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세상

“대통령님, ‘전화 안 한다’는 약속 끝까지 지켜 감사”

pulmaemi 2010. 11. 25. 12:55


정연주 이사 ‘대화마당’에서 ‘희망의 메시지’ 전달… “투표만 해라, 바뀐다”



정연주의 ‘이유 있는 미소’

 

“다 카메라가 조작한 겁니다. 하하….”

그의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지난 18일 광주 NGO 센터에서 열린 <노무현재단> ‘대화마당’에서 강사인 정연주 이사는 강연 전에 한 회원이 구수한 사투리로 “와따, TV로 뵈면 8척 장수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키가 작소”란 농담을 건네자 기분 좋게 맞장구를 쳤다.

 

이날 두 번째 ‘대화마당’의 주제 ‘이명박 정권과 언론’ 강연을 위해 멀리 광주까지 온 정 이사는 피곤한 기색도 없이 연신 싱글벙글이다. 슬쩍 강연장을 본 정 이사가 “와~ 진짜 많이 오셨네”라며 감탄했다.

 

이날 강연장은 광주지역 회원들의 뜨거운 성원으로 가득 메워졌다. 시작 전 신청자 70여 명을 넘어 이미 100여 명 이상이 들어찼고, 강연 중에도 계속 이동식 의자를 날라야 했다. 강연이 끝난 뒤 뒤풀이에도 열기가 이어졌다. 50여 명이 자기 소개하는데 누구도 흐트러짐이 없었고, ‘역시 광주’라는 말을 낳았다.

 

정연주. 한국 현대언론사에서 지워지지 않을 그 이름. 40년간 몸담은 언론계에서 수많은 기사와 칼럼으로 후배 언론인들의 귀감이 된 사람. 조중동의 본질을 ‘조폭언론’이라고 갈파해 언론개혁운동에 또 하나의 동력을 만든 사람. 검찰과 언론이 거꾸로 매달고 탁탁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은 사람.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흠결을 찾지 못하자 ‘배임혐의’를 뒤집어씌워 그 의기를 꺾고자 했던 사람.

 

결국 그는 임기 중에 KBS 사장직에서 해임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지난 10월 그는 1심에 이어 2심마저 승소해 해임의 부당성을 증명했다. 그래서 기분이 좋은 걸까. 강연 초반에 그는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그 이유를 재치 있게 설명해 폭소를 자아냈다.

 

“저 사실 요즘 많이 웃습니다. 안 웃을 이유가 없잖아요. 하루 자고 일어나면 MB 임기가 하루씩 줄어듭니다. 즐겁지요.”

 

강연 후반에 그는 자신의 미소가 근거 있는 ‘희망’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한다. ‘희망의 숫자’와 함께 정연주의 ‘희망의 메시지’를 들어보자.

 


대통령님의 약속

 

제가 2003년에 KBS 사장으로 임명된 뒤, 그 해 5월 KBS에서 시상하는 해외동포상 수상자 부부들과 함께 청와대의 초청을 받았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청와대를 떠나는 저에게 대통령님께서 “정 사장님, 앞으로 제가 딱 두 분께는 전화를 하지 않겠습니다. KBS 사장과 검찰총장한테는 전화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2008년 8월 제가 KBS 사장에서 해임된 후 봉하를 방문했다. 정말로 단 한 번도 전화를 하지 않으셨던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때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대통령님의 열정은 그대로였다. 특히 언론개혁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대통령께서는 정치가 역사를 크게 바꾸지 못하더라, 결국 문화운동이 역사를 바꾸더라, 그 핵심이 언론개혁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그분과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런데 대통령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나. 그렇게 자율과 독립을 부여한 ‘검찰’과 ‘언론’, 이 두 집단에 의해 참혹하게 돌아가셨다. 정치검찰이 온갖 사실을 부풀려 피의사실을 공표하면 언론은 한 수 더 뻥튀기해서 중계방송 하듯 모욕을 주었다. 제가 당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개와 기자는 접근금지’ 벽보가 붙던 시절

 

함석헌 선생은 <씨알의 소리> 창간호에서 이런 구절로 언론의 권력화와 그 폐해를 지적했다. ‘신문이 무엇인가. 민중의 눈이다. 예수, 석가, 공자가 섰던 자리에 오늘날 신문이 섰다. 오늘의 종교는 신문이다.’

 

신문은 언론을 총칭한다. 당시 언론 상황이 얼마나 처절했으면 그렇게 말씀했겠는가. 지금은 나아졌나. 언론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사실보도와 비판기능이다. 인터넷에 그런 말이 떠돈다. 조중동이 언론이면 우리집 두루마리 화장지도 팔만대장경이다. (웃음)

 

1973년 가을,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이 동아일보 앞에 와서 시위를 했다. 제발 잠에서 깨어나라고. 당시 보도는 못 해도 일종의 보고용으로 취재는 했다. 유신을 반대하는 후배들이 농성하는 곳에 성명서 한 장 얻으러 갔더니 이런 벽보가 붙어 있었다. ‘개와 기자는 접근 금지.’ 정말 부끄럽고 참혹했다. 기자가 아니고 개가 되었다. 개가 맞다.

 

그 부끄러움을 견디다 못해 언론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1974년 12월 14일. ‘자유언론선언’으로 유신정권에 정면으로 맞섰다. 우린 그렇게 싸워서 언론자유를 한 뼘 한 뼘 찾아왔다. 이듬해 2월에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많은 지식인과 학생들이 구속되었다. 그때 감옥에서 나온 분들을 인터뷰했다. 얼마나 큰 고문을 받았는지 참혹했다. 당시 ‘육전’ ‘공전’ ‘해전’이란 말을 처음 신문에 올렸다. 땅에서 몽둥이로 때리면 ‘육전’ 공중에 매달아 고문하면 ‘공전’ 물고문 하면 ‘해전’ 그 기사가 일면 중간 톱으로 나갔다. 그날이 기자로서 가장 보람을 느꼈다.

 

그러다가 정권의 위기를 느낀 박정희와 정권의 사주를 받은 동아일보 사장에 의해 1975년 3월 17일 언론자유를 위해 싸웠던 기자들이 다 쫓겨났다. 나도 해직됐다. 그 후 2008년 8월에 KBS 사장직에서 목이 잘렸다. 제 목은 주로 대통령이 친다. (웃음)

 


불과 2년 만에 ‘그때 그 시절’로

 

6월항쟁 이후 정치권력이 언론을 억압하는 것은 거의 사라졌다. 그걸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 95년 3월 <조선노보>가 300호 기념으로 기자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아직 편집권 독립이 안 되어 있다고 말한 54% 중 그 원인으로 정치권력을 꼽은 기자는 불과 2.9%밖에 불과하다. 조선일보 기자들조차도 정치권력이 편집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한 것이다.

 

‘효자동의 개가 치여도 노무현 탓이다’란 말이 나돌 정도로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차고 넘치다 못해 막가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이명박 정부 들어 어떻게 되고 있나. 거두절미 하고 구체적인 자료만 가지고 말하겠다.

 

작년 9월 9일 한국언론재단은 무려 1000명의 온오프 기자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때 온라인 기자 32.1%, 오프라인 28.6%는 언론자유를 억압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정치권력을 꼽았다. 불과 2년 만에 유신시대로 뒤집힌 거다.

 

최근에 나온 조사는 더 충격적이다. 지난 9월 연합뉴스 노조 여론조사 결과다. 지금 ‘연합의 기사가 공정하냐’란 질문에 무려 70.8%가 공정하지 않다고 답했다. 또 ‘보도가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냐’는 질문에 80%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언론의 신종수법 ‘외면하기’

 

요새는 언론이 신종수법을 쓴다. 군부독재 시절에는 기자들 발바닥을 때렸는데(웃음), 이른바 ‘외면수법’이다. 국토를 파헤치는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철저히 외면한다. 종교인들이 아무리 법회하고 기도회를 열어도 조중동, KBS에 나온 것 봤나. 특히, 방송은 더 기묘하다. 지난여름 좀 더웠는데 폭염 기사만 15분이다. 덥다, 더워 기사만 15분이다. 그러면 중요한 기사가 다 밀리고 빠진다.

 

고위공직자 도덕성 검증에 대한 잣대를 보자. 2006년 2월 조선일보 사설을 보자. ‘대통령은 또 인사청문회 결과를 무시할 것인가’란 제목으로 “200년의 인사청문회를 가진 미국에서는 아주 사소한 흠결이 발견되어도 사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라고 했다가 작년에는 어땠나.

 

정운찬 등의 총리나 장관 후보자들에게서 엄청난 문제가 쏟아져 나오니깐 2009년 9월 사설로 그들을 비호했다. 어떻게? “공직후보자 검증에서 도덕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능력과 업무에 대한 견해다”라고 말했다. 이런 썩을….(웃음) 이런 자료가 하도 많아서 정리를 못 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변치 않는 ‘콘크리트 38%’

 

1987년 대선 때 노태우 득표율이 37%, 김종필 7%, 합쳐서 44%. 이명박 지지율과 비슷하다. 김대중 27%, 김영삼 28% 합쳐서 55%. 아마 역사적으로 민주개혁세력이 가장 많이 득표한 때다.

 

수구기득권세력은 콘크리트와 같은 강고한 지지율을 가지고 있다. 특히, 38%는 하늘이 두 쪽 나도 변치 않는다. 작년에 정운찬은 까면 깔수록 계속 나오는 양파 총리였다. 그래도 괜찮다, 문제없다고 답한 층이 35.6%, 대통령님이 서거한 후 이명박 대통령이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답한 층이 37.5%, 미국산 쇠고기 불안감에 대해 아무 문제 없다고 답한 층이 38.1%, 의자를 기소하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던 한명숙 총리 사건에 검찰이 문제없다고 답한 층이 37.7%, 정연주가 KBS에 있을 때 정치적으로 편파적이라고 답한 층이 38%, 전태일 열사 40주년을 맞아 한겨레가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정권에서 노동3권 잘 보장되고 있다고 한 36.6%, 정말 무섭다. 시멘트보다 강한 콘크리트 지지율이다.


그래도 희망은 여기에 있다

 

‘PD수첩 무죄판결’과 관련해 “자신이 판사라면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라는 여론조사가 있었다. 전체 답변은 무죄 57.6%, 유죄 30.3%였지만, 세대별로 보면 ‘무죄’ 응답이 50대 이상 40.6%였다. 죄송하지만 이들은 조중동을 보는 세대다. 최소한 여기 광주·전남만큼은 조중동이 없어야 한다. <노무현재단>의 다수 후원자인 40대와 30대는 각각 61.7%, 65%가 나왔다. 그런데 20대를 주목하자. 무려 74.7%다. 희망은 여기에 있다.

 

주변에 요즘 젊은이들이 역사의식이 없다고 하는데 20대를 이런 식으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 세대의 강점은 자유에 아주 민감하다. 6월항쟁 이후 태어난 이들은 어머니 배에서부터 뼈에 DNA처럼 자유가 박혀 있다. 이들에게 정연주 사건은 법인세가 어쩌고 복잡해서 이해가 안된(웃음). 그런데 김제동! 이 한마디로 끝난다. 윤도현은 왜 출연 못해? 빵구똥구도 있다. 방통위가 심사해서 경고를 준 그 사건에 이들은 많은 것을 느낀다.

젊은 세대에게 지난 2년의 세월은 블랙코미디였지만, 아울러 정치적 깨우침을 가져다준 ‘생체험 학습현장’이었다. 그들에게 ‘MB정부 2년’은 유연, 생기발랄, 신명이 특징인 젊은 세대에게 너무나 어이없는 ‘빵꾸똥꾸’의 세월이다. 내일의 주인 세대의 정치적 깨우침 측면에서, ‘MB 2년’은 역설적으로 ‘역사의 축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제가 요즘 대학 특강을 돌며 말한다. “투표만 해라. 투표만 하면 바뀐다.”


나라를 사랑하는 50가지 방법

 

지난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한 ‘무브온’ 운동의 계기는 클린턴 탄핵이다. 당시 한겨레신문사 워싱턴 특파원 시절이었는데, 기득권 보수세력인 공화당이 그를 탄핵한다고 하자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문제가 조금 있긴 하지만 탄핵할 정도의 잘못은 아니다면서 ‘보호하자’고 시작한 것이 무브온이다.

 

이후 ‘무브온’은 나라를 사랑하는 50가지 방법을 제시하며 생활정치운동을 벌였다. 예를 들면, 직장 동료들과 같이 투표하기, 주변 가족들과 같이 투표하기, 신문이 왜곡하면 전화 걸기 등등 아주 구체적인 방법을 실천했다.

 

이런 사회운동과 문화운동이 역사를 바꾼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하려면 조직 단위가 반드시 필요하다. ‘무브온’의 50가지 운동을 요약하면 당신이 가진 재능, 돈, 시간을 바치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김대중 대통령이 다른 말로 압축하셨다. “이기는 길은 모든 사람이 공개적으로 정부를 비판해야겠지만, 그렇게 못한다면 투표를 하고 나쁜 정당에 투표하지 않아야 한다. 작게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된다.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너무나 절절하다.

 

한국적 현실에서 <노무현재단> 후원회원이 3만 명이 되었다는 것은 기적이다. 우리 재단이 한국의 ‘무브온’이 되길 진심으로 기대하고, 가능하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아직도 좌절을 느끼는 분들이 많다. 재단의 이사이기도 한 도종환님의 시 ‘담쟁이’를 읽겠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2010년 11월 24일
노무현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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