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경영연구소 소장 황 장 수
1.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화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다 죽어가던 배트맨 시리즈를 다시 맡아 3부작으로 완결시키고 대박을 터트리며 퇴장했다. 배트맨 시리즈가 총 7편까지 나올 정도로 다른 히어로 영화와 달리 수명이 긴 것은 히어로와 악당의 성격적 복합성과 양면성 그리고 시대적 반영에 있다. 다른 코믹스가 원작인 히어로 영화의 경우 주인공과 악당이 모두 권선징악의 단선적인 성격인데 반해 배트맨 시리즈는 주인공과 악당이 이전 조엘 슈마허 감독제작의 두편 빼고는 모두 매우 양면적 성격을 갖고 있다.
주인공과 악당뿐 아니라 그 배경이 되는 고담시(뉴욕시?)의 시장, 검사, 경찰국장, 시민들 또한 모두 이중적이며 위선적이다. 주인공 배트맨은 자선사업을 하는 재벌이지만 부모를 강도에 잃은 트라우마 속에 은둔하며 악몽에 시달리고 우울증에 시달린다. 악당 조커나 베인 또한 맹목적인 악당이라기 보다 악당이 될 수 밖에 없는 배경과 고담시의 위선을 해부하며 조롱하고 카타르시스를 준다. 배트맨이 다크나이트(흑기사)인 것 또한 중층적 의미이며 전편 다크나이트에서 백기사로 나온 잘 생기고 똑똑한 검사 『하비덴트』 또한 결국 조커에 당하고 난뒤, 정의를 왜곡 해석하며 확률에 모든 것을 맡기는 이중적 모습이 된다. 이 배트맨 시리즈가 공전의 히트를 하는 배경에는 세상의 선악구조가 단순하고 투명한 것이 아니라 복합적이고 심층적이라는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배트맨은 모든 것을 뒤집어 쓴 채 잠적 은둔하고 『하비덴트』는 고담시를 구한 영웅이 되어 동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2. 배트맨 시리즈에서 고담 시민들 또한 양면적 속성을 갖고 있다.
특히 배트맨이 목숨을 던져 구원하려고 하는 고담시의 시민이나 상류층은 끝없이 배트맨을 불신, 음해, 모략하며 도와주기는커녕 기회주의적 처신을 하며 실망시킨다. 그리고 악당 조커나 베인은, 고담시민 속에 내재된 사회전복 욕구와 억압을 자극하며 불지르며, 고담시민들은 이러한 악당의 이유 있는 선동에 때로는 적극 호응하고 동조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고담시민은 배트맨이 경찰에 쫓기는 실황중계에 열광한다. 이는 포퓰리즘과 프로파간다에 취약한 우리사회에 대한 반영인 것이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는 마치 금융위기 이후 『occupy wall street 운동』을 암시하는 듯한 장면들이 나온다. 악당들은 항상 시민들의 억압된 내면과 사회 지배구조의 위선에 불을 지르고 무엇을 얻으려 하기 보다는 파괴 자체에 더욱 집착한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비롯한 배트맨 시리즈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고담시는 결국 범죄와 부패와 탐욕, 위선이 판을 치고 출구가 막혀있는 현대 금융 자본주의 사회의 최첨단인 『뉴욕』을 암시하고 있다. 『배트맨 시리즈』가 신자유주의의 전성기인 1989년 첫 등장한 이후, 금융자본주의의 붕괴와 전세계 대공황을 배경으로 하는 현 시점에서 배트맨의 죽음을 암시하며 퇴장하고 있는 것 또한, 이 시리즈가 담고 있는 내용이 함축하는 바를 극명히 보여준다. 범죄, 탐욕, 부패가 횡행하고 지도층이 타락하며 시민들이 위선적이고 선동과 포퓰리즘으로 흔들릴 때 그 사회는 붕괴위기에 직면하며 이때 구원을 가장한 영웅이 등장하는데 이 영웅의 내면은 복잡하고, 영웅인지 악당인지 구별이 불가능하다는 현실 말이다.
3. 출근 직전 TV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지 못한 한 20대 후반 젊은이의 연쇄 방화가 TV에 보도되었다.
이 청년은 어머니를 병으로 잃고 혼자 고립되어 생계 난에 전전하다 결국 연쇄 방화로 자신의 쾌감을 얻은 pyromania가 되고 말았다. 가관인 것은 범죄심리 전문가라는 여자 대학교수가 TV에 나와 하는 말이 『연쇄방화 등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니 자신의 충동을 억제하라』고 근엄하게 내뱉는 장면이었다. 최근 뉴스를 검색해보면 차량, 건물에 불을 지르는 연쇄 방화 청년이 한둘이 아니다. 이 더운 말복에 그는 처음부터 좋아서 불을 지르게 되었겠는가? 삶이 평탄했던 그 여자교수는 잘 모르겠지만 사회적 이동의 출구가 막히고 하루하루의 생존이 벅차며 사회적으로 고립된 그 청년의 입장에서는 방화가 현실에서의 유일한 출구일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 더운 여름에 불을 질러 이것을 지켜보는 쾌감이 인생의 낙이었다. 또 어제는 한 이혼 후 외롭게 살던 30대 여인이 귀신이 보인다며 자신의 아파트에서 추락해 죽었다. 그 여자가 본 귀신은 그녀의 이웃사회와, 바로 우리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배제와 절망의 귀신이 아니었을까?
계급이 다르면 현실을 보는 시각과 잣대도 완전히 다른 한국사회의 현실을 출근길에 목도하면서 마음이 내내 무거웠다. 가난의 고통은 경험해 보지 않는 사람은 누구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의 내용에 진정성이 결여되고 유명 종교인의 힐링서적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책들의 저자가 진정으로 가난과 사회적 이동의 한계를 절감했다면 그런 류의 책을 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방화청년과 귀신이 보인 이혼녀는 둘다 모두 출구가 막힌 한국현실에 대해 불을 지르고 귀신을 불러 진혼곡을 한 것이다.
4. 지금 우리사회에는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핵융합 시한폭탄처럼 하우스 푸어와 가계부채, 자영업자 붕괴의 시한 폭탄이 재깍재깍 돌아가고 있다.
고담시가 탐욕, 부패, 범죄, 위선으로 부를 쌓아 올렸듯이 지난 10여 년간 우리사회 또한 길거리에 돈을 뿌렸던 『조커』가 그랬듯이, 권력이 앞장서 투기욕망을 장려하고 탐욕을 자극해왔다. 가진 자들은 정보를 이용해 벤처투기, 인수합병, 자산 해외도피, 문어발 기업확장, 건설투기, 주식, 펀드, 파생상품 투기를 선도해왔다. 그들은 자신이 미리 지나간 자리에 그 부스러기를 먹으라고 미끼를 던지며 국민들을 회유 자극하며 욕망을 불질렀다. 그래서 너나 없이 투기에 나섰다가 500만 명이 넘는 사람과 400조 가까운 주택담보 대출을 낳은 것이다. 그러고도 모자라 젊은 층은 틈틈이 모은 돈으로 주식, 펀드, 파생상품 투기에 나서고 노년층은 저축은행에 돈을 갖다 맡겼다. 그리고 이 과실을 죄다 부패한 자와 가진 자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이제 숱한 부양책과 단계적 출구, 퇴출 전략에도 불구하고 하우스 푸어의 시한폭탄은 폭발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며 이를 해체한 영웅은 어디에도 없다. 이러한 하우스 푸어를 수용할 사회경제적인 상황 또한 세계적 대공황으로 인해 매우 열악해지고 있다. 한국의 가계부채, 하우스 푸어가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수출, 투자, 소비가 모두 위축되고 성장, 고용, 수익성이 추락하며 견디기 어려운 마당이다. 마치, 불난집에 부채질 하는 격인, 이런 상황보다 더 불지르고 싶은 귀신 같은 세상은 없다.
5. 문제는 이런 경제 상황을 만든 장본인을 도덕성이야 어떻든 경제 하나는 제대로 살릴 인물이라며, 뽑은 5년 전의 국민의식 수준이다.
평생 60까지 자기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 개과천선하여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 줄 것이라고 기대한 것은 이해가지 않는 망상이다. 집값만 올려주고 주식가격만 올려주면 누구든 OK라는 저열한 대중의 심리가 배트맨의 『조커』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다.
『다크나이트』에서 『조커』는 배트맨에게 말한다.
『(사회)윤리나 규범을 보라고, 그건 나쁜 농담에 불과해. 윤리나 규범 따윈 문제의 징조만 보이면 버려버린다고. 그것들은 세상이 허용할 때만 유효한 것이라고. 너도 알게 될 거야. 위기의 순간이 오면 이 문명화된 사람들도 서로를 잡아먹으려고 안달일걸』
조커는 대중의 윤리의식은 개나 주라고 하면서 배트맨에게 너도 일찍 정신차리라고 충고한다. 물론 2007년 MB를 반대한 사람이라고 해서 더 나은 윤리 도덕성을 가졌고, 찍은 사람이라고 더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를 지지했든 안 했든 지난 5년간 MB 치하에서 벌어진 말도 되지 않는 수많은 일들을 목격하고도 좌시해온 우리 모두는 결국 고담시의 시민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다. 고담시는 한국의 현실에 대한 우화이다. 물론 MB 이전의 대통령 또한 배역만 바뀐 또 다른 『조커』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악역의 레벨과 강도는 다르겠지만..
6. 그렇게 하고도 남은 것마저, 또 정리하고 해먹고 가겠다는데 이제 흥분하는 사람조차도 없다.
진보, 개혁은 공자왈, 맹자왈처럼 화석화된 글자가 되고 개혁가들은 뒷방의 담론가들이 되어간다. 6000억 이상을 주식으로 해먹은 카메룬다이아 CNK를 처리하려니 사무실 정리결과 3000만원만 남았다고 한다. CNK 사장이 바지가 아니라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겠는가? 올 1월 말 CNK 오덕균이 다이아 발견하러 카메룬 가겠다고 나서는데 출국정지 조차도 하지 않은 검찰이 이번 대선에 사회정의를 세우겠다고 법대로 운운하는 것은 『하비덴트』의 이중성처럼 헤깔리는 세상을 더욱 헤깔리게 한다.
F-35를 팔겠다는 미국 회사는 기술이전, 절충교역 등 자기들이 제출해야 할 내용을 백지로 내고 배짱으로 버티고 지금까지 8조원 이상 정부자금이 들어간 KAI 민영화는 F-35 선정시한과 맞물려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황금노선 크루즈, 카지노 사업이 퇴임이전 허가를 받고 출범하는데 이 회사 이름 또한 공교롭게도 원전관련 사업에서 등장했던 회사와 똑같다. 2500만 식수원이 4대강 공사에도 녹차라떼가 되어가도 성공한 비즈니스에는 이의도 없다. 기록적 폭염에 의한 하절기 전력 비상을 핑계로 슬그머니 고리원전 1호기도 재가동한다. 누가 뭐라 하더라도 다 대선에 눈이 팔려있고 눈앞의 정치공학에만 눈 멀어 있기에 멍청하기 짝이 없다. 할 것 다 챙기고 마지막 서너개 꼼수만 성공시키면 대선 판 다시 먹을 수도 있다고 자신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뻔히 선거 때부터 구멍을 판 함정을 새삼 이제서야 들고나와 돈 공천 수사 의뢰하는 선관위나 뒤늦게 알았다는 듯이 부산을 떠는 검찰이나 수뢰가 확인될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새누리나 다들 너무 웃긴다.
7. 지금 한국사회에는 출구와 퇴로가 없는 국민의 심리를 이용해 『조커』가 『배트맨』이 되려 하고 있다.
전편의 조커는 이제 속편에서 훨씬 업그레이드 된 조커를 내세워 세상을 거저먹으려 한다. 조커 말대로 우리사회가 고담시처럼 도덕성과 윤리가 마비되고 이성적 판단이 결여된 사회라면 배트맨은 사용 후 용도 폐기되고(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조커가 결국 지배하게 될 것이다. 국민들은 패를 나누어 무조건 자기 쪽이 서로 배트맨이라고 하며 메시아를 기다리듯 맹목적으로 목을 빼고 응원하고 있다. 그 사이에 『조커』는 앞잡이를 내세우고 선악을 혼돈시키고, 모호하게 만들면서, 윤리와 도덕성을 마비시키고 있다. 약점 많은 가진 자와 범죄자와 부패한자와 결탁 타락한 자들은, 고지식한 배트맨보다 『조커』나 그의 앞잡이와 손잡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적어도 『조커』류는 도덕윤리를 따지지 않은 테니까…
지금 대형경제범죄나 화이트칼라 범죄는 사형시키겠다는 『속편 조커』가 마치 『배트맨』인 듯이, 세상을 웃기고 있다. 『조커의 생각』 책을 보면 마치 진보 도덕 교과서 같다. 그래서 더욱 암울하다. 차라리 선악과 명암이 뒤섞인 다크나이트가 훨씬 낫다. 그는 정의의 왜곡을 가져오고 확률에 모든 것을 거는 모호함에서 어쩌면 조커보다 『하비덴트』 가까울 지도 모른다.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열악하다는 말이 생각난다. 21세기 출구와 퇴로가 막힌 한국사회는 『욕망』을 정치 마케팅으로 소비해오다, 한계가 오자 이제 『욕망의 청소』를 마케팅 하려 하고 있다.
문제는 욕망을 팔아 배트맨처럼 된 『전편의 조커』나, 욕망을 청소하겠다고 나서는 『속편의 조커』 모두 그 출신은 똑같다는데 있다. 배트맨은 어디서 은둔하는지 보이지 않고 『조커』를 잡아야 할 검찰은 『조커』에게 당한 하비텐트 처럼 애매하게 설치고 있다.
고담시 보다 출구가 없는 서울의 여름이 훨씬 더운 것 같다.
우리의 다크나이트는 언제나 『라이즈』할까?
있기는 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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