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기
- 도종환 -
들에는 푸른빛이 사라진지 오래고
재를 뒤집어 쓴 듯한 산은 말이 없습니다
하늘은 무언가 쏟아질 듯 둔중하게 흐르고
그대 없어 마음도 오래 폐허입니다
겨울은 일찍 찾아와 길 위에 찬바람을 날리고
사흘만 햇빛이 머물면 곧 혹한으로 덮는 일이
겨우내 되풀이 되리라 합니다
그러나 치욕을 성찰로 바꾸는 것 또한
겨울바람입니다
그대 없어
한쪽 팔로 불면의 무게를 괴고
뒤척이는 날 많아지지만
가장 어두운 시간이야말로
어둠을 넘어서는 시간입니다
해가 바뀌어도 혹한은 위세를 부리고
야만의 목청 거리를 휩쓸고 몰려다니겠지만
그럴수록 그대가
옳다는 생각 버릴수 없습니다
그러나, 라는 말이 용수철처럼 밀고 올라옵니다
그러나, 라고 말하며
그대 꿈꾸던 미래의 아침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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