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10-05-15) 이게 무슨 소린지 아는가. 2년 전, 광화문 광장을 환하게 밝혔든 촛불. 발 디딜 틈도 없이 광장을 가득 메운 수만 명의 촛불을 든 국민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혔던 17세 소녀 한채민. 정치인도 아니고 정치적일 수도 없는 어린 소녀가 지금 핸드폰에 뜬 문자 메시지를 보면서 망연자실 넋을 잃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채민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조선일보는 채민이와 인터뷰를 했다. 2년 전 촛불시위를 재조명한다는 기획기사였다. 조선일보가 총력을 기울인 것 같았다. 채민이는 조선일보라서 거절하려고 했지만 좋아하는 선생님의 간곡한 권유로 인터뷰를 했다. 그 인터뷰가 조선일보에 실리고 지금 채민은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으로 망연자실해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렇게 돌아가셨단다
“누나, 진짜 그렇게 말했어? 지금 난리가 났어. 장난도 아냐. 나는 이런 상황 예상했는데, 뭣 하러 인터뷰했어?”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촛불소녀’ 한채민 양 ‘무대에서 읽은 편지는 모두 시민단체가 써준 것이다’”
무엇보다 기사의 제목이 준 충격으로 숨이 막혔다. 기사가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기서 조선일보 기사를 인용할 필요도 없다.
거짓말하고 왜곡하고 과장하고 비트는 것이 어디 이번뿐이랴만 이제 19세가 된 채민이가 받은 충격을 생각하면 이건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채민이가 읽은 편지는 시민단체가 써 준 것이고, 채민이는 앵무새처럼 그냥 따라 읽은 것이 되었다. 조선일보 보도대로라면 채민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로 <나눔문화>라는 시민단체에서 ‘너 저기 올라가 이 편지를 읽어라’ 하니까 ‘네’ 하고 읽은 어린애가 되는 것이다.
이 기사를 쓴 박국희란 기자를 모른다. 기사 한 번 읽은 적이 없다. 읽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왜 읽나. 세균을 만지면 병이 옮는다. 독극물을 만지면 상처가 난다. 악취를 마시면 기분이 나쁘다. 인터넷 검색만 해도 눈이 나빠진다.
채민이와의 인터뷰를 이런 엉터리로 작문한 기자라면 그의 정신수준을 알 수가 있고 양식의 수준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 문제다. 이 기자가 40대라면 한채민 같은 동생이 있을 것이다. 일찍 시집을 갔다면 그만한 딸이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쓴 기사로 해서 딸 같은, 동생 같은 채민이가 받을 상처를 한 번만이라도 생각을 했다면 이런 기사는 쓸 수가 없다. 그러나 썼다. 사람이 아니다.
채민이의 심정은 어떨까. 그는 이렇게 밝혔다.
“고민 중이다. 저를 인터뷰했던 박국희 기자를 한 번 더 만나고 싶다. 만나면 멱살이라도 잡고 싶다. 저와 나눔문화, 다른 촛불소녀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 나눔문화나 다른 촛불소녀들에게 찾아가서 빌고 싶은 심정이다.”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한 우희종 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조선 기사는 황당한 짜깁기”라고 했다. 자신과 인터뷰한 조선일보 기자에게 항의를 하니 기자도 ‘난감하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왔다고 밝혔다. 뻔하다. 자기 기사를 다른 사람이 고쳤다는 의미다.
나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한 치 건너 두 치라고 내 새끼가 아니니까 글을 쓰는 것으로 화를 풀지만 만약에 내 손녀딸이라면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는다.
박국희를 찾아갈 것이다. 아무리 여자라지만 멱살을 잡을 것이다. 공개사과를 요구할 것이다. 소설도 가사냐고 할 것이다. 기자가 뭐 하는 직업이냐고 물어볼 것이다. 이게 내 심정이다.
“누나, 진짜 그렇게 말했어? 지금 난리가 났어. 장난도 아냐. 나는 이런 상황 예상했는데, 뭣 하러 인터뷰했어?”
채민이에게 문자를 보낸 주인공은 바로 채민이와 함께 촛불을 들었던 ‘촛불소년’이었다. 마지막으로 “판단 잘하세요”라는 쏘아붙인 소년의 문자는 그냥 화살이 되어 그의 가슴에 박혔을 것이다.
채민이는 평생을 악몽에 시달리면서 살 것이다. 더군다나 촛불광장에서 편지를 읽은 사실에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는 고백까지 했다고 썼으니 친구들이 자신을 사람으로 여길 것인가. 미칠 것 같았다.
우리는 화면에서 늘 국민을 즐겁게 해 주던 최진실이란 별을 잃었다. 그의 동생도 잃었다. 그 밖에 많은 별들을 잃었다. 자살이라는 끔찍한 비극으로 말이다.
포털은 난리가 났다. 채민이의 핸드폰은 옮기기도 어려운 비난으로 채워졌다. 이 상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래도 조선일보는 아무 느낌이 없는가. 어느 탤런트의 자살원인을 보도한 언론을 인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서프라이즈에 소송을 제기한 조선일보다. 명예훼손이란다. 5억 원을 물어내라고 했다.
그런 조선일보가 어린 여학생의 인터뷰를 왜곡해 평생 아물지 않을 상처를 준 것이다. 이 못 된 죄를 어떻게 씻을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초선의원이던 시절, 조선일보 종로지국의 딸배(배달)소년이 찾아왔다. 지국에서 배달소년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는 읍소다. 노 의원이 조선일보 지국을 찾아갔다. 소년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전화가 왔다.
민주당 출입 기자였다. 왜 쓸데없는 일에 참견이냐는 항의이자 경고였다. 정치나 제대로 하라고 했다. 종로지국 문제에서 손 데라고 했다. 노무현 의원이 말했다. “기사나 똑바로 쓰라”고.
풍산개가 그렇다던가. 한 번 물면 죽기 전에는 절대로 놓지 않는다고. 주간조선이 표지를 노무현 의원으로 장식했다.
‘노무현 의원은 상당한 재산가인가.’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노무현 의원의 모습을 표지만화로 그렸다. 내용은 악의의 찬 허위기사로 도배했다.
‘노무현 의원은 노동자 문제를 처리하면서 뒷돈을 챙겼다.’
‘노무현은 호화요트를 소유하고 인권변호사는 거짓이다.’
노무현은 조선일보를 고소했다. 조선일보에서 당의 고위층에게 압력이 가해졌다. 당 총재인 이기택이 노무현을 불렀다.
정치인이 국내 최대 영향력을 가진 언론을 고소하면 어쩌느냐고. 취하하라고 했다.
못한다고 했다.
그럼 정치를 못한다고 했다.
안 하면 된다고 했다.
당이 상처를 입는다고 했다.
그럼 탈당을 하겠다고 했다.
이기택이 손을 들었다. “원 고집도. 노 의원 맘대로 하슈!”
선거가 있었다. 민자당의 허삼수는 합동강연에서 주간조선 한 권만 달랑 들고 나와 흔들어 댔다. 주간조선의 기사였다. 노무현은 상당한 재산가라고 떠들었다. 노무현은 떨어졌다. 조선일보는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조선일보와의 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주간조선에 기사를 쓴 우종창은 재판정 구석에서 재판을 보고 있었다. 얼굴도 못 들고 비실비실했다. 사람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저것도 기잔가.
노무현이 승소했다. 조선일보가 이를 갈았을 것이다.
노무현은 부당한 언론을 거부했다. 조중동 기자들 자존심 팍팍 상했을 것이다. 노무현의 정치인생은 겹겹이 자신을 포위한 조중동과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조선일보에 노무현은 여전히 타도해야 할 적이었다.
긴 얘기 언제 다 할 수 있으랴.
빨대와 조중동의 ‘노무현 죽이기’는 마침내 노무현을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 오르게 했다. 그를 뒤에서 밀어올린 것은 누구였을까. 빨대였을까. 조중동이었을까. 역사가 밝혀 주리라고 믿는다.
유시민이 김문수와의 생방송 토론에서 분명히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는 노무현을 시기하는 데서 시작되었다고. 노무현 지우기가 이명박 정권의 통치철학이라는 의미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자 바로 불어 닥친 광우병의 광풍은 촛불로 타올랐다. 이명박 정권으로서는 이가 갈리는 한이었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들으며 자책했다는 대국민 사과는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일생일대의 수치로 여길 것이다.
촛불이 원수였다.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조선일보가 총대를 멨다. 채민이도 그 희생자였다. 그러나 잘못 짚었다. 그 많은 촛불소녀를 다 어떻게 할 작정인가.
영국의 시인 ‘T. S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잔인한 4월’과는 상관없이 한국의 역사는 ‘5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할 것이다.
5월은 촛불과 함께 노무현이 불꽃이 되어 부활할 것이다.
5월 23일 촛불은 노무현과 함께 전국에서 타오를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채민이 촛불을 밝힐 것이다. 그들은 촛불을 밝히며 누가 시켜서 읽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울어나는 가슴 속 통곡의 편지를 읽을 것이다.
4대강의 운명에 울고, 천안함의 운명에 울고, 5월 23일 외롭게 부엉이 바위에 오른 노무현을 위해 촛불을 들고 울면서 편지를 읽을 것이다.
채민아! 미안하다. 모두가 썩은 어른 탓이다.
모두가 더러운 언론 탓이다.
2010년 5월 15일
이 기 명(전 노무현후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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