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 교복·긴급재난지원금 못 받는 외국인들
시민모임 ‘차별 없는 지원’ 조례 개정 운동·인권위 진정
“사회적 책임 다해…국적이 지원금 주는 기준 돼선 안 돼”
중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외국인 주민 ㄱ씨는 최근 속상한 일을 겪었다. ㄱ씨가 사는 서울 금천구의 무상교복 지원 대상에서 딸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배제된 것이다. 한국에 온 지 올해로 19년째라는 ㄱ씨는 “지원금 30만원은 없어도 살지만 기분이 상했다”며 “아이가 슬퍼할까봐 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진행하는 각종 지원에서 외국인에 대한 배제와 차별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금천구는 지난해 1월 통과된 ‘교복지원 조례안’에 따라 올해부터 구내 중·고등학교 신입생에게 교복 구입비 30만원을 지급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고, 교육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ㄱ씨가 교복 구입비를 신청하자 발생했다. ‘교복지원 조례안’에는 지급 대상을 ‘금천구에 주민등록을 둔 자’로 규정하는데, 금천구는 이 대상에 외국 국적의 학생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봤다.
시민들은 ‘차별 없는 교복지원을 위한 시민모임’(시민모임)을 결성, 조례 개정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시민모임을 주도한 고순남 금천학부모모임 대표는 17일 통화에서 “외국인들도 우리 시민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이들을 배제하면 분명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차별을 알고 자괴감을 느낀다. 어려서부터 차별에 노출되지 않도록 어른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300여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시민모임은 조만간 국가인권위원회에 교복지원 관련한 진정서도 제출할 계획이다.
금천구는 조례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018년 무상교복 관련 조례를 대표발의한 금천구의회 백승권 의원은 “외국인 학생 문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며 “6월 본회의에서 조례를 개정해 차별 없이 교복 구입비를 받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정부와 지자체의 각종 지원에서도 외국인 배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 4일 지급하기 시작한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은 ‘국내 거주 국민에 대한 지원을 원칙으로 재외국민, 외국인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결혼 이민자 등 내국인과 연관성이 높은 경우 및 영주권자는 포함한다’고 규정했다.
국내 거주 외국 국적 동포와 외국인 노동자, 외국인 유학생 등은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지난 3월 말 기준 약 173만명의 국내 장기체류 이주민 중 약 144만명이 대상에서 제외됐다. 13일에는 차별 없는 정부 재난지원금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정부의 전 국민 대상 긴급재난지원금은 지급 범위를 둘러싼 치열한 공방을 거쳐 확정됐다. 이 공방에서 외국인 주민 포함 여부는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외국인에 대한 지원이 재정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이주와인권연구소 이한숙 소장은 “재난지원금 지급 전부터 재정 건전성 문제가 제기됐지만 그럼에도 전 국민에게 주게 된 이유가 있지 않느냐”며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살고 있는데 지원금을 주는 기준이 국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자체의 경우 각종 지원의 근거가 되는 조례가 대부분 ‘주민등록’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외국인이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일을 계기로 차별적인 조례를 개정해나가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거주민에게도 코로나19 관련 재난 지원을 하는 외국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독일은 지난 3월 납세 번호를 받아 수익활동을 하는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에게 국적을 따지지 않고 5000유로(약 667만원)를 지급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일본도 최근 3개월 이상 등록 이주민을 포함해 모든 주민에게 재난지원금 성격의 ‘특별정액급부금’ 10만엔(약 114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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