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유아 건강

평생 담아둔 속앓이, 한국 여성의 울화병

pulmaemi 2012. 5. 18. 09:37

의욕 상실, 불면 등 우울증세에서 자살 충동까지 이를 수 있어

 

[메디컬투데이 김선욱 기자]

특별한 이유 없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고 가슴이 뛰는 증상, 숨을 쉬기가 힘들고 명치에 뭔가 걸려 있는 느낌이 든다.

중년 여성에 공공의 적인 울화병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화병은 환자가 자신의 우울과 분노를 억누르고, 그 억압된 분노가 신체 증상으로 나타난 것으로 신체 증상을 동반하는 우울증이라고 볼 수 있다.

◇ 화병의 원인, 한국 특유의 여성 문화 영향

화병은 일반적인 우울증과 마찬가지로 주변 환경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가 그 원인이지만 질병의 발생이나 증상의 출현에 한국 특유의 문화적인 배경이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흔히 ‘울화가 치민다’고 표현을 하는데 오랫동안 참았던 울화, 분노 등이 쌓여 있다가 나이가 들고 정신적∙신체적으로 약해져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을 때 폭발하면서 다양한 증상으로 표현되는 문화특이증후군이기도 하다.

우울증의 발생은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로 인해 세로토닌 등 뇌의 신경회로에서 신호의 전달을 담당하는 신경 전달 물질에 이상이 생기고 이것이 우울감이나 불면, 식욕 저하, 의욕 상실 등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화병 역시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 증상이 발생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분노와 같은 감정이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환자가 이러한 감정을 스스로 억누르고 내면화하게 되면서 억압된 감정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차이점이다.

화병은 우울감, 불면, 식욕 저하, 피로 등의 우울 증상 외에 화병의 특징적인 신체 증상이 동반된다.

특별한 이유 없이 갑작스럽게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기도 하며 숨쉬는 것이 답답하고 가슴이 뛰는 증상이 생기기도 한다.

또 소화가 잘 안 되거나 명치에 뭔가 걸려 있는 듯한 느낌을 느끼기도 하며 몸 여기저기에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위험한 것은 우울감이 심해지면 자살에 대한 생각이 증가해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게 될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화여대 목동병원 정신과 임원정 교수는 “임상적으로 환자의 90% 이상이 중년의 여성”이라며 “고지식하거나 양심적이며 항상 감정을 억제하고 모든 잘못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화병에 걸리기 쉽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직장 스트레스가 많거나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남성에게도 자주 나타나며 개인에 따라서는 화병이 수년 이상 지속될 수도 있다.

◇ 힘든 세월 이야기하는 것도 도움, 약물∙정신 치료 병행해야

현재 화병의 진단 자체를 위한 검사가 특별히 존재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른 기질적인 원인에 의해 증상이 나타나는지 여부를 감별하기 위해 뇌 자기공명영상, 뇌파 검사 등을 시행할 수도 있는 수준이다.

신체적 질환이 원인으로 작용하거나 혹은 동반된 경우를 감별하기 위해 기본적인 혈액검사나 심전도, 흉부 X선 사진 등의 검사를 시행할 수 있고 심리 검사나 신경 인지 기능 검사 등을 통해 환자의 진단이나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추가적으로 얻을 수 있다.

임원정 교수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오랜 세월 억눌린 억울함, 분노, 화 등을 공통적으로 표현한다”며 “자신이 얼마나 오랜 세월 힘들게 살아왔는지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로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약물 치료나 정신 치료를 통해서 화병을 치료할 수도 있다. 약물 치료는 항우울제가 주로 사용되며 뇌세포의 연결 부위인 시냅스에서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차단시키는 약물들이 우선 선택되는 경우가 많다.

항우울제가 효과를 나타내는 것은 2~3주 이상 걸릴 수도 있으며 이 기간이 한참 지나도 반응이 충분하지 못하다면 다른 약제로 교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신 치료의 경우는 증상 자체를 조절한다기보다 환자가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식이나 대인관계, 성격 등의 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추구하는 치료법이다.

따라서 단기간에 눈에 띄게 증상이 회복되기보다는 장기간의 지속적인 치료를 받고 스스로 자신의 증상을 병이라 인지하고 치료를 통해 낫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메디컬투데이 김선욱 기자(tjsdnr821@md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