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세상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는다.'

pulmaemi 2009. 10. 26. 16:24

(서프라이즈 / 이기명 (kmlee36) / 2009-10-26 13:33)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는다’
 양산에서 노무현의 모습을 본다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09-10-26)


양산이 뜨겁다. 재보선 때문이다.

 

재보선이라면 관심이 별로인데 이번은 다르다. ‘이명박 정권 심판’이라는 이유에서인지 국민들의 관심도 대단하다.

 

한나라당으로서는 몹시 듣기 싫겠지만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좇는다’는 말을 곳곳에서 듣는다. 귀 막는다고 안 들을 수 있나. 그러기에 정치를 잘해야지. 정직하게 신뢰받는 정치를 하면 그런 소리 마쳤다고 하겠는가.

 

양산 선거 현장을 찾았다.


박희태 후보와 민주당 송인배 후보 간의 싸움이다.

 

거물이라는 박 후보는 원래 남해가 지역구지만 세상이 다 아는 이유로 공천도 못 받고 이번 보선에 양산에서 겨우 출마를 했다. 그래서 김양수 후보는 몹시 화가 나 있다. 내 터를 빼앗겼으니 왜 화가 나지 않으랴.

 

양산 사람들은 ‘우리는 자존심도 없는 줄 아느냐’고 열 받는다. 박희태의 양산출마는 아무리 생각해도 명분도 실리도 없다는 것이다. 국회의장 하려는 욕심 때문에  양산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당선이 된다 해도 그것으로 양산과는 끝이라는 것이다. 당선되면 나 몰라라 할 사람이라는 것이다.

 

박희태와 송인배의 선거운동은 많이 다르다. 거물론을 내세우면서도 명분에서 밀리는 탓인지 박 후보 쪽 기가 죽어 있다. 그래서 정치에서는 명분이 참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진실성도 안 보인다.

 

박희태 후보의 풀죽은 운동 현장과 송 후보의 살아있는 운동 현장은 반드시 나이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송인배 후보의 운동현장에는 활기가 차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눈물이 많다. 왜 안 그렇겠는가. 이해가 간다.  송인배 후보를 비롯해 그를 도와주는 운동원 모두가 노무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절절한 한이 있다. 민주화 운동의 동지다.  설사 인연이 없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이 억울하게 삶을 마감했고 심지어 자살을 강요당했다고까지 말한다.

 

10월 24일 3시 30분. 양산시 구 버스터미널 앞 연설회장에서 목격한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민주당의 젊은 최고위원 안희정의 쉰 목소리는 차라리 피 매친 절규였다. 통곡이었다. 

 

‘민주역사를 되돌려 놓은 이명박 정권을 반드시 역사의 법정에 세우겠다.’
그의 목소리는 연설 내내 눈물에 젖어 있었다. 그가 절규하는 등 뒤 화면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수줍은 미소를 띤 체 웃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애창곡 ‘작은 연인들’이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문득 옆에 있는 젊은 여성의 행동이 이상해서 쳐다봤다.

 

그의 손은 계속 눈으로 갔다.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30대의 여성은 서너 살 된  아들의 손을 꼬옥 잡고 있었다. 엄마가 왜 울까. 꼬마는 이상했을 것이다. 먼 훗날 알게 되겠지.

 

시선을 의식한 여성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내가 노무현 후원회장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죄송하다고 했다. 아니다. 나 역시 속으로 울고 있었었으니까.

 

연설을 듣는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들 처연하다 못해 비참하다.

 

그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는 노무현 대통령이 송인배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라면 아닌가. 서거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슬픔 때문이라면 아닌가.

서거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이 사람들의 얼굴에 배어 있었다. 그것은 순수한 인간의 감정이었다.

 

송인배 후보는 40대의 젊은 정치인이다. 박희태 후보와는 30여 년의 차이가 난다.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을 했고 민주화 운동에 헌신해 온 청년이다. 반듯하게 살아온 과거는 이미 검증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사랑을 받았고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관을 하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능력을 길렀다. 나 역시 20여 년을 알고 있는 송인배 후보는 결단코 잘못된 정치와는 인연을 맺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송인배 후보가 이런 말을 했다.
“유권자를 향해 연설을 할 때 저는 청중 속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을 봅니다. 어떤 때는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나를 보시고 어떤 때는 웃으시며 나를 보십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말을 할 때 전 목이 메어 말을 못하겠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 송인배는 또 울었다.   20여 년 동안 송인배 후보를 겪어 오면서 늘 자식처럼 생각한 나 역시 그의  눈물을 보면서 그를 안고 울었다. 가슴은 갈기갈기 찢겼다.

선거에서 승패는 결과를 보아야 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승패와 더불어 국민을 우습게 아는 정권, 부자들만 알아주는 정권, 약속을 손바닥처럼 뒤집는 정권,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민주주의를 과거 독재정권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나라당 정권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노래하는 노무현 정권이 과연 국민의 입과 귀와 자유를 억압한 적이 있는가. 진정 잃어버린 20년인가. 

노조를 탄압했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방송에서 사랑받는 연예인을 쫓아냈는가. 김제동 윤도현은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연예인이다. 김제동이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에서 사회를 보지 않았고 이명박 정부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KBS에서 쫓겨났겠는가.

 

이 나라 최고의 방송진행자인 손석희 교수도 100분 토론에서 하차 당했다. 말 같지 않아서 말을 않지만 어느 누가 손 교수 하차에 이유를 믿겠는가. 어쩌면 못된 짓은 요렇게 골라가며 하는가. 정말 재주도 좋다.  

 

아니라고 하면 박근혜 한나라 당 전 대표가 말했듯 ‘나쁜 사람’이다.

부자에게는 세금을 깎아주고 국민의 복지예산을 삭감한다. 멀쩡한 강을 파헤치는데 22조원을 퍼 넣고 뭘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 국민 한 사람이 진 빚은 몇백만 원이라는데 모든 국민을 빚쟁이로 만들 작심이라도 했는가.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한 세무조사는 사돈의 팔촌까지 샅샅이 뒤지는데 대통령 사돈은 무풍지대라고 국민들은 느낀다. 이것은 정치도 아니고 정의도 아니고 국민에 대한 도리도 아니다. 정치보복이 아니라고 하면 초상집 상제가  웃는다.

 

바로 이번 선거는 그들의 잘못을 일깨우고 경고하기 위한 심판대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양산시민들이 뒤에서 말한다.

 

‘이번에 심판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공천만 하면 부지깽이라도 당선된다는 오만방자한 생각을 다시는 하지 못하도록 경고를 해야 한다. 그것이 나라를 위하고 양산을 위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부산 동구에서부터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경험을 되살려 보면 이번 양산선거는 느낌이 다르다. 경험처럼 훌륭한 스승은 없다고 한다.

 

설사 말은 안 해도 그냥 쳐다보는 눈빛이 따스하다. 처음 만나는 양산시민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박희태 후보가 잘못 한 것이라는 것이다.

 

왜 양산에 출마를 했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만만해 보였냐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번에 양산에서 망해 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것이다. 나라를 위하고 양산을 위해서라도 투표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했다.

 

애국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소름 돋는 말이지만 양산의 바닥에는 그런 기류가 도도히 강물처럼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민주당 홍영표 의원과 함께 한나라당 연설회장에 갔다. 누군가 홍영표 의원을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사색이 되어 보고한다.

 

“의원님. 아무래도 위험합니다.”

웃음을 참느라고 무척 고생했다.

 

온몸으로 헌신하는 송인배 후보의 운동원들과 그냥 대충 대충 넘어가는 상대 후보의 운동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 운동원의 말에 무슨 감동이 있겠는가. 

삼국지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다.


‘죽은 공명이 살아 있는 중달을 쫓는다.’

서거한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있는 누구를 쫓는다는 말인가.
현명한 국민들과 양산 시민들은 잘 알 것이다.


2009년 10월 26일

(cL) 이기명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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