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생활

똑똑해진 환자들…의사하기 힘드네

pulmaemi 2009. 2. 5. 08:08

`medical + consumer` 메디슈머 커뮤니티 활성화…치료수준ㆍ가격등 정보공유

직장인 이영현 씨(33)는 무릎이 좋지 않은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 메디슈머 카페에 가입했다. 이씨는 이곳에서 비(非) 수술적 방법에 의한 관절치료로 명성이 높은 A병원을 소개받아 진료를 예약했다. 이씨는 "예전 같으면 무조건 가까운 병원, 좀 유명하다 싶은 병원을 찾았겠지만 이제는 각 병원의 세부 특장까지 살펴보고 나서 가장 적합한 병원을 찾게 된다"며 "인터넷에는 이런 정보가 무궁무진 널려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내에서 내과 개원의로 20여 년째 일하고 있는 박 모씨는 "요즘 환자들 중에는 자신의 병의 증세와 원인을 설명하며 심지어 처방약까지 특정하는 `똑똑한 환자들`이 부지기수"라며 "모든 환자가 의사의 말을 금과옥조처럼 따랐던 10여 년 전에 비해 의사노릇하기가 참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웹(Web) 2.0` 시대는 정보 수혜자와 공급자 간 경계를 무너뜨리며 우리 삶의 양상을 속속들이 바꿔놓고 있다. 네티즌이 수동적 `읽기` 기능에서 벗어나 스스로 `쓰기`를 시작하고 주어진 정보를 향유하는 한편, 스스로 정보를 생산하는 것이 웹 2.0 시대의 특징. 이는 모든 영역에서 소비자와 공급자 간 세력 관계의 역전을 불러오고 있다. 아주 오랫동안 불평등한 공급자-소비자 관계가 지속돼 온 의료영역에서도 웹 2.0의 열풍은 거세다.

메디슈머는 의료를 뜻하는 메디컬(medical)과 소비자(consumer)를 합친 말이다. 의료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크며 인터넷을 통해 각종 의학정보를 수집하고 이와 관련된 커뮤니티 활동을 주도하는 적극적인 의료소비자를 뜻한다.

메디슈머의 등장은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전통적 환자와 병원 관계는 일방적인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특징지어졌다. 해당 질환이 어떤 질병이고 무슨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어느 병원이 가장 뛰어나며, 최고 의사는 누구인지 등에 대한 정보를 일반인이 알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메디슈머는 이 같은 `병원-환자` 사이의 역학관계를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메디슈머들은 단지 인터넷서핑을 통해 의료정보를 획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료서비스 비교 사이트를 개설해 의료기관별 치료수준, 가격, 개별 의사의 능력 정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 인터넷 포털 등에서 활동하는 인기 메디슈머 카페의 경우 회원이 20만명을 넘어설 정도. 이들 카페에는 병원 정보부터 각종 의료 시술, 약품에 대한 설명은 물론이고 의료기기 효능에 대한 비교 정보까지 올라온다. 이들의 평가는 해당 의료기관의 평판을 좌우할 정도로 위력적이다.

함유근 건국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오진했다고 신문에 나는 것보다 환자 블로그에 뜨는 것이 더 빈번하고 무서운 일이 됐다"며 "블로그를 통해 최초 문제화된 일이 언론 기사로 이어지는 것이 패턴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 의료정보 범람이 순기능만 갖는 것은 아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환자들이 인터넷에서 얻는 정보 중 32%는 잘못된 정보로 분류된다. 반면 72%의 네티즌들은 온라인 정보가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건강정보에 근거해 잘못된 자가진단 또는 치료로 건강을 망치는 사례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함유근 교수는 "웹 2.0은 병원에 대한 환자의 지위를 일방적 수혜자에서 공동 협력자로 격상시켰다"며 "의료 서비스 제공자들은 웹을 통해 고객과의 상호작용을 강화하는 한편 부정확하고 불완전하며 부적절한 의료 정보를 통제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원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