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청년 건강

우리 아이 바보 만드는 '바보상자'

pulmaemi 2009. 2. 6. 10:05

모방범죄, 소아비만, 지적장애, 우울증 유발

 

[메디컬투데이 박엘리 기자]


'TV'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나라에 TV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72년 9월 상공부가 컬러텔레비전 생산계획을 발표할 때 즈음이며 불과 30~40년 전 일이다.

'꽃보다 남자'도 '아내의 유혹'도 '패밀리가 떴다'도 없던 그 시절, TV없이 어린 시절을 보낸 그 당시 아이들이 과연 불행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직장인의 평일 여가 시간은 3~4시간을 넘기 힘들고 어린이와 청소년들 역시 방과 후 학원수강과 과외 등으로 자기 계발이나 취미활동에 투자하는 시간은 극히 적다.

우리가 여가시간의 절대량을 TV에 바칠 만큼 우리에게 가치가 있을까.

◇ TV는 '백해무익'?

5살 아이를 둔 주부 김모(34)씨는 "직장에 다녀서 시부모님이 아이를 키워주셨는데 아이에게 매일 하루 종일 비디오 애니메이션이나 TV를 보게 하셨다"며 "나도 특별한 일이 없다면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을 꼭 보기 때문에 아이에게 TV를 못 보게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가능한 어렸을 때부터 시청각 자극을 가하는 게 자녀의 언어능력 계발이나 지능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있는데 이것은 분명 잘못된 생각임에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일본 소아과 의사회가 아기들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하루 10시간 이상 TV가 켜져 있는 가정에서는 눈을 접촉하려고 해도 눈을 맞추지 못하는 아기들의 비율이 97%나 됐다.

또 어렸을 때 TV를 많이 볼수록 나중에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뉴욕주립 정신의학연구소가 ‘사이언스’에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TV 시청시간이 하루 1시간 미만인 아이들은 10대 후반부터 20대 전반기까지 강도 등 범죄를 저지른 비율이 9.1%였으나 시청시간이 1~3시간인 아이들은 28%, 3시간 이상은 약 40%까지 급증했다.

'내 아이를 지키려면 TV를 꺼라'의 저자 고재학 기자는 "TV는 과잉자극을 주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만들며 '마약'과도 같은 강한 중독성을 가진다"며 "아동기 때 과도한 TV시청은 인간과 인간사이의 대화나 자연에 대한 직접 경험을 줄게 하며 또 소아비만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TV 앞을 떠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인간의 뇌파를 연구해온 과학자들은 TV가 묘한 이완감과 편안함을 주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TV를 켜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고 말한다.

사랑샘터 소아정신과 김태훈 원장은 "TV를 보게 되면 뇌파활동이 줄어들고 TV를 끄면 뇌파활동이 다시 활발해지는데 이 때 불쾌감을 느끼게 돼 원래 계획했던 시간보다 더 오래 보게 되는 것"이라며 "청소년보다 영유아의 TV시청은 언어 등의 발달지체와 지적 장애를 가져올 수 있어 더 심각하며 하루 1시간 이상은 TV를 보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 "TV보다 더 재밌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어요"

대전광역시 대덕구 평생학습센터에서는 2009년 한 해 동안 'TV를 끄고 책을 펴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TV안보기 운동에 동참한 구민 중 매월 50가구를 선정해 거실에 있는 TV를 치우도록 서가를 지원하고 있는 것.

TV를 끄고 나면 무엇을 할지 몰라 인터넷으로 향하는 등 시행착오를 겪는 사람들이 많다. 2005년 1월18일 결성된 ‘TV 안보기 시민모임’에는 TV를 끄고 행복을 켠 사람들의 다양한 체험담이 올라와 있다.

체험에 참여한 한 학부모는 "집에서 TV를 치우고 하루에 한 번 아이들과 거실에 둘러 앉아 책도 보고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도 하니 너무 좋다"며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책을 사달라고 해 2~3시간씩 책에 빠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루 평균 3시간가량 TV를 본다고 했을 때 사실상 1년에 68일을 TV 앞에서 보내는 셈이 된다. 다른 사람은 일주일이 7일인데 저녁에 TV를 보지 않으면 일주일이 8일인 것과 같아 더 유익하고 재밌는 일에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

이어 고재학 기자는 "TV가 없으면 심심하다고 느끼는 것은 TV에 너무 매몰돼 있어 부부간이나 부모와 자녀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영향이 크다"며 "구민회관이나 청소년문화회관을 이용하면 최신 영화를 값싸게 볼 수 있고 바둑·장기·체스 등의 취미활동이나 운동, 요리하기, 화초 기르기, 집안 수리하기, 자원봉사하기 등도 자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라고 덧붙였다.
메디컬투데이 박엘리 기자 (ellee@md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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