동에는 전혀 소질이 없는 등 평균이하의 모습도 곳곳에서 나타났다.

 

수능1%안에 들어가는 학생이었지만 선행학습을 하지않은 관계로 고교내신성적이 좋지않았다. 그는 결국 서울의 한 대학교에 입학하지못했다. 그의 좌절감은 매우 컸지만 그의 성취와 능력을 더욱 인정하고 용기를 주는 일이 더욱 절실했다. 실패감속에 눈물까지 보였던 그는 한 동남아 국가로 가서 그곳에서 편입전문 대학교를 다녔다. 작은 좌절과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그런 생활속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교육이라고 판단했다. 그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는 모르지만 성공이전에 좌절과 실패에서 극복하는 과정과 그 가치를 먼저 익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학생의 실패는 모든 교육자의 좌절이다. 특히 재능이 뛰어난 학생의 절망은 한국대학교육의 실패를 의미한다. 강의생활 10년을 넘겼지만 어떻게 해야 매학기 강의에 혼과 정열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어떻게 소외되고 좌절하는 학생의 고민을 털어놓게 할 수 있을지 늘 반성과 고민이 앞선다. 어린 학생의 좌절에 슬픔이 깊은 날이다. 

 

미디어오늘 김창룡 인제대학교 언론정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