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성질환, 안전

“풀리지 않는 극심한 피로”…‘번아웃 증후군’ 주의

pulmaemi 2020. 5. 13. 13:28
집중·기억력 저하…두근거림이나 잦은맥박 증상

[메디컬투데이 김민준 기자]

대학교수 박모(47) 씨는 최근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피로해지고 예년보다 집중력도 현저히 떨어졌다. 최근에는 강의 중 이유 없이 떨리는 증상까지 나타났다. 커피를 서너 잔 이상 마셔도 노곤함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목 뒷부분이 항상 뭉쳐있고 가끔 이유 없이 허리가 아프다. 몇 해 전 다친 어깨는 쉽게 낫지 않고 밤에 너덧 번 깨는 건 이미 일상이 됐다.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은 충분한 휴식 뒤에도 극심한 피로 증상이 풀리지 않고 6개월 이상 지속하는 상태를 말한다.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로 모든 에너지가 방전된 같이 업무나 일상 등에 무기력해진 상태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뉴욕의 정신분석가 프로이덴버거(Herbert Freudenberger)가 '상담가들의 소진(Burnout of Staffs)'이라는 논문에서 처음 사용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번아웃 증후군을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만성 직장 스트레스’로 규정했다. 의학적 질병은 아니지만 제대로 알고 관리해야 하는 직업 관련 증상 중 하나로 인정한 것이다.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홍승권 교수는 “번아웃 증후군은 만성적인 스트레스가 지속되면서 생긴 부신의 코르티솔 호르몬과 교감신경 항진이 그 원인으로, HPA(hypothalamic-pituitary-adrenal,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피질축)이 과활성화돼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어 “성공 지향적이고 성과 위주의 현대사회에서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 부적절한 휴식, 영양소가 부족한 식사 등으로 부신 기능이 저하되면서 생길 수 있는 내분비 호르몬의 변화로도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번아웃 증후군이 발생하면 만성적인 피로감과 함께 아침에 일어나기 어렵고 감기 등 상기도감염의 재발이 잦으며 확연하게 체력이 떨어진다. 또 이유 없는 체중감소, 알레르기 증상, 관절통 등이 반복적으로 발생하지만 일반적인 검사로는 아무 이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극심한 피로감, 전반적인 위약감, 우울감, 불면증과 함께 예민하고 쉽게 화를 내거나 어지럽고 실신을 하기도 한다.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지고, 완벽주의적 성격을 보이며 좌절감과 공포감, 강박적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초기 단계에서는 졸린 증상보다는 쉬고 싶다는 욕망이 강할 수 있고 불면증, 맥박이나 호흡이 빨라지며 식욕감퇴나 심한 불안감을 보일 수 있다.

아울러 위장관계에 관련된 증상이 자주 나타나는데 명치 부위가 뻐근하거나 긁는 것 같은 불편함을 흔히 느낀다. 설사와 변비가 반복되거나 밥맛이 떨어지며 배가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 든다. 비뇨생식기계 증상으로는 밤에 소변을 보는 것과 생리 전 긴장감이나 월경통 등이 있다. 심혈관계로는 두근거림, 잦은맥박이나 느린맥이 나타날 수 있다.

근골격계에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은 흉쇄유돌근 및 승모근의 긴장과 통증, 요통 등이며 뇌신경계 계통으로는 두통이나 회전성 어지럼증, 이명 등이 나타난다. 이외에도 음식이나 약물에 알레르기 반응이 잘 생기고, 술을 전보다 못 견디며 짠 음식이나 단 음식을 갈구하는 현상이 있다.

감별이 필요한 증상으로는 탈진, 무력증이 있다. 먼저 탈진은 신경학적 기전에 의해 생기는데 세포 기능의 부전, 간독성, 과도한 사이토카인의 분비 등에 의해 발생한다. 무력증은 오후 늦은 시간에 심하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증상으로, 이는 내분비 장애로 인한 저혈당 증상이나 알레르기 반응에 의한 히스타민의 증가 또는 부족, 저혈압으로 발생한다.

홍 교수는 “번아웃 증후군이 심해지면 일상적인 생활이나 가벼운 운동에도 극심한 피로를 느끼는 과로 후 전신 무력감까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피로 증상은 같은 상황에서도 개인마다 달라 계량적인 평가가 쉽지 않다. 이에 1970년대부터 평가방법 개발이 활발히 진행돼왔다. 크게 설문형 피로 평가와 측정 장비를 이용한 피로 평가가 있다. 설문형 평가로 14문항을 사용하는 ‘만성피로지수(Chalder Fatigue Scale)’가 가장 많이 쓰인다.

장비를 이용한 피로 평가는 ‘액티그래피(Actigraphy)’라는 기계로 피로와 일상적인 신체활동 간의 관계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를 제공하는 ‘액티비티 레코드(Activity record)’가 있다. 주로 만성피로증후군 환자들에서 사용한다.

▲홍승권 교수 (사진=인천성모병원 제공)



홍 교수는 “번아웃 증후군은 약물치료보다는 영양 섭취와 휴식 등 생활습관 교정과 스트레스 관리 등으로 치료한다”며 “보다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 생활양식과 사고 방향의 전환이 필요하고, 이완반응 및 인지행동요법을 생활 속에서 꾸준히 실천하면서 지속해서 생활습관 교정에 힘쓰게 된다”고 말했다.

환자의 상태에 맞춘 스트레스 관리법으로 횡격막(복식) 호흡법, 자율 훈련법(autogenic training), 점진적 근긴장이완법(progressive muscle relaxation), 바이오피드백(biofeedback), 인지행동요법, 명상 등이 활용된다.

스스로가 가장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을 찾고, 충분히 수면을 취하도록 한다. 불면은 부신 고갈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수면 환경의 개선과 이완 요법 등 깊은 잠을 위한 조치를 취하고 개인에게 맞도록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도 필요하다. 골고루 먹되 커피나 술, 음료수, 담배 등 자극적인 음식은 삼간다. 또 인공감미료나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음식의 노출을 피한다. 운동은 단계에 맞게 적절히 조정한다.

심한 단계(탈진)에서는 오히려 운동이 회복을 방해할 수도 있다. 점진적으로 운동의 강도와 빈도를 높이는 등급별 운동처방(graded exercise treatment)이 유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타민, 마그네슘 및 기타 미네랄, 엘카르니틴(L-carnitine) 등 보조제를 복용하는 것도 추천된다.

면역력을 강화하는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는 저녁 11시부터 새벽 3시까지는 깊은 잠을 자야 한다. 가벼운 운동은 깊은 호흡과 긴장 이완을 통해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자율신경의 하나인 부교감 신경을 활성화한다. 부교감 신경은 면역계를 자극한다. 운동은 면역 세포와 림프액의 흐름을 활발하게 한다.

음식은 칼슘이 풍부한 식품을 많이 섭취하면 만성피로 증상을 완화하고 면역력을 증가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가 있다. 미국 인체 영양연구소가 10명의 여성에게 칼슘 함량이 각기 다른 4가지 종류의 식사를 39일간 하게 하는 실험을 했다. 칼슘을 많이(하루에 3컵 반의 요구르트, 또는 탈지유에 함유된 만큼의 양) 섭취한 여성군에서 월경통, 수분 정체, 피로감 및 무기력한 기분 등의 증세가 훨씬 약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됐다.

단백질과 염분의 지나친 섭취는 칼슘의 흡수를 저하하거나 배출을 증가시킬 수 있다. 단백질의 경우 kg당 2g이 넘지 않도록 한다. 술도 칼슘의 흡수를 저하하고 배출을 증가시킨다. 탄수화물 대사로 생산되는 에너지의 저장과 방출에 관여하고 단백질 및 DNA 합성의 역할을 하는 마그네슘도 충분히 섭취한다. 보통 하루 200-400mg(섭취 권고량 280mg)을 음식과 함께 먹을 것을 권장하고 있다. 칼슘의 보충도 필요하다.

홍 교수는 “번아웃 증후군 환자는 충분히 공감(compassion)해 주는 의료진과 ‘삶의 질’의 우선순위에 대해 논의(communication)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운동과 명상 등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자가치료(self-care)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메디컬투데이 김민준 기자(kmj6339@md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