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한 사회

주인 바뀐 삼성장학재단 "대한민국서 이럴 순 없어…"

pulmaemi 2009. 10. 18. 08:19

[CBS정치부 김정훈 기자]

민간 공익재단인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 이사장 선출 과정에서, 대통령 측근을 추천했던 이사들마저 정부의 외압 정황을 사실상 인정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삼성으로부터 독립돼 운영돼온 민간 장학재단마저 정부의 영향력에 휘둘리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외압이 있는 건 다 아는 사실 아니냐"

재단과 이사회 참석자들의 말에 따르면, 지난 12일 신임 이사장 선출을 위한 이사회에서 일부 이사들은 정부 측 외압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A이사는 이 자리에서 "이사장을 새로 뽑아야 한다면 재단 운영에 심각한 문제가 있든지 기존 이사장에게 개인적 비리가 있든지 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다"며 "결국 외부의 압력 때문 아니냐"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사들이 현 정부에 흔들리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자성을 촉구했다.

B이사도 "재단에 외압이 있다는 것은 모든 이사들이 알고 있지 않느냐"고 A이사의 발언에 힘을 보탰다.

앞서 이사회는 신인령 전 이사장의 연임을 결정했지만 정부 측 반대로 결정이 철회돼 이날 이사회가 다시 열렸으며, 재단 안팎에서는 정부가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손병두 이사(KBS 이사장)를 이사장에 앉히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였다.

◈ "외압이 있든 없든 재단이 잘 돼야…"

그런데 이사로 취임한 지 얼마되지 않은 손병두 이사를, 이사장으로 추천한 C이사 등도 외압 정황을 사실상 인정했다.

C이사는 "외압이 있든 없든 재단이 잘 되는 게 중요한 것 아니냐"면서 "밖에서 보는 측면을 고려하면 손병두 이사가 이사장으로 적당하다"고 밝혔다.

특히 손 이사를 제외한 9명의 이사가 참석했던 이날 회의에서 A이사와 B이사를 중심으로 외압 의혹이 집중 제기됐지만, 이에 맞서 '외압은 없었다'고 잘라 말한 이사는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사들 모두 외압 정황에 대해서는 묵시적으로 인식을 함께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인령 손병두 두 후보를 놓고 표결한 결과, 신 전 이사장은 3표를 얻고 손병두 이사는 6표를 얻어 손 이사가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 "모욕적으로 외압…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냐"

이사장에서 평이사로 물러앉게 된 신인령 전 이사장은 이날 논의 과정에서 말을 아꼈지만, 회의 말미에 '이사장 자리에 집착하지 마시라'는 모 이사의 말에는 울분을 참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신 전 이사는 "정부가 다른 이사들에게는 어떻게 접근했는지 모르지만, 제게는 모욕적으로 손병두 이사장을 인정하라고 요구해 왔다"며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정의롭지 않은 일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일 뿐, 자리에 대한 집착이 아니다"라면서 "고른기회장학재단이 한국장학재단에 흡수될 것이라는 얘기까지 있는데 그러지 않도록 이사로서 재단을 지켜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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