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한 사회

조중동 눈엔 ‘MB 폭력날치기’가 어떻게 비쳤을까?

pulmaemi 2010. 12. 10. 11:27



(블로그 ‘Finding Echo’ / 虛虛 / 2010-12-09)


▲ 8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야 의원들의 단상을 차지하기 위한 몸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 김무성원내대표가 선봉에서 몸싸움에 가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다시 한나라당의 예산안 날치기가 자행됐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3년째 계속된 연례행사다. 구태의연하다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이번에 새로운 장면도 몇 개 추가했다.

 

계수조정소위조차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예산안을 날치기 통과시킨 것이라든지, 4대강 주변 막개발을 가능케 한 ‘친수구역 활용 특별법’과 우리 젊은이들의 귀중한 생명이 걸린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파병동의안’ 등을 상임위 논의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무더기로 상정·처리한 것 등이 그것이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날치기 속편답게 폭력의 수위도 대폭 업그레이드됐다. 최근 김윤옥 여사의 로비 의혹을 제기해 한나라당의 제거대상 1호가 된 민주당 강기정 의원은 육사 출신인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의 오른손 주먹에 맞아 입술이 찢어지고 민주당 김유정 의원의 보좌관은 한나라당원으로 보이는 괴한에게 일방 폭행을 당해 코뼈가 으스러졌다. 실신한 이정희 민노당 대표를 질질 끌고 다니는 호러블한 모습도 연출됐다.

 

평소 입만 열면 ‘의회주의’를 외치던 조중동의 눈에, 이명박 대통령이 지휘·감독하고 ‘보온병’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와 박희태 국회의장이 공동주연을 맡은 ‘MB 4대강 예산안 날치기’가 어떻게 비쳤을까?

 

놀랍게도 국회 난투극을 다룬 9일자 조중동 사설에는 ‘날치기’의 ‘ㄴ’ 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세 신문 모두 양비론의 시각에서 국회 난투극에만 초점을 맞춰 비판했을 뿐. 이전 김대중·노무현 개혁정부 때 날치기의 ‘날’ 자만 나와도 입에 거품 물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다. 관례화되다시피 한 해프닝이라서 입에 올리기도 귀찮다는 걸까?

 

<모양새 좋지 않은 연말 국회의 예산 처리>란 제목을 단 9일자 조선일보 사설부터 스피디하게 훑어 보자. 사설은 4단락 가운데 여야의 폭력사태에 3/4를, 연말 국회의 파행에 1/4를 할애했다. 그나마 국회 파행을 다룬 곳조차 “국회의 발목을 잡은 야당도 문제지만 여당의 강행 처리에도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는 식으로 양쪽을 싸잡아 완곡하게 넘어갔다. 날치기를 ‘강행 처리’로, 그에 대한 비판을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고 디스카운트한 조선일보의 너그러움이 새삼 돋보이지 않는가.

 

중앙일보는 아예 ‘폭력국회’의 책임이 야당에 있다고 몰아붙였다. 여야의 폭력을 두루 거론한 조선일보보다 한 발 더 나간 거다. 중앙일보는 <안보위기 아랑곳없이 또 폭력국회라니…>란 사설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야당 측에 먼저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그동안 야당은 관습적인 폭력 투쟁을 벌여왔다”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사설에서 여당 책임을 거론한 건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국회의 안보위기 분위기를 더 활성화하기 위해 현명한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고 말한 게 전부다.

 

‘G20 정상회의 개최국’과 ‘예산안 통과 난투극’을 대비시킨 동아일보 사설에도 민주당 의원들의 폭력 활극만 등장한다. 민주당 의원들이 무법하게 설쳐대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는 투다. 동아일보는 심지어 민주당의 폭력성을 더 부각시키기 위해 2년 전 한미 FTA 비준동의안 상정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쇠망치 장도리 전기톱 물대포 소화기까지” 끄집어 들이는 열심을 과시했다. 하긴, G20 개최국 이미지 타령이나 하는 신문지에게 무얼 더 기대할까마는.

 

그러나 조중동이 ‘날치기’ 소동에 이렇듯 관대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관대하기는커녕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만 해도 “독재 시절의 상습 수법”(조선)이요 “민주주의를 포기한 독선”(중앙)이며 “국민주권을 유린하는 처사”(동아)라고 입거품을 물며 집권당의 날치기를 격렬하게 규탄해 마지 아니 하였다.

 

이하에서 지금은 듣기 어려운, 들을 수 없어 더욱 그리운, 조중동의 ‘그때 그 목소리’를 리와인드해서 잠깐 들어 보기로 하자. 추억 속으로, 고고(GoGo)~!

 

“국민들은 화면을 통해 여당(열린우리당)이 날치기를 하면서 의사봉 대신 국회법 책자로 책상을 두드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는 여태 이 지경이구나 하고 부끄러워했다…. 국민의 의식과 여당의 의식 차이가 이 정도인가 하는 한숨이 절로 새어 나온다….” (조선 사설, <金九 선생이 여당 날치기를 칭찬했다니>, 2004.12.08)

 

“지금도 늦지는 않다. 집권 민주당은 이번 날치기 사태에 대해 국민에게 즉각 사과의 뜻을 밝히고, 지난 24일 운영위에서의 국회법 개정안 처리도 무효로 돌리는 등 응분의 수습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나서 한나라당과 협의해 조속히 임시국회를 다시 소집해 국정 현안을 다뤄나가야 할 것이다….” (조선 사설, <‘날치기’ 이후 집권당이 할 일>, 2000.07.27)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이 민주주의는 룰의 정치, 절차의 정치다…. 이번 사태가 「날치기」냐, 「변칙처리」냐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군사독재 시절이건 민주화 시절이건 이러한 사태는 다수가 소수를 강압적으로 제압했다는 폭력적 측면에서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조선 사설, <정권은 변해도 날치기만은 여전>, 1999.05.05)

 

“정당정치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날 열린우리당의 날치기 처리는 어디서도 그러한 명분을 찾을 수 없다…. 타협을 일절 거부하고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인 것은 민주주의를 포기한 독선이다….”(중앙 사설, <날치기해 놓고 표 달라는 여당>, 2006.05.03)

 

“도대체 여당이 무엇 때문에 이처럼 무리수를 두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국회에서 다수의석을 확보했다고 해서 마음대로 폐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야당과도 타협하고 국민에 대해서도 시간을 갖고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는 국민이 다수인 게 현실 아닌가….” (중앙 사설, <보안법 날치기 상정이 개혁이냐>, 2004.12.07)

 

“이번 사태의 단초는 날치기며, 날치기는 누가 뭐래도 잘못이다. 이에 대해 명백하게 사과부터 하는 게 경색정국을 푸는 실마리라 하겠다…. 먼저 잘못했노라고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확실하게 약속한 뒤, 그러한 바탕 위에서 야당과 대화에 나서는 게 정치의 정도다.” (중앙 사설, <날치기 사과 주저하지 마라>, 2000.08.03)

 

“야당의 강경 저지를 뻔히 알면서도 무리수를 둔 것은 ‘보스’를 위한 충성심 보이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당이 수적 우위만 믿고 법안을 강행 처리한 것은 큰 잘못이며 앞으로 국회는 물론 정국운영이 파행으로 치달을 경우 그로 인한 국가적 손실은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동아 사설, <결국 ‘날치기’라니>, 2000.07.24)

 

“이렇게 아직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주요 법안들을 국회소관 상임위 법사위 및 본회의 심의를 하지 않고 일거에 날치기 통과시키는 것은 국민주권을 유린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번 날치기로 여야는 다시 극한대립으로 돌아섰다. 그 속에서 죽어나는 것은 국민이요 민생이다. 언제까지 이런 추한 정치, 절차를 무시하는 날치기를 보아야 하는가.”(동아 사설, <공동여당의 네 번째 날치기>, 1999.05.04)

 

“물론 야당의 잘못도 크다…. 그러나 여당의 처사는 훨씬 더 비판받아 마땅하다…. 야당이 변칙처리를 못 막았느냐, 안 막았느냐의 논의는 여당의 오만한 국회운영 앞에서 문제도 되지 않는다…. 여야는 이제라도 이성을 되찾아 대화를 모색하기 바란다. 그러자면 먼저 여당이 날치기를 사과하고 성실한 자세로 야당을 대해야 한다….” (동아 사설, <사흘 연속 날치기>, 1999.01.08)

 

虛虛

 





이글 퍼가기(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