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성질환, 안전

정부가 '뿌린대로 거둔' 버스폭발 사고

pulmaemi 2010. 8. 11. 12:08
가스용기 버스 아래 설치돼 피해 커, '폭탄 싣고 달리는 버스'
 

'시민의 발' 역할을 하고 있는 시내버스가 폭발하면서 "버스타기 무섭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부랴부랴 긴급대책을 마련하고 나섰지만 일각에서는 무리한 '친환경정책 성과내기'가 가져온 '인재'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건은 9일 오후 서울 성동구 행당동 차로에서 발생했다. 갑자기 '펑'하는 소리와 함께 신호대기 중이던 버스가 폭발하면서 승객 등 1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중 이모(28·여)씨는 폭발충격으로 양 발목뼈 부위가 절단됐으며 한양대병원에서 봉합수술을 받은 상태다. 병원 관계자는 "발목이 완전히 절단된 것은 아니지만 상처가 심각하고 이송당시 출혈이 심했기 때문에 발을 정상적으로 쓸 수 있을지는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다.

◇ 벌써 8번째 사고… 정부는 뭘 했나?

사고의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압축천연가스(이하 CNG)버스 폭발사고는 이번이 8번째며 안전성에 대한 논란도 보급단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됐었다는 점으로 미뤄 어느 정도 '예견된 사고'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CNG버스 폭발사고는 2005년 1월 전북 완주군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가스를 충전하던 중 폭발해 직원 1명이 다친 것을 시작으로 최근 5년간 8건이나 발생했다. 이들 사고원인의 대부분은 용기결함 때문이었다.

사고가 잇따르자 정부는 지난해에서야 문제를 인식하고 3년마다 용기를 정밀 점검토록 하는 '고압가스안전관리법 개정안' 마련에 들어갔다.

CNG버스가 보급되기 시작한건 5년 전인데 관련 안전법은 이제야 입법예고중인 셈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CNG버스 도입 당시 외국처럼 재검사제도를 미리 알고 함께 시행했으면 좋았을텐데 사실 정부에서 논의를 시작한건 작년 초 부터다"며 "관계부처와의 협의, 예산문제 등 관련 논의를 거치다보니 1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CNG버스의 안전점검에 대한 근거법이 없다보니 운행 중인 CNG용기의 재검사기준도 없고 혹시 모를 가스누출에 대비한 가스누출경보기나 차단장치를 단 버스는 전국적으로 20여대 정도에 불과한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서울시에서는 CNG용기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자 제조업체에 연료통을 교체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강제성'이 없다보니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번 사고 역시 CNG용기결함으로 인한 가능성이 높다. 가스안전공사 관계자는 "일부에서 폭염 가능성을 제기하는데 만약 가스를 넣은 직후라면 용기가 팽창되므로 가능성이 있지만 사고차량은 충전 후 3~4시간 운행됐었던 것으로 보아 폭염이 원인은 아닐 것이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외부요인보다는 용기결함으로 인한 가스누출 등의 원인일 것으로 보고있다"고 덧붙였다.

◇ '폭탄' 싣고 달리는 CNG버스

문제는 설사 용기결함으로 가스가 누출됐다 하더라도 이번과 같은 대형사고는 충분히 예방할 방법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번 사고차량은 CNG용기가 버스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폭발 규모가 더 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대림대학교 자동차과 김필수 교수는 "미국의 경우 CNG용기가 모두 버스위에 설치돼 있는데 이는 가스가 누출되더라도 가스입자가 가벼워 공기 중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폭발의 위험성을 줄여주기 때문"이라며 "또한 가스가 폭발할 경우 위로 터지는 특성도 고려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이번 사고가 용기결함으로 인한 가스누출이 원인이라면 CNG용기가 버스 아래에 설치돼 있어 승객들의 피해가 컸다는 설명이다.

현재 국내 CNG버스 가운데 저상버스는 CNG용기가 버스 위에 설치돼 있지만 일반버스는 CNG용기가 디젤연료통이 있던 아래쪽에 들어가 있다.

김필수 교수는 "만약 출근시간대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며 "일반 CNG버스는 결국 폭탄을 싣고 달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한편 환경부는 현재까지 CNG버스가 전국적으로 2만3000여대 보급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당초 환경부는 2012년까지 CNG버스 보급대수를 2만8000대로 확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었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하면서 CNG버스 안전에 대한 불신의 여론이 높아져 목표달성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환경부 관계자는 "운수업체나 지자체에서 CNG버스 보급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에 당초 계획은 무리없이 달성될 것으로 보였으나 사고 후 안전대책을 마련해 국민들을 얼마나 안심시키냐가 앞으로의 보급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친환경정책이 결국 성과내기에만 급급해 가장 중요한 '시민안전'을 놓쳤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김필수 교수는 "이번 사고는 안전을 무시해 발생한 인재의 대표적인 모델이 될 것이며 후유증도 클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정부가 대책마련을 통해 얼마나 철저하게 검사하고 예방해나가느냐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관건이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메디컬투데이 손정은(jems@mdtoday.co.kr)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