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성질환, 안전

유해물질 '범벅' 터널 안, 알아서 피하는 수밖에

pulmaemi 2010. 9. 6. 09:26
벤조피렌 등 발암물질 검출, 독성 초미세입자 심장질환자 '위험'
 
[메디컬투데이 손정은 기자] 대학생 이진희(22·가명)씨는 요즘 자전거 타는 재미에 푹 빠졌다. 하지만 서울에서 자전거를 타다보면 한번씩 터널을 지나게 되는데 자전거를 타며 가빠진 호흡으로 들이마시는 터널의 공기가 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건강에 영향이 있진 않을까 고민이다.

이씨는 “요즘 같은 여름철엔 터널에 들어서면 뜨거운 공기와 함께 탁한 공기가 바로 느껴진다”며 “자동차 매연을 다 마시는 기분이라 목도 칼칼한 것 같고 터널의 공기질 수준이 어떤지 늘 궁금했다”고 전했다.

터널 안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인도를 따라 걸어본 사람들이라면 이씨와 같은 생각을 한번쯤 해봤을 테지만 터널의 공기질 측정이 대기질 측정처럼 체계적으로 이뤄지지는 않는 것이 현실이다.

◇ 터널 공기는 각종 유해물질 ‘범벅’

현재 터널공기질 측정은 각 시의 보건환경연구원에서 진행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터널에서 검출된 물질 가운데는 발암물질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특히 터널 속 독성 초미세입자는 도시 공기보다 최대 1000배까지 농축돼 있어 건강한 사람은 약간의 호흡 장애 정도에서 그칠 수 있지만 심장 질환이 있는 사람은 심장발작 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해외 연구결과도 있다.

서울시가 2007년 서울시의회 남재경 의원에게 제출했던 자료를 살펴보면 벤조피렌(1.43ng/㎥), 크리센(2.11ng/㎥), 벤조플로난신(2.24ng/㎥), 인데노(1,2,3-cd)파이렌(2.55ng/㎥), 벤조안트라센(1.64ng/㎥) 등이 모두 기준치 이상 검출됐다. 이들 물질은 다핵방향족탄화수소(PAHs)의 일종이다.

PAHs는 독성을 지닌 물질이 많은데 특히 앞서 언급된 벤조피렌 등은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다. 벤조피렌은 석탄 연기에 약 300ppm이 들어 있으며 담배 연기에도 많은 양이 들어 있다. 자동차 배기가스에도 PAHs가 포함돼 있다.

이후 서울시가 2008년 발표한 자료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이 측정한 결과 남산3호터널의 PAHs는 2007년 평균 182.5ng/m3, 2008년 122.3ng/m3였으며 원소성탄소(EC)는 2007년 32.48ug/m3, 2008년 23.86ug/m3로 전반적으로 감소했다.

이 같은 결과를 두고 당시 서울시는 2007년 대비 2008년 터널공기측정 결과 PAHs, EC가 크게 감소했다며 자동차 배기가스저감장치 지원 등이 효과를 봤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터널공기질이 개선된 원인에는 2007년 대비 2008년 교통량이 평균 3.5%감소한 역할도 컸다.

◇ 터널 공기질 측정 신뢰할만한 방법도, 기준도 없어

문제는 자동차배기가스로 인해 터널의 공기 오염도가 높은 특성상 차별화된 측정기준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일반 대기질 측정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최근인 2009년 터널 공기질 측정결과 자료를 요청하자 서울시 관계자는 “측정결과의 신뢰도에 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자료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터널 공기질 오염원으로 작용하는 교통량 등의 요소가 반영되지 않은 채 분기마다 한번씩 측정한 결과를 전체수준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다.

터널 공기 중 오염물질에 대한 검출기준도 없는 상황이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관계자는 “일반 대기질기준에도 아황산가스, 이산화질소, 미세먼지, 오존, 일산화탄소 등의 유해물질 기준은 있지만 이외의 물질은 없는 상황”이라며 “차량통행으로 인해 비산되는 오염물질이 대기보다 높긴 하지만 터널 내부 공기의 오염물질을 적용하는건 선진국에서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나마 터널 공기와 관련된 법적 규정사항은 환기시설 설치시 적용되는 ‘도로의 구조·시설기준에 관한 규칙’ 42조에 명시된 ‘일산화탄소 100ppm 이하, 질소산화물 25ppm 이하’가 전부다.

이마저도 터널 설계시 교통량에 따른 계산을 통해 환기시설을 설치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이지 터널 공기질 측정의 기준은 되지 못한다.

이에 따라 서울시에서는 터널내 조성된 자전거도로나 인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통행이 많은 터널에는 인도와 차도를 분리하는 차단벽을 설치한 상황이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관계자는 “인도와 차도를 분리해 인도 쪽에는 일반대기가 순환되도록 구분했다”며 “상식적으로 따지면 차단벽을 설치해도 일반 대기질에 비해서는 안 좋겠지만 터널내부보다는 오염도가 덜한 편이다”고 설명했다.  
메디컬투데이 손정은 기자(
jems@md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