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재단 / 강기석 / 2010-11-19)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한명숙 전 총리는 부산에서 왔고, 김용익 전 사회정책수석, 조기숙 전 홍보수석, 황인성 전 시민사회수석 등은 서울에서 왔다. 11월 17일 노무현 대통령 사저에서 묘역훼손 사건 대책회의를 갖기 위해 그렇게 황급하게 모인 사람들이, 아직도 뒷수습에 분주한 봉하 식구들과 점심을 같이 하기 위해 둘러앉았다.
“죄송합니다. 좋은 일도 아니고 불미한 일로 이렇게 먼 길을 오시게 해서…”
식탁 위에 준비된 봉하쌀 막걸리를 각자의 잔에 따라 놓기는 했으나 누구도 선뜻 마실 엄두를 내지 못할 때, 권양숙 여사께서 먼저 한 모금 입술을 축이시더니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한숨처럼 내놓았다.
“사실 안장식을 치른 이래 불안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와중에도 단 한 번도 불미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조금 해이해졌었나 봅니다.” 그리고는 들릴락 말락, “조금 안일해졌었나 봅니다”라고 되뇌었다.
그런 여사님의 어디에서고 분노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짙은 회한뿐이었다. 화가 많이 나 있으시리라는 내 지레짐작은, 아마도 나 자신부터 화가 나 있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리라. 내가 이만큼 화가 나 있는데 여사님이야말로 가장 화가 많이 나 있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여사님은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나 때문이다”라고 가슴을 쳤었던 것처럼, 지금도 대통령의 안식처를 온전히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괴로워 할 뿐, 조금의 분노도 내비치지 않았다.
“왜들 이렇게 돌아가신 분까지 편하게 계시지 못하게 하나…. 워낙 참배객들이 많아 아무리 지키는 사람을 늘려도 도무지 예방이 될 것 같지 않아요…”
끝내 눈물을 비치셨다. “어떻게 해야 하나….” 여사님의 깊은 탄식에 조기숙 전 수석이 훌쩍이기 시작했는데, 그 자리의 누구라도 비록 조 전 수석처럼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으되 가슴 속에는 비감한 눈물이 흘러 내렸다.
분노는 없다, 회한과 자책 뿐…
솔직히 고백하건데 내게는 오랫동안 품어온 의문이 하나 있다. 왜 수많은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이기까지 한, 그래서 그 희생자와 희생자의 부모, 자식, 친구, 친척들이 수 천, 수만 명이 존재하는데, 그런 독재자의 무덤에 말뚝 박기는커녕 ‘침뱉는 사람’조차 하나 없을까.
그 의문은 김대중 대통령의 묘소가 불태워지는 사건 이후, 순수한 의문의 차원을 떠나 일종의 보복을 꿈꾸는 음흉한 기대랄까, 퇴폐적인 희망으로까지 변질되었음을 또한 솔직히 고백한다.
그러나 곧 포기했다. 그건 그런 기대와 희망이 저들과 똑같은 ‘짐승 같은 짓’이라 안 된다는 도덕적 자성이 말렸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들은 두려워하는 사람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해칠 때 덜 주저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진단을 새삼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포기는, ‘광주학살극’을 벌이고 권좌에 올라 숱한 강도짓을 통해 수천억의 부정축재까지 한 독재자에게 수많은 동향인, 동창생들이 땅바닥에 엎드려 숭배의 큰 절을 올렸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절망의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미움과 증오를 조장한 자들은 저렇게 횡행하는 반면, 평생을 오로지 평화와 인권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두 분 대통령은 서거 후에까지 어처구니없는 봉변을 당한다. “매사에 착한 일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좋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반드시 골탕을 먹는다”는 마키아벨리의 또 다른 충고를 들먹이자면, 두 분은 생전에 남북을 통일하자고,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그렇게 너무 많이 착한 일들만 주장했던 것은 아닌가.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가 집권 기간 내내 무모하리만큼 일관되게 자신을 무장해제 시켰다. 독대를 허락받지 못한 국정원은 국정에 개입하는 건 엄두도 못 냈고 검찰은 처음부터 따로 놀았다. 정적 길들이기나 정책관철 수단으로써 사찰이나 세무조사는 자취를 감추었다. 제대로 코드인사라도 했으면 좋았겠건만 오히려 능력 있는 자기 사람 심는 것까지 삼갔다.
매사 그런 착한 일들만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이렇게 골탕을 먹는 것인가. 또 그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지금 권력을 잡은 이 자들은 4대강 파헤치기, 사찰하기, 편파수사하기, 공포 조성하기 등 나쁜 일들만 골라서 하고 있는 것인가.
착한 사람들이 끝없이 당하는 횡포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는 것은 유권자들이 ‘뽑아준 사람’에 대해 너무 과도한 요구를 하기 때문임을 간파한 것이 플라톤이다. 그가 그리스를 덮쳐오는 난국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으로 ‘철학자 왕’을 제시한 것은, 급진적 민주주의가 진정으로 옳은 것을 추구하기 보다는 대중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한 지도자를 선출하게 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과연, 노무현에게 과도한 요구를 했던 유권자들이 택한 지금이 그러하다. ‘철학자 왕’은커녕 대중의 비위를 맞추기에도 턱없이 모자란, 독선적인데다 거짓말을 일삼고 증오와 갈등만을 조장하는 저열한 리더십으로 인해 처절하게 고통받고 있지 않은가.
이런 저열한 집권세력의 선전?선동에 놀아나는 못난 것들이 성냥통과 똥통을 들고, 혹은 가스통까지 들고 설치고 돌아다닐 때, 이 자들의 배후가 누구라고 꼭 집어 밝혀낼 필요가 있을까. 집권세력 모두가 이 ‘짐승보다 못한 짓’의 배후이며 공범인 것이다.
용서는 아직 아니다, 인내와 도덕성으로 긍극적 승리를 만들어갈 뿐
하긴 집권세력뿐이 아니다. 지금의 집권세력은 처음부터 임기 내내 반대와 선동을 일삼다가 언제든 현직의 허점이 드러나면 감추었던 발톱을 곧추세우고 달려들었던 바로 그 때의 그 수구세력이다. 그때 우리는 이런 적극적 수구세력과 소극적 보수반대세력 뿐 아니라, 소극적 지지세력까지도 언제든 돌을 던질 태세로 볼멘소리를 해대는 상황을 몸서리치게 겪었다.
열 번을 만족해도 단 한번 비위가 틀리면 당장 토라지는 것이 대략 이들의 속성이거니와 이른바 적극적 지지세력마저도 아주 사소한 오해나 약간의 이해다툼만으로도, 때로는 질투와 시기에 눈이 먼 나머지 언제든 등을 돌리려 하지 않았던가. 그 모든 것들이 오늘 이 수모로 돌아온 것 아닌가.
그러므로 이 순간이 비록 참담할지라도 섣불리 흥분하고 분노하는 것은 올바른 길이 아님을 여사님은 말하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여사님이 옳다. 나 먼저 반성하면서 내일을 기약해야 한다. 어쩌면, 뭐든지 자기 탓으로 돌리려는 그런 기막힌 착함 속에 궁극적인 내일의 기약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강기석 / 노무현재단 홈페이지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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