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Finding Echo’ / 虛虛 / 2010-10-21)
연합뉴스에서 웃기는 기사 한 편 올렸더군요. 제목을 보기만 해도 대번에 연합뉴스라는 걸 알 수 있는 그런 기사 말에요. 제목이 <北, 언론자유 ‘최악’… 한국 27계단 급등>이래나 머래나? 한국의 언론자유를 ‘동토의 나라’ 북한에 비교하고, 나아가 27계단이나 급등했다며 밑도 끝도 없이 설레발 떠는 기자의 모습이 무척이나 큐티하죠?
내용인즉슨,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19일 발표한 ‘2010년 언론자유 지수’에 따르면, 북한이 르완다, 시리아 등과 함께 세계 10대 언론탄압국가에 선정된 데 반해 한국의 언론자유는 올해 크게 개선된 것으로 평가됐다는 겁니다. 전체 평가대상 178개국 중 42위를 기록하며 지난해보다 무려 27계단이나 껑충 뛰었다나요?
어쩌면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대한민국을 북한보다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주신 이명박 각하의 은혜를 생각하며 오르가즘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권력이 직접 손댈 필요도 없이 각 분야에 고루 심어놓은 허수아비들에 의해 철저히 통제·조작되는 이 땅의 척박한 언론환경을 보고도 “27계단 급등” 운운하며 언론자유가 나아졌다는 식으로 보도한 걸 보면.
그런데 고춧가루 뿌려서 미안하지만, 이게 그렇게 대단한 일이랍니까? 기사에도 잠깐 언급됐듯이, 지난해 한국의 언론자유 순위가 69위였습니다. 민주국가의 언론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저렴한 밑바닥 수치, 거기서 27계단 뛰어봤자 42위에 불과합니다. 노무현 정부 때 달성했던 30위권에도 훨씬 못 미치는 낙제점수라 이거지요.
다들 아다시피,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 언론자유는 30위권으로 아시아 톱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2005년 34위, 2006년에 31위에 랭크된 것을 비롯, 주류매체들이 ‘기자실 대못박기’에 항의한답시고 노무현 정부을 향해 떼거리로 비난·독설·저주를 퍼붓던 2007년에도 언론자유 지수는 30위권 밖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 정부 들어서면서부터 순위가 급락, 30위권에서 40위권으로 밀려나더니 급기야 69위까지 곤두박질 치고 말았습니다. 신문 방송을 통해 MB 목소리만 들리는 언론 암흑시대가 도래한 겁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올해 언론자유 지수가 상승하게 된 데는 미네르바 석방과 피디수첩 무죄 판결 등 언론과 무관한 사법부의 진취적 판결에 힘입은 바 큽니다.
그럴진대 부끄러움을 아는 언론이라면, 27계단 급등했다고 희희낙락 입거품 물기보다 조용히 뒤돌아서 가슴을 쳐야 하지 않을까요? 언론자유가 만개한 나라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동네방네 나팔 불기보다 참여정부 대의 기준에도 못 미치는 작금의 열악한 언론상황을 통탄·개탄·한탄하며 날 선 목소리를 가다듬어야 하지 않을까요? 노무현 정부 때 조중동이 그랬던 것처럼 말에요.
혹 잊으셨을까 봐, 노무현 정부가 언론자유를 후퇴시켰다며 맹폭을 퍼부은 동아일보의 두 사설을 잠깐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하나는 참여정부 초기인 2003년 4월에 작성된 사설이고, 또 하나는 참여정부 말기인 2007년 10월에 작성된 사설입니다. 공교롭게도 두 경우 모두 ‘국경 없는 기자회’가 매긴 언론자유등급이 세계 39위였다는 거, 참 재밌지 않습니까?
동일한 단체에서 평가한 언론자유지수가 40위권, 아니 60위권을 밑돌아도 비판의 말 한마디 없는 비루한 이 시대를 생각하며 감상해 보시죠. 쓴웃음이 절로 날 겁니다.
“최근 ‘국경 없는 기자회’가 평가한 한국의 언론자유등급이 세계 39위다. 경제 규모 12위에 걸맞지 않은 부끄러운 수준이다. 정부는 한국 언론의 자유를 어디까지 후퇴시키려는가….”(사설, <신문시장 자율규제가 옳다>, 2003.04.30)
“국제 언론환경 감시단체인 ‘국경 없는 기자회(RSF)’는 작년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를 31위로 낮게 평가하더니 그나마 올해엔 39위로 떨어뜨렸다. 세계 언론 사상 유례없이 기자들의 공무원 접근을 차단하는 최근 상황까지 반영됐더라면 언론자유지수는 더 추락했을 것이다….”(사설, <국가 위상 추락까지 국민 탓인가>, 2007.10.18)
虛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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