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세상

"평생 모은 재산 재단에 기부하고 하늘나라로"

pulmaemi 2010. 3. 11. 17:30



(노무현재단 / 강기석 / 2010-03-11)

 


오랫동안 암과 투병해온 우리 재단 후원회원 추명자님(58세)이 지난 3월 8일 오후 5시 끝내 운명하셨습니다. 추 회원님은 그동안 대구 파티마병원 호스피스병동에서 요양해 왔습니다.

추 회원님은, 지난해 말 먼저 작고한 의자매 이병호님(사망 당시 57세)과 함께 뜻을 합쳐 지난해 12월 17일 개인으로는 가장 많은 기부를 노무현재단에 해주셨습니다. 2억 원이었습니다. 단순히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돈은 추 회원님과 이 회원님이 평생 모은 돈의 정확히 절반이었습니다.

재단은 두 분의 기부가 확정될 당시 그 사실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고 사연을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완강히 거절하셨습니다. 병상에 누워있는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은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또 친인척들과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기부자체가 쉽지 않은 결단이어서 주변에 누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더 컸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기부사실을 알릴 때 알리더라도 꼭 자신들의 사후에 알려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두 분이 불과 몇 달 간격으로 세상을 떠난 이제야 숨겨진 미담을 공개하게 됐습니다.

2억 원이란 돈은 경남 밀양시에 있는 ‘○○모텔’이라는 건물가치의 절반에 해당됩니다. 두 분은 30여 년 전 비슷한 시기에 혼자 몸이 됐는데 우연한 시기에 우연한 곳에서 만나 평생 의지하며 살자고 의자매를 맺었더랍니다. 함께 여관에서 허드렛일도 하고 함바집(건설공사장 현장식당)도 운영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억척스럽게 돈을 모아 지난 2001년 밀양에 땅을 산 뒤, 이듬해 방 14개짜리 3층 건물을 짓고 어엿한 모텔주인이 된 것이지요.

하지만 애초부터 두 분에게는 재산은 지고 가는 것이란 의식이 아예 없었던 모양입니다. 모텔을 소유하게 되자마자 “우리가 죽으면 이 재산을 병원이나 아니면 다른 좋은 곳에 기부해 좋은 일에 쓰도록 하자”고 약속했다니 말입니다. 서로 그런 마음이 변할까 두려워 공증까지 섰다는군요.

그러다가 2004년 추명자님이 암에 걸리셨고, 2009년 다시 재발하여 온 몸으로 전이돼 삶을 장담할 수 없게 되셨습니다. 더 살 수 없는 본인도 고통이 컸겠지만 20년을 훨씬 넘게 친자매 이상으로 의지해 오며 살아온 이병호님의 괴로움이 더 컸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멀지 않은 곳에서 노무현 대통령께서 억울하게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어 재단이 설립됐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자신들의 재산을 <노무현재단>에 기부하자고 의기투합하셨답니다.

처음에 생각했던 병원이나 다른 자선단체가 아니라 <노무현재단>에 기부해야겠다고 마음을 바꾼 것은, 정치적인 이유는 아니고 왠지 다른 어떤 단체보다 더 보람있게 사용할 것 같았고, TV에 비치는 재단 관계자들의 면면에 신뢰성이 갔다는 말씀을 남겼습니다. 자신들의 평탄치 않았던 삶을 돌아볼 때 노무현 대통령도 얼마나 억울했을까 하는 동병상련도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두 분께서 무척이나 힘들게 세상을 살아 오셨다는 점에서, ‘사람사는 세상’에 대한 명확한 인식은 없었어도, 그 ‘사람사는 세상’에 본능적으로 공감하셨던 것은 아닐까요. 그마저 아니라면 다른 이들보다 훨씬 외로운 환경에서 평생을 살아왔던 두 분이, 아마도 대통령께서 몸을 던지시기 전 느끼셨을지 모르는 절대고독을 공감했던 건 아니었을까 짐작됩니다.

추명자님이 못내 가슴에 안고 간 따님(35세)의 생활은 유언에 따라 법무법인에 신탁된 나머지 유산으로 보살펴 드리기로 했습니다.

두 분은 재산을 기부하고 난 뒤 완전히 ‘빈 손’이었습니다. 재단은 이병호님 장례에 이어 병원비조차 없이 투병생활을 하던 추명자님 간호와 장례를 정성껏 모셨습니다. 밀양 시내가 잘 내려다보이는 야산에 이병호님의 유골을 뿌려 드렸고, 추명자님 또한 언니와 같은 곳에 뿌려달라는 마지막 소원도 받들어 드렸습니다.

또 49재를 지내기 위해 밀양의 한 암자에 모셨습니다. 생전 두 분이 서로에 대해 각별하셨던 것을 감안해 두 분의 위패를 함께 모셨습니다. 고단했던 삶과 죽음도 갈라놓지 못했던 두 분의 정성어린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두 분, 하늘로 가셔서 대통령님을 만나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삼가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


강기석 / 노무현재단 홈페이지 편집위원장




※ 본 글에는 함께 생각해보고싶은 내용을 참고삼아 인용한 부분이 있습니다. ('언론, 학문' 활동의 자유는 헌법 21조와 22조로 보장되고 있으며, '언론, 학문, 토론' 등 공익적 목적에 적합한 공연과 자료활용은 저작권법상으로도 보장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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