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금융업계에서 물리학, 수학, 공학 박사들을 만나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이는 퀀트(Quant)라는 직업군이 생기면서 과학자들이 금융분야에 많이 진출했기 때문이다.
퀀트는 Quantitative의 줄임말. 금융공학 등을 사용하여 자산의 가격을 계산하고 시뮬레이션, 모델링 등을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다. 퀀트라는 직업은 미소간 냉전이 종식됨에 따라 군수업계에 종사하던 로켓 과학자들이 대거 월스트리트로 몰리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상품의 구조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짐에 따라 대부분의 투자은행들은 상당수의 박사급 퀀트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의 역할은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헤지펀드 업계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최근 헤지펀드 관련 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연봉 2-3억원을 제시하는 박사급 퀀트의 구인광고일 정도다. 단순히 퀀트들을 고용하는 것을 넘어서 직원의 대다수가 퀀트이고 퀀트에 의해서 경영되는 헤지펀드도 존재한다. 오늘 소개할 DE Shaw & Co. 가 바로 그런 헤지펀드이다.
DE Shaw & Co. 는 최근 자산이 급증하면서 25조원의 자산을 보유하게 되어, 자산 기준으로 세계 3위의 헤지펀드가 되었고 미국 증권거래소 거래량의 5% 이상을 차지하는 펀드이기도 하다. DE Shaw & Co. 는 최고의 인재만을 뽑는 것으로 유명한데, 프린스턴 대학 컴퓨터 공학과 최우등 졸업자이자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사이트 아마존의 설립자인 제프리 베조스도 DE Shaw & Co. 의 부사장 출신이다.
DE Shaw & Co. 의 설립자인 D.E.Shaw는 원래 스탠포드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슈퍼컴퓨터 이론을 가르치던 컴퓨터 공학 교수였다. 그러던 중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로 직장을 옮겨서 컴퓨터 기술을 사용한 트레이딩 그룹의 책임자가 되었고 2년 후에는 자신의 헤지펀드 DE Shaw & Co. 를 설립했다.
DE Shaw & Co. 는 컴퓨터 공학 교수가 만든 헤지펀드답게 수학 모델과 컴퓨터를 이용한 트레이딩에 특화되어 있다. 트레이딩 전략은 여느 헤지펀드들과 마찬가지로 극비에 부쳐져 있지만 모델을 이용한 통계적 차익거래 등의 시장 중립적인 전략을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전략과 지원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 DE Shaw & Co.는 설립 이래 수천억원을 투자했다. 그 결과 DE Shaw & Co.는 전세계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계량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예측력 있는 모델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DE Shaw & Co. 는 동일한 수준의 리스크에서 최대의 기대수익을 뽑아내는 최적화 기술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DE Shaw & Co.의 최적화 기술은 슈퍼컴퓨터를 사용하여 자산들간의 복잡한 상관관계를 정교하게 분석하고 포트폴리오를 실시간으로 조정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분산투자 기법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DE Shaw & Co. 는 이러한 계량적인 방식의 트레이딩과 더불어 IT 벤처기업 투자 및 에너지 관련 투자, M&A 등 정성적인 분석을 요구하는 분야에서도 좋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분자 생물학 연구사업에도 진출하여 병렬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암세포의 구조까지 직접 연구하고 있다고 하니 DE Shaw & Co. 의 한계가 궁금해진다.
DE Shaw & Co. 이러한 일련의 사업들을 통해서 연평균 20%의 수익률과 낮은 변동성을 달성하고 있다. 물론 DE Shaw & Co. 라고 해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90년대 후반의 LTCM 사태 때는 자본금이 10% 이상 잠식되는 어려움을 겪었으며, BankAmerica 에 막대한 손실을 끼쳐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를 잘 극복하고 더욱 향상된 성과를 보여줌으로써 자산이 다시 급증하여 현재는 세계 3위의 헤지펀드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제도적 한계와 인식부족으로 인해서 헤지펀드의 설립 자체가 어렵다. 그러는 와중에 외국의 헤지펀드들은 우리나라의 금융시장에 진출해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흔히 헤지펀드에 의한 시장의 움직임은 투기세력 정도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파생시장에서) 그러나 그 투기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껏해야 상황이 모두 종료된 후 상관계수가 높은 변수 몇 개로 설명하는 경우가 고작이다.
과연 수십조원의 자산을 움직이는 헤지펀드들이 그런 단순한 방향성 투기를 하는 것일까. 최소한 DE Shaw & Co. 와 같이 모델에 의해서 움직이는 헤지펀드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런 헤지펀드들은 투기에 의해 발생하는 시장의 비효율성을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글로벌 금융시장과 연동시켜서 보아야 헤지펀드들의 움직임이 설명 가능한 경우가 많다. 펀드 전략의 구조를 모르기 때문에 밖에서는 투기로 보이는 것일 뿐이다.
보통 과학자는 금융을 모르고 금융인은 과학을 모른다고 하지만 DE Shaw 와 같이 두 영역을 훌륭하게 조화시켜서 큰 성공을 거두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도 금융과 과학을 겸비한 인재가 점차 많아지는 추세이므로 DE Shaw 와 같은 계량펀드의 탄생을 기대해본다.
김형식 godel.ic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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