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5일 캄차카 만에서 어선의 그물에 걸려 190미터 심해에 가라앉은 러시아 소형잠수함에 갇힌 7명의 승무원은 사고 소식을 듣고 스코틀랜드에서 10시간 만에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영국 해군 심해 조난 구조대의 도움으로 수면으로 생환했다. 산소를 아끼려고 방한복을 입고 바닥에 가만히 누워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꼬박 사흘을 버틴 승무원들에게 남은 산소는 6시간밖에 없었다. 구사일생이었다. 영국 해군도 러시아 해군도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러시아가 영국의 구조 지원을 받아들인 것은 5년 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의 악몽을 되밟지 않기 위해서였다. 2000년 8월 12일 점보기 두 대 크기에 어뢰를 맞아도 파괴되지 않는다던 난공불락의 핵잠수함 쿠르스크호는 바렌츠해에서 훈련을 하다가 노후한 어뢰의 내파로 연쇄 폭발이 일어나 108미터 심해로 가라앉았다. 러시아 해군은 고르바초프 이후 국방 예산이 대폭 깎이는 바람에 첨단 심해 조난 구조 장비를 운용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미국, 영국, 노르웨이 등의 구조 지원 제의를 거절했다. 그러면서 이슬람신자인 승무원이 자폭 테러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둥 해저에서 정찰중이던 영미의 핵잠수함과 충돌했다는둥 2차대전 때 쓰던 기뢰에 당했다는둥 어뢰를 맞았다는둥 인명 구조보다는 책임 회피를 하기에 급급했다. 푸틴은 흑해에서 계속 휴가를 즐겼다. 그러다가 러시아 국민과 국제 사회의 비난이 빗발치자 뒤늦게 구조 제의를 받아들였지만 이미 생존가능성은 없었다. 쿠르스크호의 승무원 118명은 대부분 함수에서 일어난 어뢰 폭발과 함께 즉사했지만 함미에 있던 23명은 멀쩡했다. 그들은 격실 한 곳에 모여서 구조를 기다렸다. 사망한 드미트리 콜레스니코프 중위의 호주머니에서 나중에 발견된 메모에는 "살아날 가능성은 10-20%지만 희망을 잃지 않겠다"고 적혀 있었다. 러시아 당국은 23명의 승무원은 부검 결과 사고 발생 후 12시간을 전후하여 죽은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지만 쿠르스크호 내부 구조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최소 사흘에서 최대 나흘을 버틸 만한 산소는 있었다고 추정했다. 러시아 해군이 자체 구조 자원이 없는데도 외국의 구조 지원 제의를 거절하면서 미적거리지만 않았어도 살아날 가능성이 있었다. 러시아 해군이 외국의 구조 지원 제의를 거절한 것은 군사 기밀이 유출되는 것을 우려한 점도 있었다. 실제로 나중에 해저 구조 활동에 투입된 영국 잠수부는 대외 첩보 수집 활동을 하는 특수부대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러시아의 우려에는 근거가 있었던 셈이었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에서 만약 영국의 핵잠수함이 조난당했고 영국에게 구조 자원이 없을 경우 영국 해군은 구조 자원을 가진 러시아 해군의 지원 제의를 군사 기밀 노출 위험성을 무릅쓰고 신속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영국은 개인을 존중하는 나라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개인이 영국이라는 나라를 외적의 공격으로부터 지키는 군인임에랴. 군인에게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도록 요구하면서 정작 그 군인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나라가 외면한다면 영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군인은 없으리라는 사실을 영국은 잘 알고 있다. 침몰한 천안함과 함께 실종된 46명의 승무원이 생환할 가능성은 이제 없다. 69시간의 산소가 있다는 말만 했을 뿐 왠일인지 한국 해군과 정부는 자국 군인을 구조하려는 절박성을 보이지 않았다. 해상은 잔잔하건만 조류가 빠르다는 변명만 하면서 대형 인양선도 부르지 않았다. 한국에 구조 자원이 없다면 미국에 요청을 하든가 코앞에 있는 중국이나 일본에게 긴급 지원 요청을 할 만도 한데 어떤 사정이 있는 것인지 조류 타령만 해댔다. 그리고 살아난 승무원들은 병원에 가둬두고 언론과 단절시켰다. 실종된 46명의 군인 중에는 직업 군인도 있지만 징병제로 나라의 부름을 받고 가장 소중한 젊음의 시기를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바친 병사도 적지 않다. 이들은 한창 공부를 하다가 혹은 부모님이 하는 식당일을 돕다가 나라의 부름을 받고 본인과 가족에게 중요한 학업과 경제 활동을 잠시 미루고 군에 입대한 젊은이다. 미군이나 영군군처럼 자기가 직업으로 택하고 군인의 길을 걸은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보수로 이들을 군대로 불러낸 국가는 이들에게 더 고마워해야 하고 이들의 안전을 더 챙겨주어야 마땅하다. 용산 참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아무리 자국민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정권이라 하더라도 자국군의 목숨까지 이렇게 하찮게 여길 수는 없다. 대통령보다 더 높은 자리에서 내려오는 압력이 아니고서는 자국군 지휘관이 자국군의 죽음을 이렇게 수수방관할 수가 없다. 한국 대통령에게는 전시작전통제권이 없다. 전시에 준하는 비상사태가 터졌을 경우 육지와 바다를 불문하고 한국 군대의 실질적 지휘권은 주한미군사령관이 행사한다. 그리고 정말로 북한과의 전면전이 발생할 경우 북한이 가장 먼저 타격 대상으로 삼는 것은 쥐새끼나 숨어들어가는 지하벙커가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미군 기지일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미국 본토를 선제공격할지도 모른다. 핵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제공격이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은 물론 영국, 프랑스까지도 핵잠수함을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운용하는 이유도 설령 본토가 적국의 핵공격으로 초토화하더라도 핵잠수함으로 반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옆에 부인과 아이들은 없어도 1년 365일 24시간 늘 있는 것은 핵공격을 지시하는 단추가 든 가방이라고 한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국 보수 정치 세력과 보수 언론에게 유약한 대통령이라는 모습으로 낙인찍히는 것이다. 카터가 보기 드물게 재선에 실패한 것도 그가 재임중 타국을 거의 침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설도 있다. 만약 서해에서 한미 합동군사작전중 비상 상황에서 무기력하게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오바마 대통령은 진퇴양난에 빠졌을 것이다. 북한에 핵무기가 없다면 남북 국지전을 부추겨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을 텐데 자국과 일본에 대한 북의 핵공격이 두려우니까 무모하게 보복할 여건은 안 되고 보수 세력에게 규탄당하는 난감한 상황에 몰렸을지도 모른다. 한반도에서 전시에 준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 전쟁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한국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해마다 국방비를 10% 가까이 늘려가는 한편으로 전시작전권 환수를 추진했던 근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48년 4.3 사건 당시 30만 제주도민의 10분의 1이 넘는 3만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가족 중에 청년이 안 보이면 부모나 아내, 자식을 불문하고 대신 죽이는 이른바 "대살"이라는 만행도 자행되었다. 학살을 실행한 주체는 한국 군경과 서북청년단이었지만 미국의 승인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미국은 2차대전 이후 냉전 체제를 만들어가면서 한국만이 아니라 그리스에서도 똑 같은 만행을 비호하고 사주했다. 4.3 사건에서는 살인의 주체가 되었던 한국 군인이 언제 살인의 객체가 될지 모른다는 것을 천안함 침몰은 보여주었다. 그것은 종주국을 섬기는 노예들이 기득권을 장악한 나라에서 군인으로 징집된 젊은이들이 겪는 비애다. 한국은 아직 독립국이 아니다. 독립국이라면 자국민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자국군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이 타국을 쳐들어가서 타국 군인과 민간인은 죽여도 자국 군인만큼은 기를 쓰고 챙긴다. 그것이 독립국이다. 한국 군대는 자국을 지키러 무보수로 황금 같은 젊음을 유보하고 입대한 청년들이 수장당할 위기를 보면서도 수수방관한 혐의가 짙다. 한국의 기득권 세력은 공동체를 제 손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밥그릇을 챙겨주기만 하면 중국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누구도 주인으로 섬길 종자들이다. 그들은 말단 졸병들에게 엄포를 놓고 충성을 요구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자국군을 챙겨줄 마음도 없고 능력도 없고 자질도 없다. 영국 왕실에는 왕손은 반드시 사관학교를 나와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찰스 왕세자는 23세부터 28세까지 해군과 공군에서 현역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수많은 영국 전함을 탔다. 찰스 왕세자는 제트기도 조종할 줄 안다. 그의 두 아들 윌리엄과 해리도 예외는 아니다. 윌리엄은 육군사관학교를 나오고 다시 해군과 공군에서 복무했다. 동생 해리도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중위로 복무중이다. 해리는 부대원들과 함께 실전에 투입되지 않으면 군복을 벗겠다고 협박을 해서 이라크 전장으로 투입될 예정이었지만 반군에 정보가 새어나가 공격 목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당국의 만류로 막판에 취소되었다. 하지만 가깝게는 포클랜드 전쟁에서 멀게는 일차대전까지 영국 왕족 중에는 전쟁터에서 직접 싸운 사람이 많다. 이것이 독립국의 지도층이다. 천안함 침몰 직후 지하벙커로 기어들어가 국가안보회의를 연 고관들은 군대를 안 간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대통령과 총리, 법무부장관, 심지어는 국정원장까지도 군대를 안 갔다. 이런 사람들이 지하벙커에 모여앉아서 국가 안보를 논했다. 코미디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말단 공무원도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기득권을 모조리 장악한 나라가 한국이다. 적어도 국방의 차원에서 독립국 한국의 진정한 대통령 자격이 있는 사람은 노무현 육군 병장이었다. 총을 들어본 노무현 병장은 전쟁의 무서움을 알기에 북미 대화를 일관되게 지원했고 한반도가 한민족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막으려고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추진했지만, 단 한 명의 해군 병사가 천안함에 갇혔어도, 국가 자원을 총동원하여 한국 군인을 살려내라고 천안함 침몰 보고를 들은 즉시 명령했을 것이다. 노무현은 4.3 사건의 유족에게 국가가 저지른 범죄 행위를 공식으로 사과한 첫 대통령이기도 하다. 단 한 명의 국민, 단 한 명의 군인 목숨도 소중하게 여기고 지키는 것이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다. 참여정부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독립국의 출발점이었다. 한국은 아직 독립국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더더욱 아니다. 나라를 위해서 본인이 총을 들었고, 나라를 위해서 총을 든 개인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노무현의 정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적어도 한 세대는 이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노무현 병장의 정신이 나라의 중심에 우뚝 설 때 비로소 한국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독립국이 된다.
(서프라이즈 / 개곰 / 2010-04-05)
(cL) 개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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