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세상

더 <부끄러운 것>은 고백할 줄 모르는 <조선>의 위선이다!

pulmaemi 2009. 5. 2. 11:06

(서프라이즈 / 명덕 / 2009-05-01)


 

뉴욕 타임스의 엊그제 보도의 끝머리다.

 

노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깨끗하고 민주적인 대통령이었다고 믿는 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지지자들 그리고 여행객들에게 매력을 끌었다. 스캔들이 터져 나온 뒤, 치욕을 당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4월 22일에 그의 웹 사이트에 글을 올렸다.

 

“여러분들은 이제 나를 버려 주시오. 나는 더 이상 여러분들이 추구하는 여러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소. 나는 더 이상 민주주의, 진보, 그리고 정의와 같은 것들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없소.”

 

조선일보 사설은 이랬다.

 

2009년 4월 30일, 오늘은 부끄러운 날이다. 자라나는 아이들 얼굴을 쳐다보기 부끄럽고, 우리에게 쏠리는 세계의 시선이 부끄럽다. …… 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내내 이 나라를 ‘있는 자’와 ‘없는 자’로 가르고, 자신을 ‘없는 자의 대표’로 여기며, ‘있는 자’의 부패와 타락을 선두에서 공격해 왔다. …… “도덕적 파산은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피의자의 권리는 별개”라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다운 도덕적 기준과 자존심은 이미 팽개쳐 버린 듯하다.

 

조선의 논조가 읽어줄 만한 일리(一理)가 있는가? 도덕적 상처를 입은 노무현의 지지자로서 한없이 부끄럽다.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만치 안타깝기도 하다. 좀 더 자신의 주변과 친인척들을 관리하지 못했냐고 노무현을 탓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조선이 아닌 다른 누군가 저런 식으로 지적했다면 난 얼마든지 수긍할 수 있다. 아니,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인다.

 

염치(廉恥) 없는 조선은 그 잘난 세 치의 혀로 민족에 대한 배반과 변절, 정치적 위선과 조작을 끝없이 일삼아온 자신의 행태에 대한 반성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언제 한 번 조선이 자신의 전도(顚倒)된 가치관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영욕의 부끄러운 세월을 고백한 적이 있었던가?

 

그 숱한 세월을 치졸하게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반하는 양심적 인사들과 정치적 집단을 까대기 쳐왔던 그 엄청난 비도덕적, 반양심적 잣대로 남을 비난하고 사실을 왜곡한다면 우린 절대로 수긍하지 않는다.

 

우리는 안다. 조선의 포악스러울 만치 더러운 배반의 치욕스런 세월을. 우린 결코 잊지 않는다. 곡학아세(曲學阿世)하면서 자신의 곡론(曲論)을 정론(正論)이라고 우겨대는 그 신문의 민족적 죄악의 더러움을. 조선은 먼저 그간 걸어온 자신의 오욕(汚辱)의 길을 되돌아 봐야 한다.

 

그것부터 먼저 정화시켜야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그 용기를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에 반하여 뉴욕 타임스의 기자는 노무현 스스로 자신의 도덕적 결함의 치욕스러움을 고백했다는 그 진실을 오히려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 우리의 믿음에 반하는 그 행태는 실망스러웠으나 그 양심의 살아있음을 보고 우리는 안도한다.

 

노무현의 양심적 고백을 통해 우리의 머리 위에 빛나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과 같은 우리의 도덕적 법칙과 양심’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고, 또 배웠다.

이 양심의 법칙만이 저 가증스러운 조선 따위가 떠벌리는 위선과 끝없이 물릴 줄 모르는 권력의 욕망을 이길 수 있다는 교훈을 또 한 번 배웠다.

 

진보를 향한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새삼 느꼈다. 그 길에 얼마나 많은 난관의 지뢰들이 숨어 있는지도 보았다. 이 길에서 도덕성이 무너졌을 때, 조선 따위와 같은 비도덕적인 용기마저 포기하고 영혼마저 팔아 치운 비열한 싸구려 지성들이 진보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어떻게 조롱할 수 있는지도 그저 슬픈 눈으로 바라보아야만 했다.

 

쥐박이 무리들은 ‘도덕성을 앞세우고, 온갖 깨끗한 척하더니 너희들도 별수 없잖아’ 하며 고소해할 것이라는 짐작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하루였다.

 

한 정치가로서 노무현으로서는 누구의 잘못이 되었건 간에 자신의 주변 인사들에 대해 적절한 관리를 못했다는 것에 대해선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도덕성에 기반한 그의 정치적 능력을 믿었던 지지자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은 그의 마땅한 도리였다.

 

실제로 그는 “면목이 없다”고 머리 숙여 고백했다. 우리가 기대한 것은 자신의 과오를 고백할 줄 아는 정치가로서의 진정한 <용기>다. 그렇다 해서 다 이해될 수 있는 사항은 아니지만, 그의 양심에 오점으로 남아 빚질 것은 자신에겐 더 이상 없어 보인다. 그가 고개를 숙이고 있을 하등의 이유도 또한 없어 보인다.

 

우리는 그에게 완전무결한 한 인간으로서, 지고지선한 최고의 정치가를 기대한 것이 아니다. 조선과 같은 도적의 무리들과 양심을 속이고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지 않는 인간의 비겁함과 비열함을 넘어, 그래도 우리가 고대하는 더 청정한 지역으로 나아가기를 바랐다.

그런 시대정신을 많은 사람들은 믿었고 또 그를 통해 어느 정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기에 따랐던 것이다. 때론 거친 파도가 밀려와 좌절을 겪었을지라도 앞으로의 희망의 끈을 결코 놓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지 않는 <쥐박이 따위의 조선>과 같은 무리들을 용납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은 그 방향타를 잃었지만 새로운 노무현을 찾아 항해를 계속해야 할 것인가?

모든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어쨌든 노무현이 추구했던 인간사는 세상, 차별 없는 세상, 모든 이가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희구하는 그 정신만은 버려서는 안 될 것이라고 우린 믿는다.

 

****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법적 공방에서 이전투구 함으로써, 받게 될 도덕적 상처와 모욕이다. 게다가 은근히 지하벙커에 숨어 그 게임을 즐길 쥐박이 무리들과 조중동 찌라시라는 것이 영 거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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