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신입생 500명 중에 불과 9명만이 졸업을 했다. 이것은 실제 상황이다. 남아공 프레토리아 대학의 정치학부에 대한 이야기다.
이 대학 정치학과에 지난 2006년도에 500명의 신입생이 입학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숫자다. 그러나 3년 후(남아공의 인문대학은 보통 3년 과정) 올해 2009년도에 그 500명의 숫자 중에 졸업을 한 학생은 불과 9명이다. 나머지는 490여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500명의 학생 중 마지막 3학년에 최종적으로 남은 학생은 50명에 불과했다. 3학년이 되기 전에 무려 450명의 학생들이 과락을 해서 학교를 그만두거나 다른 하위 대학으로 전과해서 전학을 갔다.
결국 50명쯤 남았는데, 그 중에서도 9명만이 졸업을 한 것이다. 졸업 학년까지 살아남았으나 졸업을 하지 못한 나머지 40여명은 졸업을 위해 1-2년을 더 공부하거나, 아니면 역시 마지막 순간을 넘기지 못하고 결국 마찬가지로 과락을 당할 것이다.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이것은 남아공 프레토리아 대학에서 올해 있었던 실제 상황이다. 프레토리아 대학의 정치학과가 졸업하기 어렵기로 가장 악명이 높은데, 그런 만큼 500명 중 9명 졸업은 특수한 경우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대학의 다른 과는 어떤가? 마찬가지로 정치학과 못지않게 졸업이 매우 어려워 15% 안팎의 졸업율을 보인다.
학생들은 과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죽도록 공부해야 한다. 밤 2시까지 공부하는 것은 예사다. 대학 분위기가 대체로 이러하다. 흑인들은 졸업율이 불과 10%도 되지 않아, 해마다 인종차별 때문이라고 수백명이 학내에서 데모를 한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그토록 머리 좋다는 한국인들도 졸업율은 불과 20% 밖에 안된다.
이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한국 대학 교육 풍토에 대해 너무나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전에도 한번 남아공의 교육에 대해 글을 올린 적이 있지만, 무엇보다 남아공 대학의 어려운 졸업 제도는 다시 한번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남아공 대학은 프랑스 대학과 마찬가지로 문은 활짝 열어놓고 쉽게 입학을 받아준다. 고등학교에서 어지간한 성적만 받아도 프레토리아 대학 입학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앞서 언급한대로 "졸업"이다. 입학은 쉬우나 졸업은 말그대로 전쟁을 치러야 가능하다.
따라서 졸업 기준으로 하자면, 프레토리아 대학 수준은 세계적일 수 밖에 없다. 졸업생 수준이 서울대보다 월등히 높은 것은 당연하고 국제 경쟁력이 뛰어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는 남아공 대학을 잘 모르고 무시하겠지만, 이곳에서 보면 한국의 대학들이 정말 한심하고 국제 경쟁력이 전혀 없는 것이다. 한가지 예로 프레토리아 대학의 법학과는 놀랍게도 작년 2008년도에 유엔이 평가한 인권 법률 분야 1위 대학이었다. 이런 국제적인 인정과 평가가 우연히, 또는 저절로 나온 것이 아니다.
남아공이 치안이 불안하기로 유명하지만(그러나 미국이 범죄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만 남아공은 강력범죄인 총기 강도, 살인 등이 미국보다 높다), 그런 단점을 뺀다면, 남아공의 교육적 환경은 가히 세계 최고라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 유학지로서도 굉장히 매력이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학비도 파격적으로 싸다. 백인들이 교육 복지를 잘 마련해놓은 전통이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프레토리아 대학의 경우 1년 학비가 고작 200만원 밖에 들지 않으면서 수준은 세계적이라 유학지로서도 추천할 만하다. 남아공 대학들이 대체로 학비가 이렇게 저렴하고 박사과정은 학비가 1년 30-40만원 뿐이다. 기숙사도 한달에 고작 15만원 정도 뿐이다.
흑인 정권 들어서 강제적으로 흑인 대학생을 50% 이상을 선발하는 제도로 인해 현재는 남아공 대학들의 수준이 100-200위권 밖으로 하락한 상태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졸업생만을 기준으로 할 때는 여전히 세계 상위권에 속한다. 참고로, 프레토리아 대학의 경우 과거 백인 정권 때 세계 대학 평가 25위로 평가되기도 했다.
남아공에 백인들이 남긴 뛰어난 교육적 유산은 두 가지로 요약되는데, 첫째는 바로 이러한 쉬운 입학 후의 어려운 졸업 제도, 둘째는 여느 선진국과 다름없는 초중고 시절의 전인적 교육이라 하겠다. 공용어인 영어마저 영국 표준어에 거의 가까워 이로 인해 남아공에는 초중고 조기 유학생들이 굉장히 많은 상황이다.
이야기가 잠시 빗나갔지만 졸업에 대해 좀 더 말하자면, 한국 대학 처럼 "정"에 의존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충 학점따고 출석 잘 하고 교수한테 잘 보이면(?) 졸업장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수와 학생 간에 타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교수에 따라 조금 다르나 대체로 강의 시간에 한국처럼 찌질하게 출석을 부르지 않는다. 교수는 그것을 학생의 책임에 맡긴다. 수업 내용은 시험과 직결될 수 밖에 없는데, 결석으로 인한 손해는 전적으로 학생의 책임이다.
도서관을 이용해서 작성해야 하는 창의적인 페이퍼를 자주 내야하는 것은 기본이다. 거기다 시험이 매우 많고 시험은 앞서 배운 내용 전체를 다 다룬다. 따라서 기말 시험에서는 초죽음을 당할 만큼 몇날 며칠을 도서관에서 두꺼운 책 몇권과 씨름을 해야만 한다.
또한 시험도 교과서를 초월해서 갑자기 시사 문제와 결부되거나 응용 문제가 출제된다. 평소에 창의적인 생각을 하지 않으면, 도서관에서 다양한 자료를 살펴보지 않으면, 점수를 따기 힘들다. 또한 전반적으로 학점이 짠 것은 당연하다. 한 학년 500명 클래스에 A플러스가 한명도 힘든 때도 있다. 한국처럼 A와 A+가 50%가 넘는 학점 남발은 상상 조차 할 수가 없다.
교수들은 그로 인해 흑인 학생들로부터 심지어 생명의 위협과 자녀들의 납치 협박까지 받는다. 그럼에도 교수들은 그런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학자적 양심을 고수한다. 즉, 학자적 깡다구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교수들은 수준과 능력이 안되는 학생을 교수들이 굳이 졸업시키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은 학점을 잘 줘 취업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 교수의 미덕이다. 이것이 한국 대학 풍토와의 큰 차이점이며, 결국 이런 차이가 남아공 대학과 한국 대학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한국의 우수한 대학들은 입학 당시 학생 수준은 세계 최고이나 졸업 당시 수준은 평균이하로 떨어지는 현실이다. 따라서 좋은 대학에 들어갔더라도 졸업이 무조건 보장되는 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한국의 대학 발전과 교육의 문제점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물론 한국인의 정서와 우리의 문화와 풍토로 인해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지 못하는 교수님들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한국의 대학과 학생들에게, 또한 우리 대한민국에 약이 되냐는 것이다. 그것은 독이지 결코 약이라 할 수없다.
결론은 대학은 입학의 문은 더욱 열어놓아 입시 지옥으로 부터 학생들을 해방시키고 대신 졸업의 문은 점점 좁혀 대학에 가서 진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올인은 입학이 아닌 졸업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서울대 공화국"이라는 말에 함축된 특정 일류 대학의 카르텔, 문벌/학벌주의를 타파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즉, 학교 간판이 아니라 순수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실력있는 우수한 학생이 우대받는 풍토로 바뀌지 않으면, 교육 시스템을 그 어떤 식으로 바꾸어도 소용 없게 된다.
참고로 남아공 대졸자들은 힘들게 졸업한 만큼 사회적 우대가 남다르다. 남아공 내에서는 대졸자들이 그 뛰어난 상품성(?)을 인정 받고 고급 연봉자로 즉각 취업을 하고, 나아가 세계 각국, 특히 호주와 캐나다와 같은 영국 연방 국가들에 고급 인력으로 스카우트 된다. 그만큼 국제 경쟁력이 뛰어나다. 어려운 졸업의 관문이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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