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성질환, 안전

생활 속 은나노 제품, 모르고 쓰면 '독'

pulmaemi 2010. 6. 22. 09:39
흡입시 폐·간에 이상, 살균력 등 효능도 알고보면 엉터리
 
[메디컬투데이 손정은 기자] 친환경과 살균력을 내세워 생활제품 전반에 걸쳐 출시되는 ‘은나노’가 알고 보면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독’이 될 수 있어 정부의 대책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은나노가 관련업계의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세탁기부터 비데, 젖병, 학용품에 이르기까지 종류를 불문하고 쏟아져 출시됐지만 은나노의 안정성과 효능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 은나노, 인체에 얼마나 유해한가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은 지난 3월 한국생활환경시험연구원에 의뢰해 은나노 입자의 흡입 독성을 동물실험 한 결과 폐와 간에서 독성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실험결과에 따르면 은나노 입자를 공기로 90일 동안 흡입시킨 흰쥐를 부검했더니 암수 모두 폐포염이나 염증성 세포 덩어리가 폐에서 발견됐으며 간세포 부종 등 간조직 이상도 보였다.

하지만 이 실험은 은나노를 직접 흡입했을 경우에만 해당하므로 은나노가 쓰이는 생활제품에 관해서는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더구나 현재로선 제품의 은나노 표기에 대한 기준도 없는 상태다.

기술표준원 관계자는 “산업표준화법에는 은나노의 표기기준에 대해 제한하는 사항은 없고 은나노에 대해서 과대광고를 한다 해도 이를 제재할 방안이 없다”고 밝혔다.

관련업체들도 은나노가 직접 흡입되지 않는 이상 제품의 소재로만 쓰이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최근 출시된 위니아만도의 에어컨의 경우 은나노 필터를 통한 살균력을 강조한 대표적인 제품 중 하나다.

위니아만도 관계자는 “은나노 필터는 은나노를 배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공기가 필터를 거치며 살균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전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영국에서는 나노입자가 세포에 직접 닿지 않더라도 세포의 DNA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은나노 제품도 간접적인 유해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삼성전자의 은나노세탁기가 미국과 유럽에서 은나노에 대한 안전성을 검증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던 사례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강대 화학과 이덕한 교수는 “당시 미국에서는 삼성이 ‘은나노세탁기가 박테리아를 죽이는 살균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자 ‘살충제법’에 따라 인체·환경에 무해하다는 것을 입증하라고 요구했다”며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결국 삼성은 ‘실버나노’란 표기를 ‘실버케어’라고 고쳐 쓰고 사실은 은나노가 없다고 밝히는 망신을 겪었다”고 비판했다.

◇ 과대광고 속에 감춰진 ‘엉터리 효능’

문제는 업체들이 주장하고 있는 살균력 등의 효능에도 의심의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한국소비자원은 2007년 시중에 유통되는 16개 사업자의 은나노 젖병과 일반 젖병을 임의로 선정해 균 감소율을 시험한 결과 두 종류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다고 발표했다. 은나노의 살균력은 결국 ‘과대광고’였던 셈이다.

뿐만 아니라 그간 출시됐던 은나노화장품들도 모두 과대광고인 것으로 밝혀졌다. 식약청 관계자는 “은나노를 포함시켜 식약청의 심사기준을 통과한 화장품은 아직까지 한 제품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시장에 출시된 은나노화장품은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자 그는 “그런 제품은 과대광고를 한 제품들로 적발될 경우 식약청에서 행정조치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달 ‘은나노챠콜모델링파우더’를 출시한 화장품 제조업체 킴스코즈는 품질검사를 실시하지 않고 제조성분 등을 허위기재해 제조업무 정지 3개월의 처분을 받았다.

이처럼 안전성과 효능 모두 제대로 검증이 되지 않은 은나노 제품이 소비자의 눈을 속이며 출시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업의 ‘경쟁적 마케팅’과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정부의 ‘전문성 결여’라고 지적한다.

서강대 이덕한 교수는 “은나노와 같은 논란을 겪으며 사라진 ‘육각수냉장고’, ‘무세제세탁기’ 등의 예처럼 상식이하의 마케팅 폐해가 되풀이 되는 것”이라며 “삼성전자의 세탁기문제에서 보듯 우리정부와 미국의 규제가 얼마나 근본적으로 다른지 알 수 있다”고 꼬집었다.  
메디컬투데이 손정은 기자 (
jems@md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