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이 바위 위로 수백만의 부엉이가 깨어나 날아오릅니다 49재를 마친 후, 다소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현관에 들어서자 형형색색의 수많은 부엉이 인형들이 커다란 눈으로 저를 반깁니다. 저는 부엉이 인형 수집가입니다. 하지만 요즘 그런 부엉이를 보기가 두려웠습니다. 슬쩍 눈길만 스쳐도 가슴이 아립니다. "난 자네들이 다 떠난 줄 알았네" "진보와 보수가 함께 하는 나라" ▲ 2008년 5월 7일 노무현 대통령과 퇴임 후 봉하마을로 대통령님을 뵈러 갔을 때 당신은 이런 고백을 들려주셨습니다. 대통령으로 살아 온 5년 동안 느끼셨던 절체절명의 고독. "제가 책임을 져야죠" 아! '부엉이 바위' 위로 깨어 있는 수백만의 부엉이가 날아오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후회를
(한명숙 블로그 (happyhan.kr) / 2009-07-12)
노무현 대통령님의 유골을 햇살 따뜻한 봉화산 기슭에 안장했습니다. 비로소 그 분과의 이별을 실감합니다.
어두운 밤에 빛을 밝히는 ‘지혜’의 새.
그런 부엉이가 좋아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한 것이 10년이 지나 어느덧 200여 마리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한결같이 부엉이 인형은 제 삶의 입구를 말없이 지켜주고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부엉이 바위’였을까요?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님의 잔잔한 미소가 커다랗게 뜬 부엉이 인형의 눈망울에 서글프게 떠오릅니다.
당신께서 오르신 부엉이 바위가 천근 무게로 가슴을 짓누릅니다. 차마 어떻게 오르셨습니까?
몸을 던질 각오로 오르셨을 그 한 발, 한 발 질곡의 무게를 생각하자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삶의 마지막 발걸음을 헤아리는 그 심정은 또 얼마나 두렵고 힘이 드셨습니까? 당신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처절하도록 서럽게 외로우신 분이었습니다.
2006년 12월 29일, 총리 재임시절의 일입니다. 대통령께서 국정에 유난히 힘들어 하셨을 때 총리 공관으로 저녁초대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이창동 감독과 문성근 씨 그리고 2002년 대통령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몇 분의 문화계 인사들이 함께 초대됐습니다.
그 당시는 참여정부가 추진해온 주요 정책을 둘러싸고 야당과 보수 세력은 물론 대통령을 지지했던 진보개혁세력 마저 각자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 여론이 몹시 악화되어 있던 때였습니다.
정치와 문화에 관한 많은 대화를 나눈 후 네 사람을 지긋이 바라보시던 대통령께서 천천히 그리고 무겁게 입을 여셨습니다.
“난 자네들이 다 떠난 줄 알았네.”
순간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그 말씀 속에 자신을 비판하는 개혁세력에 대한 섭섭함과 원망보다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책무를 감당해야 하는 지도자의 고뇌와 고독 그리고 지지자들에 대한 미안함이 배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 노무현이 아닌, 대통령 노무현의 아픔과 상실을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봉하마을 뒷산으로 함께 가는 길
“권력을 쥔 사람이 진정한 의미의 진보를 할 수는 없습니다.”
“국가의 경영을 위해서 현실을 도외시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진보와 보수가 함께 하는 나라이기 때문이죠.”
“나는 국민통합을 말했지만 결국 국민을 통합하지는 못했어요. 현실의 제약과 벽이 너무 견고했기 때문입니다.”
진보의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었지만 보수를 껴안고 진보와 보수의 협력과 조화를 고민해야만 했던 현실.
국민통합을 그처럼 갈망했지만, 국민이 분열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의로운 정치인 노무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당신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당신을 욕하고, 야당과 보수언론은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침소봉대하며 성마르게 헐뜯고 할퀴어왔습니다.
당신은 모두가 떠난 황량한 빈들에 홀로 서서,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모진 비바람을 고스란히 맞아오셨습니다.
대통령님께서 검찰에 출석하시고 며칠 후인 5월 2일, 당신을 마지막으로 뵈었습니다. 감내하고 계신 아픔이 너무도 서러워 힘내시라 손이라도 잡아 드릴 생각으로 봉하마을을 찾았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국민에 대한 죄송스러움으로 깊은 자책감에 빠져계셨습니다. 불면으로 인해 퀭하신 눈으로 제게 말씀하셨지요.
“결국 모든 것이 수신제가하지 못한 제 탓입니다. 제가 책임을 져야죠.”
저는 당신께서 말씀하신 ‘책임’이 초개와 같이 당신의 몸을 던지는 일인 줄은 몰랐습니다.
백척간두 아래로 자신을 던져 세상의 부조리에 항거하려는 단심(丹心)인 줄은 차마 알지 못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부산대 병원으로 대통령님을 다시 만나러가던 날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지켜드리지 못한 저의 나약함이 죄스러워 차마 영정 속 당신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고백하거니와 저 역시 당신께서 ‘다 떠난 줄 알았던’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당신이 검찰과 언론의 돌팔매질을 묵묵히 견뎌내고 계실 때, 저는 침묵했습니다.
잔인한 세상의 패악과 폭력에도 항변하지 못하고 가슴만 치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부끄러움이 제 가슴에 단단한 다짐이 되어 박혀있습니다.
이제 두 번 다시 국민께, 그리고 당신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희생이, 당신의 마지막 대속(代贖)이 떠난 줄 알았던 국민의 발걸음을 돌려세웠습니다.
다 떠난 줄 알았던, 뿔뿔이 흩어지고 산산이 깨어진 줄 알았던 사람들이 진실과 정의를 지키지 못한 참담한 후회를 가슴에 안고 바람이 되어 다시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대통령님은 ‘국민이 생각하는 만큼 역사는 진보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당신께서 오르신 그 부엉이 바위 위로 자각하고 깨어 있는 수백만, 수천만의 부엉이가 다시 날아오를 것입니다.
49재를 끝내고, 저는 거실의 부엉이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참회의 심정으로 흙으로 빚어진 부엉이 촛대에 불을 밝혔습니다.
진실한 반성과 굳센 연대의 용광로 속에 남김없이 태워
이 땅을 살아갈 사람들의 희망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은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2009년 7월 12일
한 명 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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