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자동차 회사 사브가 스웨덴 법원에 파산 보호 신청을 냈다. 사브는 볼보와 함께 스웨덴을 대표하는 자동차 제조업체지만 미국의 손에 넘어간 지 오래다. 볼보는 10여 년 전 포드에 넘어갔고 사브는 20여 년 전 제너럴모터스(GM)에 넘어갔다. 포드와 GM은 독일의 BMW에 맞설 대항마로 볼보와 사브에 잔뜩 기대를 걸었지만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고 특히 사브는 적자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사브는 그동안 GM의 지원으로 버텨왔지만 파산 위기에 몰린 모기업 GM이 미국 정부의 자금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자구책을 발표하면서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사브를 정리 대상으로 올려놓았다. 스웨덴 정부는 작년 말 위기에 처한 볼보와 사브, 자동차 부품회사들을 대상으로 총 35억 달러에 이르는 자금지원계획을 내놓았지만 거기에는 단서가 달려 있었다. 지원되는 자금이 스웨덴 안에서 쓰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브의 차종 중에는 독일에서 생산되는 것도 있고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것도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스웨덴 국외에서 만들어지는 사브 자동차에까지 지원을 할 수는 없다고 분명히 선을 그은 것이다. 스웨덴 정부는 사브를 국유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박았지만 사브가 파산 보호신청을 한 것은 결국 GM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나와 스웨덴 정부의 지원을 확실히 얻어내려는 자구책으로 볼 수도 있다. 금융 위기의 영향이 제조업으로 번지면서 실업자 급증을 두려워하는 각국 정부가 자국을 대표하는 제조업체에 유형무형의 지원을 하려는 풍조도 거세졌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도 매출이 급감하는 르노와 시트로앵 같은 프랑스 자동차회사에 수십억 유로 규모의 자금 지원을 하겠다고 밝히면서 스웨덴 정부처럼 지원금이 프랑스 안에서 쓰여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러니까 체코나 슬로바키아에 있는 르노, 시트로앵의 공장은 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고 이 말은 프랑스로 자동차 공장을 복귀시켜 프랑스 국민의 일자리를 늘리라는 압력이나 다를 바 없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 정부는 유럽 통합의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라면서 당연히 발끈했다.
미국 의회도 미국 제조업체에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 지원 계획을 통과시키면서 "바이 어메리카"라는 구호를 내걸고 미국 일자리를 보호하고 미국 제품을 우선적으로 구매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을 넣었다. 정부 지원에 목을 맨 GM은 전 세계에서 4만 7천 명의 종업원을 줄이겠다면서 특히 고임금 노동자가 많은 유럽에서 2만 6천 명을 감원하겠다고 의회에 밝혔다. 그러자 독일의 오펠 자동차에 불똥이 튀었다. 1930년대에 대공황을 겪으면서 미국 GM에 넘어간 오펠의 독일 노동자들은 그동안 줄곧 흑자를 냈는데도 모기업의 부실 경영으로 억울한 해고를 당하게 생겼다면서 독일 정부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스웨덴이나 프랑스, 미국, 독일 정부는 그래도 행복하다. 기업을 지원해줄 여력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나라 자체가 거덜이 난 나라도 있다. 고금리로 국제 자본을 끌어모아 흥청거리다가 금융 위기로 자본이 일거에 빠져나가는 바람에 통화가 폭락하고 알거지가 된 아이슬란드가 그렇다. 아일랜드, 그리스, 이탈리아도 바람 앞에 등불이다. 유럽연합 회원국은 국가 부채가 국민총생산(GDP)의 60%를 넘으면 안 되는데 이탈리아는 내년이면 국가 부채가 GDP의 110%, 얼마 전에 폭동이 일어난 그리스는 10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활발한 외자 유입과 건설 경기 붐으로 재정이 튼튼했던 아일랜드도 2007년 25% 수준이었던 국가 부채가 내년에는 68%로 급격히 악화될 전망이다.
나랏빚을 국채 발행으로 메우고 있지만 이 나라들은 신용 불량으로 많게는 3%까지 추가로 프리미어 금리를 물어야 한다. 얼마 전까지도 유럽연합 회원국의 국채 이자는 거의 비슷했다. 그런데 경제 위기가 가중되면서 나라 사이의 국채 이자율이 벌어지자 미국과 일본에서는 유럽 단일통화 유로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다들 제 코가 석 자이긴 하지만 요즘 독일을 중심으로 경제 위기를 맞은 유럽연합 회원국들을 어떤 형식으로든 도와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그러지 않고 방치했다가는 유로화가 신용을 잃고 유럽 전체가 공멸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위기에 공동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의식이 생겨난 것은 유럽연합이 있기 때문이다. 1차대전과 2차대전은 모두 유럽에서 일어났다. 위기가 닥쳤을 때 유럽 각국이 다른 나라들과의 공생과 공존보다는 자기만 살고 보겠다는 보호주의로 흘렀고 그것이 결국 세계전쟁으로 이어졌다. 이번의 경제 위기에서도 보호주의의 장벽이 높아지리라는 것은 거의 틀림없다. 각국 정부가 기업에 지원하는 돈은 결국 국민의 세금이고 자국민을 우선시하라는 압력을 각국 정치인들은 뿌리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유럽 역내에서는 무분별한 보호주의에 제동을 걸고 공생하는 것이 더 유리하게끔 유럽연합이라는 틀이 만들어졌다. 아마 유럽연합이 없었으면 세계는 3차대전의 공포에 떨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유럽은 공멸로 치닫는 역내 전쟁을 막는다는 꿈은 이루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로 이어지는 10년 동안 김대중, 노무현 두 지도자가 그토록 남북 관계에 공을 들인 것도 결국은 전쟁의 재발 가능성을 영원히 없애기 위해서였다. 공생하지 않으면 공멸한다는 사실을 남북 정치인과 국민이 모두 절감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개성공단과 서해안 개발, 남북 철도 운행으로 그런 평화 구조가 마침내 이루어지나 싶었다. 남북의 공생 구조가 뿌리내리면 그것을 바탕으로 중국, 일본 같은 주변국과 유럽통합까지는 아니더라도 개별 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공생의 틀을 꿈꾸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러나 아무런 식견도 비전도 없는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들어앉으면서 그런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한국은 또다시 전쟁의 공포로 내몰렸다. 이명박이 어쩌다 대통령이 되었을까. 잃어버린 10년이라면서 국민을 10년 동안 철저하게 세뇌한 조중동의 농간 탓이다. 이탈리아 경제를 신나게 말아먹는 베를루스코니는 얼마 전 사르디니아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 방송과 신문을 한 손에 틀어쥔 언론 재벌이다. 이명박은 조중동에 보답으로 방송까지 넘겨주려 한다. 조중동이 건재하는 한 이명박은 끝없이 복제된다. 조중동이 건재하는 한 한국의 꿈은 어김없이 박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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