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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의료법인 도입문제 돌다리도 두드려야

pulmaemi 2009. 3. 20. 08:35

임수흠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

주먹구구식 무리한 투자

불법 의료행위 등 부작용

법인 도입 전 면밀한 검토

안정적 수익창출 제시해야

 

최근 기획재정부가 영리의료법인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커지고 있다. 영리병원을 도입하면 의료비가 줄고 의료서비스의 질이 높아지며 의료수지 적자를 면할 수 있다는 게 기획재정부의 주장인데, 과연 그럴까.

 

우선 영리병원을 허용해 의료인이 아닌 사람 또는 법인이 의료기관을 개설하게 될 경우 파생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신중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영리의료법인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먼저 보험진료를 주로 하는 필수진료과들이 도태되지 않고 생존해나갈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전제돼야 한다. 영리병원들은 수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특성상, 보험진료보다는 비급여진료와 고급의료 위주로 운영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보험환자를 주로 보는 동네의원들과 중소병원 등 많은 의료기관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들이 자본과 이윤의 논리에 희생되지 않도록, 보험진료과들에 대한 안정적인 수익창출 모형이 제시돼야 한다.

 

이익 창출에만 관심을 두고 무리한 환자 유치와 과대 투자, 불법 의료행위 조장, 불필요한 의료행위 강요 등 여러 부작용이 양산될 가능성에 대한 안전장치도 미리 강구해야 할 것이다. 영리법인 도입 시 수익성 높은 특정 진료과목으로의 편중 현상이 심해지고 도시 집중화가 가속화돼 의료인력 및 의료기관의 불균형 문제가 지금보다 더 악화될 우려도 있다. 수익만 좇다 보면 보험진료 환자나 저소득계층 환자를 기피하게 되는 현상도 벌어질 수 있다. 이같이 예상되는 부작용들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대비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의료기관의 경영 악화와 자본의 문제는 분명 해결이 시급한 과제다. 의료산업이 국가 성장동력이라는 정부의 입장도 납득은 간다. 한국의 의료수준은 미국 및 유럽의 80~90% 이상으로 평가받고 있고 특정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우리나라의 외국인 환자 유치는 2만5000명에 그쳤고, 의료서비스 수지 적자는 6000억원 이상이니 말이다. 태국이 연간 100만명, 싱가포르는 35만명을 유치해 1조원대의 경제적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 부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을 무시한 채 자본조달 문제 해결을 이유로 성급히 영리의료법인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오히려 현재로선 앞서 지적한 것처럼 국가 의료체계의 혼란과 국민건강 위협을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 이보다 시급한 당면과제는 의료인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저수가체계로 인해 왜곡된 의료체계와 획일적이고 규제일변도의 의료정책을 바로잡고 개선하는 것이다. 그것이 작금의 흔들리는 우리 의료를 튼튼히 하고 불안에 떠는 국민건강을 수호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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