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잡동사니

추신수 MLB일기<11>, “몸에 맞는 볼이 두렵진 않지만…” *

pulmaemi 2013. 4. 23. 10:13

오늘(22일, 한국시간)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4차전이 끝난 후 라커룸으로 많은 메이저리그 담당 기자들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모두 오늘 경기에서 몸에 맞는 볼이 2개나 나왔는데 괜찮으냐, 기분 나쁘지 않느냐는 내용들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더스티 베이커 감독님한테도, 또 동료 선수들 한테도 저의 몸에 맞는 볼에 대한 질문이 집중됐다고 하는데요, 자꾸 그렇게 물어보시니까, ‘내가 괜찮은 게 이상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또한 야구의 일부분이고, 생명의 위협을 가하는 빈볼이 아닌 이상 제가 크게 기분 나빠할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단지 맞으면 아프다는 것 외엔 다른 감정은 안 생기는데, 행여 내가 감정 표현을 했다가 벤치클리어링이라도 벌어지면 저도, 또 가담한 선수들도 징계를 당하기 때문에 심한 통증에도 애써 웃으며 걸어 나가려고 노력합니다.

전 가급적이면 투수의 공이 머리로 날아오지 않는 한, 참을 겁니다. 제가 출루하게 되면 신시내티 뒷 타선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솔로 홈런될 게 2점, 3점을 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맞고 뛰었는데도 불구하고 팀이 지면 기분이 나쁘겠지만, 오늘처럼 이길 수 있고, 부상 위험만 없다면 맞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추신수에게 다양한 '선물'로 즐거움을 준다는 더스티 베이커 감독. 추신수는 최근 베이커 감독으로부터 간식거리를 선물받았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사실 몸에 맞는 공은 저보다는 상대 투수한테 더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아요. 출루를 허용했고, 다음 타자한테 몸에 맞는 공을 던지지 않으려고 의식하다 보면 제구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죠. 오히려 상대 선수들이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더 많이 고민해서 공을 던지지 않을까 싶네요.

 

2년 전 캔자스시티의 조나단 산체스한테 왼엄지손가락을 맞아 부상 당한 후 그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고, 지난 시즌 내내 어려움을 겪었다는 건 다 아실 겁니다. 몸에 맞는 공으로 인해 내 야구에 지장을 받고 두려워한다면 과연 제가 앞으로 야구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그 공이 제 선수생활을, 그리고 제 가족을 걸고 상대할 만큼 두렵지는 않아요. 설령 그런 공으로 인해 제가 돌이킬 수없는 부상을 당한다고 해도, 그 또한 내 운명이라고 받아들일 것입니다.

 

신시내티 선수들은 제가 하도 맞으면서 야구하니까 지나가면서 다 한 마디씩 하네요. 그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저처럼 몸에 맞는 볼이 많은 선수를 처음 봤다는 거죠. 그러나 고의가 아니었으니까 크게 신경쓰지 말라는 조언도 해줍니다. 올시즌에 맞은 9개의 볼 중에서 고의성이 담긴 볼은 단 한 개도 없었다고 봐요.


 

추신수는 신시내티 이적 후 조이 보토를 가까이서 지켜보면 배울 점이 많았다고 말한다. 팀과 거액의 장기계약을 맺은 선수임에도 마치 내년 FA를 앞둔 선수마냥 성실함과 준비성이 굉장히 철저한 점들 때문이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저도 투수를 해봐서 아는데, 타자가 잘 밀어치면 몸쪽으로 공을 던질 수밖에 없어요. 가운데로 몰리지 않으려면 더 안쪽으로 던지게 되는 것이고, 그게 실투했을 경우엔 몸에 맞는 볼이 되는 것이죠. 전 괜찮습니다. 아니 멀쩡합니다. 엉덩이부터 발목까지 시퍼런 멍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는 것 빼곤 건강한 몸 상태이니 너무 걱정마세요^^.


 

신시내티로 이적 후 좋은 점들 중에서 하나가 잘 나가는 선수들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몸 관리를 하는지 제대로 알게 되는 것이죠. 우리 팀에서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조이 보토(10년 2억 2500만 달러)는 마치 내년 FA를 앞둔 선수 마냥 철저한 자기 관리와 웨이트트레이닝을 실시합니다. 집에 개인체력훈련장을 설치해 놓고 전담 트레이너 마사지사 등을 채용, 몸 관리에 최선을 다합니다.

 

굳이 그렇게 훈련하지 않아도 팀과 장기계약을 했기 때문에 잘릴 염려는 없을 텐데, 그는 자신의 환경에 만족하지 않고 이전과 다름 없이 성실한 준비자세로 야구 생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조이 보토를 보면서 절로 박수와 감탄사가 나올 때가 많아요. 저도 나름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는데, 조이 보토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먼 셈이죠.


 

경기 전 이벤트에서 만난 한 신시내티 할머니가 추신수에게 고마움을 전했다고 한다. 신시내티로 와주서 감사하다고. 추신수는 이런 팬들의 마음에 더 큰 감동을 느낀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오늘 경기 전 시즌 티켓을 끊은 팬들과 사진도 찍고 악수를 나누는 이벤트가 벌어졌습니다. 그 행사에 참석하던 중 한 미국인 할머니께서 저한테 이런 부탁을 하시더라고요.

“추, 나 당신한테뽀뽀해도 될까?”
“그럼요. 얼마든지요.”

 

그 할머니는 제 볼에 뽀뽀를 하시고선 제 손을 잡은 후, 제가 신시내티로 와주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전 그 분께 제가 더 고맙다고 대답했어요. 제가 이 팀으로 와서 더 성장할 수 있게 기회를 주고, 지켜봐주셔서 감사드린다고. 그 말은 그 할머니 한 분께 전했지만, 제 마음은 신시내티 모든 팬들에게 하고 싶은 인사였다는 걸 그 분은 모르시겠죠?^^.

 

 *이 일기는 추신수 선수의 구술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신시내티 홈구장, 그레이트아메리칸볼파크를 가득 메운 관중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