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세상

유시민이 국가론에 푹 빠진 까닭은?

pulmaemi 2011. 2. 11. 11:02

우리 시대의 ‘논객’인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이 몇 달 째 국가론에 푹 빠져있다. 다음 달 국민참여당의 대표로 단독 출마할 것이 확실시되는 유 원장은 바쁜 일정을 줄여 새 책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이달 말에 초고를 마무리하고 오는 4월 쯤 서점에 모습을 드러낼 이 책의 제목은 ‘우리에게 국가는 무엇인가’이다.

좌우 양측에서 공격받아온 ‘국가’, 너는 도대체 누구냐?

20세기 내내 국가는 좌우 양측에서 공격받아 왔다. 자유주의적 비판과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이 그것이다.

자유주의, 특히 198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는 국가를 미워했다. 레이건 행정부의 데이비드 스톡먼 예산국장이 레이건의 감세정책을 ‘짐승을 굶기는’ 것에 비유했을 정도다. 정부는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짐승’이며, 감세는 그 짐승을 ‘굶기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런 정서는 진보적인 사람들내에서도 나타난다.

지금도 노동 현장에서 활동하는 40대 초반의 활동가는 학생 시절 지하철을 탈 때면 곧잘 무임승차를 하곤 했다. 그는 왜 그러느냐는 질문에 “전두환이 싫어하는 일이잖아”라고 답했었다. 그는 최근까지도 자신은 ‘부자에게 세금을’이라는 구호를 싫어한다고 말하곤 했는데, 어렵게 세금을 걷어 이명박 정부에게 ‘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진보 진영 내에 이런 국가혐오론(?)이 얼마나 광범위한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이렇게든 저렇게든 받은 사람들이 국가를 계급지배의 도구로, 다시 말해서 근원적으로 선이나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가 될 수 없다는 ‘정서’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며, 반대편 극단에서 시장에서 권력을 획득한 대기업들이 국가의 규제나 간섭을 피하기 위해 국가에 대해 이념적 공격을 감행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대자본가나 ‘운동권’이 아니더라도 약간의 정부 혐오증은 쉽게 발견된다. 이를테면 정부의 예산을 ‘눈먼 돈’이며, ‘가져가는 놈이 임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정부는 봉급생활자에게서만 세금을 뜯어가고 부자에게는 제대로 세금을 걷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이 그것이다. 이런 인상은 오랜 독재 기간 동안 형성되었고, 상당부분은 지금도 사실일 터이다.

그러나 대자본가나 ‘운동권’이나, 평범한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어떨 때는 국가에게 무언가를 강하게 요구한다. 평소 입버릇처럼 정부를 미워하면서도 어떤 이슈에서는 ‘정부가 무엇 무엇을 해서는 안된다’든가, ‘반드시 무엇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아주 모순된 감정이 공존하는 셈이다.

 

유 원장은 이런 식이어서는 ‘진지하게 정치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지식인이라면 모를까, 정치인은 국가에 대해 확실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측근들에 따르면 유 원장이 집필하고 있는 새 책은 국가주의 국가론과 자유주의 국가론, 마르크스주의 국가론과 목적론적 국가론 등 주요한 국가이론을 소개하고, 문명의 역사에서 국가의 역할과 관련하여 제기된 중요한 질문에 대해서 주목할 만한 답변을 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검토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그 검토의 잠정 결론은 자유주의 국가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국가론을 결합한 진보의 국가론이다. 유 원장의 표현을 빌자면 “국가를 중심으로 볼 때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며, “정치적 자유와 아이디어 경쟁, 민주적 절차를 통해 국가권력을 장악하거나 국가 운영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 진보의 국가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몇몇 언론에서 ‘선행(善行)국가론’이라고 부른 이 국가론은 신자유주의적인 '작은 정부'론이나, 마르크스주의적 국가소멸론에 대한 비판이며, 더 쉽게는 국가에 대한 냉소주의적 태도를 버리자는 입장이다.

‘유시민의 변화’라는 코드로 바라보면?

유 원장은 지난 달 27일 열린 비정규직 문제 토론회에서 “당시 집권세력이 국가를 보는 관점에 부족함이 있었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자유주의적 기조를 강하게 갖고 있었다. 자유주의 입장에서 국가를 보면, 국가는 뒤로 물러나 있고, 시장의 거래, 계약에 대해서 매우 소극적인데, 이런 이론에 짓눌려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자신을 포함한 참여정부의 주도 세력이 비정규직 문제를 보는 데서 신자유주의의 ‘위세에 눌려’ ‘뒤로 물러나’ 있었음을 성찰적으로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유시민’이라는 개인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유시민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유시민의 국가론’은 참여정부 시절 자신을 짓눌렀던 신자유주의의 위세를 극복하겠다는 반성이며, 한평생 ‘반골’로 살았던 자신의 냉소를 버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되지 않을까?

이정무 기자 jmlee@v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