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한 사회

(펌) 축구장은 교회가 아니다

pulmaemi 2010. 7. 2. 11:41
(서프라이즈 / 서림 / 2010-7-1 19:17)

축구장은 교회가 아니다
[법보시론] 고려대 철학과 조성택 교수
스포츠 기도행위는 기독교계 선교 전략
골 은총으로 여기는 저급한 선교 그쳐야
기사등록일 [2010년 07월 01일 18:03 목요일]
 

해군 함정에는 사관실이 있다. 이 사관실은 함장을 비롯한 장교들을 위한 다용도 공간으로 작전회의뿐만 아니라 식사, 휴식, 담소 등 일체의 공적 사적인 일상적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런데 이 사관실에서 금하고 있는 대화가 있다. 그것은 정치, 여자, 종교에 관한 대화이다. 이유는 명백하다. 이 세 가지는 흔히 사람들이 입에 올리기 쉬운 대화이면서 동시에 첨예한 대립과 갈등의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일반 사회를 보더라도 이러한 것은 비슷하다. 아주 사적인 모임이 아니라면 정치, 여자, 종교 등은 별로 달가운 대화의 주제는 아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이라면 정치나 종교 문제로 친구간이나 가족 간에서조차도 서로 얼굴을 붉히거나 언쟁을 벌인 경험을 가지고 있을 만큼 정치나 종교의 문제는 대립과 갈등의 소지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정치적 신념의 표현이나 종교에 대한 믿음은 자유주의 국가에서 반드시 보장 되어야할 기본권에 속한 것이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는, 그것이 공적인 공간이든 사적인 공간이든 간에, 어느 정도 제한되고 절제되어야 한다. 이는 기본권을 제약하는 법률적 원리로서가 아니라 일종의 공공적 예의이며 윤리의 문제 일 것이다.

 

최근 2010 남아공 월드컵 기간 동안 일부 한국 선수들의 기도 세리머니를 두고 많은 말들이 오갔다. 사실 국제축구연맹(FIFA)에서도 경기 중 선수들의 종교행위를 금할 것을 요구했고 조계종에서도 대한축구협회에 공문을 보내 이를 요청하기도 하였다. 기독교계에서는 이러한 요청에 대해 개인의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발했고, 기도 세리머니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국가대표라는 공인(公人)이라는 점을 들어 기도행위를 비난했다. 그러나 사실 이 문제는 신앙의 자유에 관한 법률적 문제나 공공성 여부의 문제만으로 접근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 법률적 해석 자체가 또 다른 정치적 행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보다는 좀 더 상식과 양식이라는 측면에서 이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국가 단위의 세계 질서가 만들어진 근대 이래 정치적·국가적 이념과 경제적 이익을 둘러 싼 국가 간의 갈등과 충돌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런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전 인류가 정치, 경제, 이념적 갈등을 초월하여 하나의 ‘규칙’으로 경쟁하고 또 화합하는 축제의 장이 되어 온 것이 스포츠 분야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올림픽과 월드컵이 가장 대표적이다. 따라서 올림픽 위원회나 국제 축구 연맹은 참가 선수들이 특정 종교나 정치적 이념을 표현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만 보더라도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 회장은 “특정 종교나 이념의 표현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고 일부 한국 선수를 제외한다면 대체로 이러한 요청은 잘 지켜졌다고 평가된다.

 

한국 선수들의 기도 세리머니는 이번만의 일도 아니고 또 축구의 경우에 한정 된 일도 아니다. 지난번 올림픽에서 역도의 장미란 선수나 유도의 이원희 선수도 그랬고 심지어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어요.”라는 언급으로 동계 올림픽 기간에 중계 아나운서가 중도하차한 일조차도 있었다. 왜 이럴까? 이러한 현상은 선수 개개인의 상식이 부족하거나 문화적 소양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스포츠를 선교의 중요한 수단으로 삼고 있는 한국 기독계의 선교 전략이 있다.

 

4년 전 독일 월드컵 기간 동안 한 기독교계 티브이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복음전도의 방법에는 제약이 없습니다. 스포츠도 그 도구의 하나로 쓰임 받고 있습니다. 올해는 특별히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 스포츠 선교계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대중문화와 디지털기술이 복음에 접목되어 탁월한 도구가 된 것처럼 스포츠도 시대에 부합하는 선교전략으로 사용 되고 있습니다.” 스포츠를 복음의 한 도구로 생각하는 기독교계의 이러한 인식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실제로 1980년 창단된 할렐루야 축구단이 한국 프로축구단의 시초였고 이후 재편의 과정을 거쳐 현재는 안산 할렐루야 팀으로 현재 실업리그에서 활동 중이다. 창단 이래 34명의 국가 대표를 배출하였으며 기도 세리머니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이영무 선수가 단장으로 있으며 K리그의 복귀를 계획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가 스포츠를 선교의 장으로 삼고자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백번 양보해서 아마추어 축구단을 만드는 것까지는 눈 감아 줄 수 있다 하더라도 프로 축구팀을 만드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축구장은 교회가 아니다. 근현대사를 통해 우리는 독재자들이 스포츠나 연예를 자신의 권력의 도구로 삼고자 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스포츠나 연예가 특정 정치권력과 결합하는 것이 문제인 것과 마찬가지로 종교와의 결합도 경계해야 한다. 종교의 사회적 기능을 생각할 때 그것은 프로 야구단이나 축구단을 운영하는 기업과는 다르며 또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들의 기도 세리머니를 두고 개개인 선수들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고 본다. 그들은 그들이 하는 짓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의 그러한 행위를 선한 행위로 부추기고 있는 한국 기독교계의 선교 전략이다. 그러나 한 골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여기는 그런 저급한 기복적 선교보다는 영혼의 구원이라는 기독교 본래 정신에 입각한 좀 더 고급한 선교 전략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1055호 [2010년 07월 01일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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