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세상

노무현과 길가다 주운 500원짜리 동전 한 개

pulmaemi 2009. 4. 26. 07:40
어릴 때, 길가다 동전 한 닢 주우면 그게 그리도 기분 좋았다.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가끔은 길가다 동전 몇 닢 줍는 꿈까지 꾸고는 했다. 그런데... 나를 기분좋게 했던 그 동전, 주인을 찾아주지 않고 인마이포켓하는 순간 그게 범죄가 된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무슨 죄일까...? 들은 얘기로는 그게 점유이탈물횡령죄란다.

노무현, 그가 500원짜리 동전이라면,,,

어떤 사람은 노무현만 보면 기분좋아 죽겠다고 한다. 길가다 주운 500짜리 동전인 셈이다. 또 어떤 사람은 노무현만 보면 짜증이 난다고 한다. 길가다 잃어 버린 500원짜리 동전인 거다. 어떤 사람은 노무현에게 관심없다고 말한다. 500원짜리 동전을 줍지도 않았고, 흘리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500원짜리 동전을 주운 사람인가...? 잃은 사람인가...?

나는 주운 사람이다. 우연히 어쩌다... 그냥 그렇게 뭔 일로 동네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다가... 남이 흘려 놓은 500원짜리 동전 한 닢 줍듯 노무현을 공짜로 주운 사람이다. 그래서 기분 좋았다. 그래서 노무현만 보면 한없이 기분 좋았다. 그 동전을 잃어 버린 사람의 아쉬움 따위는 고려할 필요도 없이 그냥 그렇게 나는 기분 좋았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나 역시 이 시대의 죄인이라는 것을... 길가다 주운 동전은 내 노동의 대가가 아니다. 따로 소유해야 할 정당한 주인이 있는거다. 나는 그것을 몰랐다. 내가 발견하고 내가 주웠으니까 그게 내것인 줄 알았다. 내 무지가 나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나는 점유이탈물횡령죄를 범한 죄인인 것이다.

지금 잔인하게 내가슴을 후벼파는 이 통증은 아마도... 내가 지은 죄의 벌에 해당할 거다. 노무현은 내 것이 아니었다. 노무현의 주인은 이 시대다. 노무현은 이 시대가 만들어낸 탁월한 작품인 거다. 그의 영광과 좌절... 그리고 부활과 평화와 행복... 이 모든 것이 이 시대가 만들어낸 것이다. 노짱 스스로도 자신의 모든 것을 이 시대의 평가에 맡기겠다는 거인(巨人)의 태도를 보였다. 자잘한 해명과 설명 따위를 생략한 채 시대의 흐름을 타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겠다는 거다. 저항과 도전의 포기선언이다. 그에게는 더 이상 저항해야 할 대상이 없고, 성취해야 할 눈에 잡히는 구제적인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시대의 판단에 맡겨야 할 최고의 위치까지 도달해 버렸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노무현의 낙향은 저항과 도전의 종지부였던 셈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시대에 맡기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옛정에 이끌린 것이었다. 그 뜨거운 구애를 모른척 할 수 없었던 거다,,, 그래서 자신의 의지와 신념의 일부를 허물고 말았다. 그것이 오늘의 참담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노무현이 배신했다고. 왜 이 거대한 불의에 맞써지 않고 그냥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냐고 질타한다. 하지만 노무현은 달라진 것도 변한 것도 없다. 그냥 늘 그대로다. 다만... 시대가 달라졌고, 상황이 달라졌고, 권력의 주체가 달라졌을 뿐이다. 노무현은 그것을 처음에도 인정했고, 지금도 인정하고 있다.

나는 이제, 내가 주운 500원짜리 동전 한 닢에 취해 즐거워할 때는 이미 지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뒤집어 쓰고 있던 사랑이라는 가면을 벗어야 한다. 노무현에 대한 존경은 그를 방패삼고 싶었던 비겁함을 숨기기 위한 수사였을 뿐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고백컨데 나는 비겁한 인간이고, 남의 소유를 편취한 파렴치범일 뿐이다.

이제... 노무현을 시대의 흐름에 맡겨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래도 그것이 옳을 것 같다.

노무현이 걸어가는 길은 한 시대를 통째로 짊어지고 가는 거인의 길이다. 이제 나는 당신이 가는 길의 돌뿌리가 되고 싶지 않다.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다. 최소한 이 정부가 끝날 때까지는, 당신께서 즐거운 마음으로 옛 얘기를 할 수 있는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나는 당신을 향한 구애를 멈추고자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욕심을 채우고자 하는 비열한 짓을 그만 두고자 하는 것이다. 존경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을 방패막이 삼고 싶지도 않다. 최소한 이 정부가 끝날 때까지는...

노짱님... 당신의 판단과 선택이 옳습니다. 옛 얘기를 할 수 있었을 때까지, 대한민국 국민들이 보다 성숙해서 당신의 사상과 철학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홈피를 닫으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능동적인 판단과 행동을 유보하고 모든 것을 시대에 맡긴 채 침묵하셔도 좋습니다. 저는 욕망을 채우기 위한 이 위선을 벗어던지고 천만년이 지나도 변치않을 지고지순한 사랑의 길로 가겠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이 통증과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끝내 극복하겠습니다. 당신을 방패막이 삼지 않을 수 있을 때, 그때 존경한다는 말씀을 떳떳하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어쩌다 우연히 그렇게 길바닥에서 주운 500원짜리 동전 같은 노무현이 아니라 내가 피땀흘려 일해서 창출한 내 노동의 대가인 수억만금의 노무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떳떳이 당신께 내 사람의 마음과 존경의 마음을 표하겠습니다.

노짱님, 당신은 위대한 대통령이시고, 탁월한 민주주의자이십니다. 당신이 닦아놓은 그 길이 저에게는 너무 편한 길이었지만 당신은 그 길을 닦기 위해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이제 쉬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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