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재단 / 김미선 / 2010-10-28)
그가 가고 나서야 가치를 깨닫는 시대
“노무현 대통령님, 대통령님이 우리 시대 진정한 영웅 중의 영웅,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에 뽑혔답니다.”
정치인이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고 했던 노 대통령. 생전의 그에게 이 같은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설보다 더 소설 같았던 삶,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했던 삶, 마지막까지 운명과 정면승부를 펼쳐 역사의 승자가 되고 삶을 완성시킨 사람. 그런 사람을 우리 시대에 언제 다시 만나볼 수 있을까.
최고의 지도자, 그가 가고 나서야 가치를 깨닫다
그는 타고난 지도자였다. 지성과 용기, 설득력과 의지, 겸손함과 사려 깊음이라는 덕목을 겸비했다. 유쾌하고 활달한 사람이기도 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대의와 역사 앞에서 일관된 삶을 살았다. 그는 최고의 대통령이었지만 그가 가고 나서야 그의 가치를 깨닫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정치인의 소망은 자기의 가치를 최대한 실현하는 것이죠. 거기에 대해서 평가를 받고 싶어합니다.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하는 것이 정치인의 소망이죠.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거죠. 지금의 좋은 평가를 받고 싶고 후대의 역사적 평가도 잘 받고 싶은 것이죠. 그런데 두 개의 평가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아주 많이 발생하죠. 그럴 때 결국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 하면 역사의 평가를 선택하게 됩니다.” -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중
그는 현실에서 왜 그렇게 각박한 평가를 받았나. 진보진영의 취약성과 보수진영의 강고한 결속력에 기인한다. 정치인 노무현은 링컨처럼 역경 속에서 연마한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낮은 사람이 겸손한 권력으로 강한 나라를 만든 지도자의 전형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대통령에의 꿈은 실현되었지만 한국의 풍토는 링컨처럼 현실에서도 평가를 잘 받고 역사에서도 평가를 잘 받기에는 너무 척박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집권이 한국사회와 정치지형상 우연,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독특한 이력과 시대정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대통령이 되었지만 기득권 세력의 벽은 너무 강고했다. 게다가 그의 방패막이가 되어 주어야 할 사람들까지도 바로 좋은 세상이 오지 않는다고 조급하게 다그쳤다. 금방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양쪽으로부터 협공을 당했다. 그러니 현실에서의 평가가 좋게 나올 수 없었다.
어느 것 하나 대통령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노 대통령의 재임 시절 나도 신문사의 논설위원이었다. 참여정부 5년의 국정운영은 그야말로 우여곡절이었다. 어느 것 하나 대통령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기득권 세력과 결탁한 보수언론의 발목잡기와 사실 왜곡은 기가 막혔다.
논설위원이란 핫이슈에 대한 논평을 하는 사람들이다. 해묵은 문제들이 불거지면서 여기에 대한 심층적인 논평은 깊은 공부가 있어야 가능하다. 별 공부가 되지 않은 논설위원들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대통령에 대한 피상적인 비판이었다. 그중에서도 단골메뉴는 말실수라고 갖다 붙이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동네북이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자신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사용한 것은 고작 해야 반론권 제기였다. 그러나 반론권 제기는 언론의 망나니짓을 제어할 수단이 되지 못했다.
5년 내내 기득권세력의 공격에 시달리던 그는 그래도 그의 소망대로 무사히 청와대를 걸어 나왔다. 끝까지 그에 대한 신뢰를 지켰던 지지자들도 그가 무사히 임기를 마치고 나왔다는 데 안도감을 느꼈다.
그는 소망했다. 실패한 대통령이지만 성공한 퇴임 대통령이고 싶다고. 그래서 퇴임 후 평범한 시민으로 사회발전에 기여하려 했다. 그의 작은 비석 속 비문은 말한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하지만 바람직한 전직 대통령 전통상을 세워보려던 그는 무장해제당한 채 집단 린치를 당했다.
역사 속으로, 자연 속으로 돌아가다
얼마 전 출간된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를 보고 나는 그의 죽음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은 나의 실패를 진보의 실패로 만들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이것이 가장 두려웠다. 그래서 수십 년 동안 나를 도와주고 나와 함께 무엇인가를 도모했던 분들을 향해 말했다. 노무현의 실패가 진보의 실패는 아니라고. 노무현은 이미 정의니 진보니 아름다운 이상과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되었다고. 노무현은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졌으니 노무현을 버리라고….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나를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나의 잘못 나의 실패 나의 좌절까지도 변함없이 사랑한다고 말했다. 고마웠지만 그럴수록 그런 분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자서전에 나오는 또 다른 글은 너무 쓰라리다. “그들은 나의 인생만이 아니라 부림사건 변론을 맡았던 이래 내가 했던 모든 것을 모욕하고 저주했다. 민주화운동과 시민운동 대통령직 5년을 포함한 정치 20년 모든 것에 침을 뱉었다.”
그는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없었다. 역사 속으로, 그가 사랑했던 고향마을의 자연 속으로 돌아갔다. 그를 사랑한 사람들에게는 한없는 미안함을, 그에게 집단린치를 가한 세력들에게도 증오를 품지 않았다. 차라리 산자를 위로하고 떠났다. 고승의 열반송 같은 유언을 남기고 두려움 없이 주어진 운명과 대면했다.
그때 이미 배수진을 치고 있었을까
봉하마을 그의 묘역에는 가신 이에 대한 애달픈 그리움이 가득하다. “엄청난 정치적 수난을 겪으면서도 얄팍한 현실주의에 영합하지 않고 끝까지 원리 원칙으로 이 시대의 중요가치를 일관되게 지키면서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고 그 기반을 조성한 대통령”(원불교 좌산 합장)이라는 박석은 노 대통령의 정치역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당신의 희망이 역사의 강물이 되기를’ ‘서민의 애환을 진정으로 아는 대통령’ ‘국민을 진심으로 사랑한 대통령’ ‘열정으로 시대를 앞서간 영웅’ 등. 그를 끝까지 사랑한 마음들이 담겼다.
나도 노 대통령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을 때부터 그를 지지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2년 전 가을, 그땐 생전의 노 대통령에게 꽃바구니를 건넬 수 있었다. 청와대에서 만난 적도 있지만 어쭙잖은 글 몇 번 썼다고 봉하 사저로 오찬 초대를 받은 것은 영광이었다. 봉하마을에 낙향한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지만 응하지 않을 때 자신을 위해 끝까지 일관성 있는 변호를 했던 나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오찬 초대를 했다. 현직을 그만두고 나니 나를 만난 것이다. 그의 사려 깊음이 느껴졌다.
당시 보수언론들이 사저를 두고 봉하 아방궁이니 하면서 입방아를 찧어댔지만 정작 사저는 직전 대통령을 지냈던 분의 사저라고 하기에는 너무 소박했다. 시골인지라 식당에는 파리가 날아다녀 권양숙 여사께서 파리채를 직접 들기도 했다. 정치와 역사 등에 관해 3시간여를 열띤 토론을 하다가 방문객 맞이할 시간이 되어서 악수를 하고 사저를 나설 땐 마음이 아팠다.
당시 대통령은 의기소침했다. 가뜩이나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라 자신을 내세우는 것을 쑥스러워하고 있는 판에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전 정권의 모든 일들을 갈아엎으면서, 기록물 유출 운운하고 있을 때니 허탈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참여정부는 아무 한 일이 없습니다” 했을 때 ‘역사가 평가를 할 것입니다’ 위로해도 쓸쓸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때 이미 배수진을 치고 있었을까.
아무도 그의 진실 따윈 거들떠보려 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이 퇴임하는 것을 보고 비슷한 시기에 30년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두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직장을 그만둔 것을 후회했다. 그를 위한 변호를 더 이상 해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정말 그랬다. 그가 낭떠러지로 몰리고 있을 때 어느 누구도 그가 결백함을 믿는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해주지 않았다. 종이신문에서 거의 혼자다시피 노 대통령을 위한 변호를 하고 있다가 내가 은퇴하고 나니 아무도 그의 진실 따윈 거들떠보려 하지도 않았다. 모두들 하이에나처럼 덤벼들어 그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시대의 모순을 안고 갈기갈기 찢겨야 하는 그는 그 운명까지도 사랑했다. 생전의 마지막 길, 부엉이바위로 가기 위해 사저 담장을 따라가면서 잡초를 뽑아 던지던 모습은 생과 사를 초월한 성인의 모습이다. 경호원을 곁에 두었다가는 더 큰 일이 날 것 같아 정토원에 일부러 심부름을 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그가 떠난 지금, ‘노무현 정신’을 빼고는 정치를 말하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아직도 그의 뜻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봉하마을을 찾고 있다. 부엉이바위를 보고 가슴 아파하고 ‘대통령의 길’을 따라 걷는다. 추모의 집에서는 생전의 영상물과 유품과 사진 기록물을 볼 수 있다. 파란만장했던 정치역정을 담은 영상물은 눈물 없이는 볼 수가 없었다. 애도의 마음이 일렁이는 촛불 앞에 숙연해진다. 사람사는 세상, 깨어있는 시민의 화두들도 계승되고 있다. 친환경농업으로 지은 봉하쌀, 화포천 생태연못 등 어디에나 그의 정신이 들어 있다.
노 대통령 이후 급속히 퇴행한 한국, 하지만 그의 불굴의 의지는 사람들의 마음에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아 있다. 정치인이면서 사랑과 삶, 죽음이 하나임을 다시 깨닫게 하는 노무현 대통령. 그는 정말 우리 시대 영웅 중의 영웅이다. 부처나 예수가 몇 천 년이 가도 사람들의 경배를 받듯 세월이 갈수록 그의 삶은 더 영롱한 빛을 발할 것이다.
김미선 / 전 국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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