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봉하캠프를 마치고… 두 번째 캠프 11월 개최 예정 봉하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팔랑팔랑 도는 ‘노랑개비’들이 손님들을 맞이했다. 이제는 봉하를 상징하는 명물이 되었다. 봉화산을 등진 채 앞쪽을 바라보면 개구리산이 있고 그 옆에는 뱀산이 있다. 그 건너편에 부엉이바위와 사자바위가 있다. 멀리서 봉화산을 보면 마치 개구리를 낼름 잡아먹으려는 뱀을 노려 보는 학이 날개를 편 것 같다고 하여 학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 학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엉이바위 바로 아래 대통령님 생가와 사저가 있다. 마을 들입 왼편에 봉하빌라가 있다. 봉하캠프 숙소이다. 30여 명의 부산지역 후원회원들이 모여들었다. 방 배정을 받고, 빌라 문을 여는 순간 모두 감탄했다. “딱 열자마자 다시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카이.” 최고 연장자인 방길전님은 깨끗한 시설과 정성스런 준비에 놀랐다. 노무현 대통령 묘역참배에 앞서 첫 만남의 서먹함을 달래기 위해 빌라 앞 공터에 삼삼오오 모여 인사를 텄다. 남자 분들은 우선 정치와 대통령님에 대한 이야기로 서로의 ‘철학’을 점검하고 곧 사는 이야기로 넘어갔다. 여자 분들은 주로 육아 이야기로 공감을 열었다. 청소년과 아이들은 초면에도 바로 언니야 오빠야 하면서 친해졌다. 고등학생 3명도 캠프에 참여했다. 어머니가 다른 일로 못 오시게 되었는데 캠프에 꼭 참여하고 싶어 끼리끼리 왔다고 했다. 이번 봉하캠프는 숙박시설이 여의치 않은 봉하에서 ‘1박’을 보낼 수 있게 해달라는 회원들의 요청에, 단지 숙박의 차원을 넘어 노무현 대통령의 향취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으로 재단이 마련한 것이다.
묘역으로 가는 길
봉하빌라에서 묘역까지 거리는 300여 미터다. 가다 보면 1주기에 앞서 건립된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집’이 있다. 유품이 전시된 추모전시관과 생전 영상을 상영하는 추모영상관으로 구성돼 있다. 평일에는 평균 2000~3000명, 주말에는 5000~10000여 명의 방문객이 찾는다. 가을을 맞아 최근에는 방문객이 더 늘고 있다.
대통령님 사진을 보자 마음이 울컥해졌다. 잰걸음으로 지나치다 보니 대통령님이 평소 즐겨 타던 자전거 앞. 그분이 계셨다면 과연 남겨진 길은 얼마나 되었을까. 그리고 그 길은 우리에게 무엇을 제시했을까.
묘역 운영관리를 맡고 있는 손성학 팀장이 참가자들을 맞았다. “물이 담긴 수반은 묘역에 들어서기 전 숨을 고르라는 의미에서 만든 겁니다. 먼 길을 달려오신 만큼 숨을 고르고 정갈한 마음으로 참배에 임하자는 뜻에서 건축한 거죠. 대통령님이 작은 비석만 남겨달라고 하신 만큼 다른 왕릉이나 권력을 가진 분들처럼 따로 봉분을 조성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화장해서 땅에 묻어….”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회원들의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분향을 시작으로 하나둘씩 참배에 나섰다. 묘역 바닥에는 많은 이들의 간절함과 그리움의 글귀가 새겨진 박석들이 마치 광장을 이룬 듯했다. 그중 ‘일광진석 노무현’이란 글귀가 들어왔다.
유난히 눈시울이 붉어진 최수연님은 “매주 오는데도 눈물이 납니다”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과거 시국사건으로 고초를 겪을 때 대통령님이 무료변론을 자청해 인연을 맺었다. 참배를 끝낸 이들은 대개 고개를 들어 부엉이바위와 사자바위를 올려다봤다. 어떤 이들은 사자바위를 부엉이바위로 잘못 알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차마 부엉이바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없기에.
대통령의 길, 노공이산
‘대통령의 길’은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 즐겨 걸었던 봉하 주변의 산책길을 권양숙 여사가 생태산책길로 가꾼 길이다. 문 이사장은 "‘생태보존의 길’ ‘봉하 둘레길’ 등 여러 안이 나왔지만 결국 ‘대통령의 길’로 낙점되었다”고 설명했다.
묘역에서 출발해 마애불, 사자바위, 정토원, 호미든관음상, 도둑골 등을 거쳐 약 1시간 30분을 걸었다. 마애불은 고대유적으로서 보존가치가 크지만, 넘어져 누워 있다는 이유로 보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턱 하니 누워 방문객을 올려다보는 마애불의 모습이 이채롭다.
잠시 쉬다 오솔길을 따라 사자바위에 올라 탁 트인 봉하벌판을 내려다봤다. 문 이사장이 멀리 뱀산의 중턱을 가리키며 “대통령님이 토담집을 짓고 고시공부를 하셨던 ‘마옥당’ 자리”라고 말했다. 마옥당은 대통령 부친께서 마음을 갈아 구슬이 되라는 뜻에서 지어준 이름이다.
그 앞 가을걷이를 앞둔 봉하들판에 자색벼로 새긴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일행은 마옥당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위패가 모셔진 정토원으로 옮겼다. 선진규 정토원장님이 준비한 바나나를 먹으며 휴식을 취한 뒤 호미든관음상으로 이동했다.
호미든관음상에서 내려오는 길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노랗게 핀 꽃 한 송이에 대해 문 이사장이 엎드려 관심을 보이자 모두들 둘러쌌다. 그리고는 꽃 이름을 놓고 작은 논쟁을 벌였다. 생태해설사가 쑥부쟁이과 식물이라 했지만 한 분이 ‘대통령님 꽃’이라고 덕담을 건네자 모두 한바탕 웃었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땀으로 조성된 생태연못을 지나 정자에 앉아 진영 단감과 봉하 막걸리로 휴식을 취했다. 숨을 고르고, 천천히 봉하의 바뀐 풍경을 둘러봤다. 평범한 작은 시골마을이 이젠 활기차고 아름다운 생태마을로 변했다. 무엇이 가져온 변화일까. 이런 모습이 ‘노공이산’의 꿈이었던가.
대화 마당 “민주주의는 분열로 통합하는 기술”
저녁을 먹고 ‘추모의 집’에 모였다. 고등학생 설화님, 윤하님, 유영님도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다시 보니 이런 캠프가 있을까 싶다. 칠순부터 네 살배기 아이까지 참가해 1박을 보내는 캠프는 봉하캠프 밖에는 없을 것 같다. 각자 소개를 하고 재단의 주요사업 계획을 진지하게 경청했다. 이어 민주주의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열망이 그대로 담겨 있는 영상을 보았다.
“민주주의는 통합의 기술입니다. 민주주의는 분열과 투쟁으로 통합을 이루는 제도입니다. 이 모순된 얘기에 묘미가 있는 것입니다. 절대주의 또는 전제왕권 시대는 반대를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죽고 죽이는 반란이 일어나고 혁명이 일어나고 전쟁을 하고 해서 공존을 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결국 궁극적으로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반면에 민주주의는 분열하지만 분열해서 규칙에 따라 싸우고 결국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분열로서 통합하는 기술이다’ 이렇게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참여정부평가포럼 강연 중)
캠프에 참여한 분들 가운데도 서거 이후 대통령님 철학과 가치 또는 매력을 알게 된 분들이 많았다. 그만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이날 영상에 대한 호응이 컸다.
조기홍님은 “우리 노 대통령은요. 아무리 어려운 것도 어떻게 쉽게 말씀해야 할지 매일 연구했던 거 같아요. 어째 저리 팍팍 꽂히도록 말씀을 하시는지….” 추모전시관으로 이동했다. 많은 회원들이 유독 대통령님 자전거 앞에 한참이나 서 있었다.
정자마당에 다시 모였다. 봉하 막걸리와 돼지고기로 뒤풀이 마당을 열었다. 주제는 ‘사람사는 세상’이었다. 방길전님이 특유의 부산사투리 억양으로 “이래사나 저래사나 다 흙일뿐이기라. 사람사는 세상을 위하여”라고 건배사를 제의하자 모두 환호했다. 김정호 영농법인 봉하마을 대표가 “내년에는 백미, 흑미, 홍미 다 섞어 만든 ‘사람사는 세상미’를 내놓아야겠다”고 말하자 박수가 쏟아졌다. 그렇게 봉하의 밤은 깊어갔다.
“하루 자니깐 너무 좋네예”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기대를 모았던 가을걷이 행사가 비로 무산되어 마을 청소와 비누 만들기, 천연염색 등의 체험활동으로 대체되었다. 특히 콤바인으로 벼 베기 하는 모습을 보러 왔다는 이경희님 아들의 실망이 대단했다. 입이 삐죽 나왔다. “다음 주 가을걷이 행사에 참여하면 되겠네”라고 말하자 금세 밝아졌다.
마을청소 중 누군가 입을 열었다. “우리 대통령님은 비랑 참 인연이 깊은가봐예. 서거 때도 폭우가 쏟아졌고 1주기 때도 그렇고….”
거리 한쪽에서 사람들이 웅성웅성했다. 들판 넘어 개천에 오리 3마리가 마치 원앙처럼 다정히 모여 있었다. 봉하재단 관계자가 “농사짓던 오리들은 지금 다 백숙이 되었는데 쟤들은 그전에 탈출한 거에요. 지금은 백숙 장사가 끝나서 좀 더 오래 살겠네.”라고 하자 폭소가 터졌다.
돌아오는 길에 봉하마을의 낙후성에 대해 들었다. “여기가 해발이 수 미터 밖에 안됩니다. 물이 하도 들어차서 겨울이면 철새 천국이 되지요. 어쨌든 90년대 중반까지 봉하마을은 3년에 한 번 밖에 농사를 못 지었습니다.” 이를 들은 정춘희님은 “우리 대통령님 진짜로 마이 가난했겠네요”라며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일정을 모두 마쳤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탈 시간이 되었다. 다들 아쉬운 표정이다. 그래도 “그전에는 봉하에 오면 돌아가기 바빴지만 1박으로 보내는 기회를 얻게 돼 너무 좋았다”는 의견이 많다. 한 참석자는 “같이 모여 하룻밤을 보내니 덜 힘들고 정신적으로 좀 치유가 되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참가자들은 “화포천에 철새가 오는 겨울에 꼭 다시 오겠다”며 손을 흔들었다. 설레임과 반가움, 그리움과 아쉬움이 함께 한 역사적인 첫 봉하캠프는 후일을 약속하며 끝났다.
2010년 10월 27일
노무현재단
※ 제2회 봉하캠프는 11월 말 열릴 예정입니다. 두 번째 봉하캠프 일시 및 신청대상 등 상세 내용은 별도로 공지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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