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와 카타르시스
마광수
대한민국 사회는 오랜 유교적인 영향과 엄숙한 청교도적 도덕주의, 그리고 정치적 권의주의 때문에 성(性)에 대해서 이야기하기가 껄끄러운 사회가 되고 말았다. 또한 자유로운 예술 창작과 자유로운 연애와 자유로운 섹스에 대해서 말하기를 부끄러워하며, 그것이 더럽고 비도덕적인 것으로 취급되어 왔다. 이러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윤리적, 도덕적으로 억압되어 있고, 자연 상태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진화적인 본능과 본원의 생명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 있다.
억압되고 억눌린 본능은 폭력적이고 위험한 모습으로, 또는 이중적 위선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예를 들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늘어나고 있다는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나 불특정 다수를 향해 휘두르는 폭력사건, 아동 성폭행을 포함한 수많은 성폭력 사건, 일본 애니메이션 등 특정 문화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오타쿠 문화 등이 그것이다. 국민들은 경제가 어렵다고 난리를 친다.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고 난리를 친다. 88만원 세대, 살인적인 대학 등록금 등 참으로 듣기 괴로운 말들이 난무한다.
이처럼 대한민국 사회는 한 개인이 겪는 사회문화적 제약과 함께, 계속해서 사이가 벌어져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빈부 격차의 문제, 계층 간 소통의 부재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가지 부작용으로 신음하고 있다.
이러한 총체적 난국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 이유는 국민이 무식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무식하다니, 문맹 퇴치를 한지가 옛날이고, 교육열이 높기로는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게 한국인데 이 무슨 말인가? 집집마다 대학 안 나온 자식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평균 학력이 높디높은 우리나라 국민을 두고 무식하기 때문에 살기 힘들다니 이 무슨 말인가? 물론 이러한 의문 표시는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엔 '수준' 이란 것이 있다. 그 수준이 바로 문제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서울대학교가 전 세계 대학 서열에서 몇 번째에 위치하는지는 민망해서 차마 말을 못한다.
우리나라는 교육의 기본 목표를 국민의 우민화(愚民化)에 두고 있다. 우민화 교육이란 국민을 멍청이로 만드는 교육을 뜻한다. 우민화 교육의 역사는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에 의해서 그 틀이 확고히 잡혀 있었다. 그것이 해방 이후에 정권을 잡고 자기네들 혼자 호의호식하려는 정치인들에 의해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초중고교 학생들은 허둥지둥 입시 정책에 끌려 다니며 무엇 하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국가 당국은 일류대학을 선호하는 사회풍조를 조장하고,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입시에만 매달리는 입시 전사 및 로보트를 양성한다. 그리고 그것은 학생들이 제한적인 사고만을 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제한적인 사고' 라는 건 쉬운 말로 해서 '무식하다'는 뜻이다.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 그 역사가 짧게 봐서 일제시대 부터라고 봐도 백년이 다 되어간다. 그렇게 보면 한국 민족은 아직 완전히 도태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고 기적이다. 백성이 생각이 없으면 통치자는 그들의 노동력을 컨트롤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생각이 없는 국민. 철학이 없는 사람들. 이런 국민들은 권력자들이 문화적인 폭력성을 잘만 이용하면 얼마든지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지도자란 인간들은 학생들에게,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거대한 수경재배 시스템에서 조작된 기억만 주입받듯이 아무런 철학도 없는 죽은 정보만 입력시키고, 스스로 생각하는 기능을 제거하기 위해 애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부터 암기 교육과 더불어 객관식 문항 중에서 답은 한가지 밖에 없는 문제 풀이를 반복시키면,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쯤 되면 완전히 멍청이가 된다. 우리나라의 중고교 교육에서는 오로지 수능과목만 족집게 강의로 링겔주사처럼 투입되고 있다.
한국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이리저리 시도해 볼 겨를조차 없는 나라다. 젊은이들의 창조적인 사고는 이미 뇌기능을 상실했다. 오늘도 중고교에서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붕어빵 학생들만 양산되고 있다. 이 붕어빵들이 그들의 최대 목표인 일류 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더 이상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우리나라의 총체적 난국의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무조건적인 암기와 5 문항 중 하나뿐인 정답 고르기 밖에 배운 것이 없는 무식한 국민을 양산해왔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발전이 없이 병색(病色)만 짙어가는 사회가 되고 만 것이다.
대한민국의 이런 총체적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 바로 세련된 예술의 향유와 그에 따른 카타르시스의 실제적인 효용의 추구이다. 예술과
카타르시스의 실제적 효용은, 인간의 본능 가운데 가장 근원적인 욕구인 성욕과 파괴욕 또는 죽음의 욕구, 사디즘 및 마조히즘의 피가학적인 욕구를
대리적으로 충족시켜, 그러한 효과가 생활 전반에 활력을 주어 여러 가지 일반적 소망도 아울러 달성시키는 역할을 해주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위 선진국이란 것은 알고 보면 다름 아닌 '예술적인 면모'를 갖춘 나라들이다. 그 이유는 국민
소득 1 만불 이상부터는 단순히 근면 성실한 노동력만으로 돈이 벌어 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운동으로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은 개인 소득 1 만불까지다. 여기까지는 어느 나라나 노력만 하면 다 올라갈 수 있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방식은 고달프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주 단순한 방식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고 피똥을 싸고 하루 서너 시간 밖에 안자고 뛰고 또 뛰어도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술적 우아함이다. 철학적 가치. 세련되고 자유로운 예술의 향유. 인간의 야한 본성의 자유에 대한 추구, 이런 것들은 육체적 노력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적 우민교육으로 탄탄하게 무장된 국가에서 값싼 집단 노동력으로 이룰 수 있는 소득수준, 생활수준이 있는가하면 풍부한 문화예술적 사회환경을 바탕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소득수준과 생활수준이 따로 있다.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감정과 사랑과 성욕이 배출되고 순환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앞으로의 대한민국 사회는 자유로운 예술표현과 감상을 실현시키고, 세련된 정서적, 본능적 카르타르시스를 마음껏 향유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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