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한 사회

"해운조합이 선박관리 잘하는데 뭐하러 돈 쓰나" 4분 만에 폐기

pulmaemi 2014. 5. 1. 11:49

■ 3년전 해사안전법 논의 법안소위에선…
국토부 "별도 기관 설립 실익 없어" 유보 요구
與의원 "뭘 유보… 죽여" 野의원은 의지 없어

 

250명 단원고 학생 등 302명의 세월호 승객들의 목숨을 살릴 수도 있었던 법안은 2011년 국회에서 단 4분 논의 끝에 폐기됐다. 국토해양부(현 해양수산부)와 여당은 "해운조합이 잘하고 있다" "(법안을) 죽여야지"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법안을 발의한 야당 의원조차 "죽이자는데 뭐"라고 적극적이지 않았다. 해양경찰 간부만 해양교통안전공단 설립의 필요성을 공허하게 설명할 뿐이었다. 이 법안이 좌절되면서 선사들의 이익단체인 해운조합이 여객선 안전관리를 계속 맡게 됐고, 과적한 세월호는 어느 누구의 감시나 제지 없이 바다로 나섰다가 가라앉았다.

3년 전 국회에서 무슨 일이

2011년 11월 8일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장. 회의록을 보면 소위원회에서는 오후 2시 27분부터 31분까지 해사안전법 개정안을 심의했다.

논의가 시작되자 김희국 당시 국토해양부 2차관(현 새누리당 의원)은 "법안 심의를 유보해 달라"고 입장을 밝혔다. 부처간 의견 조율이 이뤄지지 않았으니 처리해선 안 된다는 요지였다. 현기환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거들고 나선다. 현 전 의원은 "뭘 유보시켜? (법안을) 죽여야지(폐기해야지)"라며 다음 법안을 처리하자고 재촉했다. 법안을 발의했던 최규성 법안심사소위 위원장(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죽여? 그래, 그러면 죽이자고"라고 말했다.

하지만 폐기를 결정할 수 있는 정족수가 부족했고 백재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잠깐 (내용을) 좀 들어 보자"고 발언해 겨우 법안 내용 토론이 진행됐다. 김 2차관은 "지금 선사들의 결사체인 (해운)조합에서 잘 하고 있는데 그것을 굳이 법제 사이드(해양교통안전공단)에 넘기는 것은 실익이 없다"며 반대했다.

이에 이정근 해양경찰청 경비안전국장은 "선박 용도별로 관리 주체가 달라 해사 안전을 책임질 총괄기관이 필요하다"며 "해상교통안전 관련해서 연구하고 전문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하는 중장기적인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의원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법안은 이후 같은 달 17일 최종 폐기됐다.

국민 안전보다 500억원 중요시한 정부

법안 폐기 과정에는 국토부와 기획재정부가 제기한 '불필요한 정부 부담 증가' 논리가 크게 작용했다. 국토부는 2011년 10월 작성한 업무협의 문서에서 "공단 운영시 2011년 57억원이던 운항관리비용에 해마다 524억원의 추가 소요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여기에 기재부가 힘을 실었다. 기재부는 "현행 제도가 여객선 운송사업자의 분담금에 의해 운영된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국가 재정부담을 수반하면서 별도 조직을 신설, 필요 이상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 보조금 추가지원 보다는 자체 구조조정, 사업영역 현행 유지 등 자구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해운조합의 선박안전관리 체제가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주무부처와 관계부처가 '국민의 안전에 대한 국가 책임 확대'를 '불합리한 비용 증가'로 보고 합세한 것이다.

정치권과 정부부처, 해운업계의 '해피아 삼각동맹'

국토부가 내세운 반대 이유 중에는 "비용 부담 증가됨에 따라 사업자들의 반발이 예상된다"는 것과 "해운조합의 운항관리는 이미 검증된 제도"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참사를 계기로 해운조합 운항관리자는 과적 여부를 알지 못했고 평형수 측정도 안 하는 등 실질적인 안전관리에 손을 놓고 있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해운조합과 해수부(국토부) 관료들 사이의 뿌리깊은 유착 관계가 드러나고 있다.

법안 폐기의 '공신'이었던 김 2차관은 행정고시 24회 출신으로 국토부 요직인 물류항만실 근무를 경력을 바탕으로 해운분야 입지를 넓혔다. 국토부의 4대강살리기추진본부 부본부장을 맡기도 했던 김 2차관은 새누리당 후보로 19대 총선에 출마, 대구 중구∙남구에서 당선됐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최근 구설수에 올라 해운조합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주성호(행시 26회) 전 2차관 역시 업계와 접촉이 잦은 물류항만실을 거쳤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이명박 정권 말기에 '작은 정부'를 주창하면서 정치권과 업계, 정부 부처가 한 몸이 돼 해운조합의 권한 축소에 반대해 왔다"고 지적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