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중에 갑’ 건물주와 맞짱 뜬 림벅와플가게 사장님의 사연
“건물주의 갑질이 있기 전까지는 아르바이트도 여러 명 고용했었어요. 따로 밥도 주면서 시급 8500원까지 줄 수 있었어요.”
18일 서울 종로 인사동길 림벅와플가게에서 만난 민명식(51) 사장의 말이다. 한 때, 아르바이트를 4명까지 고용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되던 그의 가게 수입은 2016년 이후 1/4 까지 줄었다. 손님도 줄어든 상태인데, 그는 가게의 입구를 전쟁이라도 대비 하 듯 작은 창문 하 나만 남겨두고 모두 철판으로 막았다. 생계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그의 몸부림이었다. 민씨는 “이 모든 게 건물주 때문”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건물주에게 빼앗긴 꿈, 그리고 생계
인사동 75-1번지 태흥빌딩 1층 5평 남짓한 크기의 림벅와플, 인사동길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이곳에 민씨가 가게를 차린 것은 2010년이다. 5년 동안 힘들게 모아 아파트 보증금으로 저축해뒀던 자금을 투자해 차린 가게였다. 권리금 1억7500만원, 보증금 2200만원과 인테리어 비용 등 총 2억5천만원 상당의 비용이 들었다. 시작 당시 월세는 193만원이었다. 부담스러웠던 월세였지만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일하며 일하는 즐거움으로 극복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월세는 한 번도 밀린 적 없었고, 아르바이트도 4명까지 고용해 가게를 운영할 정도로 잘됐다. 당시를 떠올리던 그의 얼굴엔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권리금 2억5천만원을 주겠다는 사람이 있어도 거절하며 이곳에서 오래토록 장사 할 꿈을 키웠다”고 회고했다. 그것도 잠시, 다시 현재의 시간으로 돌아오며 그의 얼굴은 굳어졌다.
“10년~20년 한곳에서 장사하고 싶다”는 민씨의 꿈은 건물주에게 짓밟혔다. 장사를 시작한 뒤 2년 만에 건물주는 보증금을 2200만원에서 1억으로, 월세를 193만원에서 300만원으로 올렸다. 5년 된 시점에는 건물주가 월세 15만원을 더 올렸다. 이를 지급하지 않으면 상가에서 나가야만 했다. 결국 건물주 요구대로 임대료를 지급했다. 대신 민씨는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그는 “임대료를 올리는 대신 같은 건물에 동일업종 입점을 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건물주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
건물주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2016년 같은 건물 바로 옆 칸에 동일업종이 들어온 것이다. 민씨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도의적인 측면에서 이럴 수 있나”라며 한탄했다.
동일업종이 들어오자 가계 순이익은 1/4 토막이 났다. 손님이 줄었을 뿐만 아니라, 가격경쟁을 위해 주로 판매하던 음료가격까지 무리하게 낮춰야했기 때문이다. 2000원에 팔던 아메리카노는 1500원으로, 4000원짜리 생과일쥬스는 2000~2500원으로 낮췄다. 알바는 더 이상 고용할 수 없었다. 목숨과도 같았던 가게가 어려워지면서, 그의 가정도 고난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아들 둘은 대학을 자퇴하고 본격적인 경제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참다못해 “이래선 안 된다”며 건물주를 찾아갔다. 돌아오는 말은 “감히 임차인 네가 건물주 나에게 대들어? 그냥 나가”였다고 그는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가게를 지키기 위한 10개월 한뎃잠
건물주의 “나가”란 말은 단순히 위협이 아니었다. 이후 민씨가 자리를 비우지 않자, 건물주는 곧바로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건물주가 나가라고 하면 그냥 나가야만 하는 것이 이 나라 법이었다. 환산보증금(보증금+월세×100)이 4억이 넘게 계약한 민씨는 그 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다. 그게 이 나라 법이었다. 당연히 명도소송에서 민씨는 패했다. 지난해 3월 계고장이 날아왔다. 한 달 이내로 자리를 비우지 않으면 강제집행을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그해 6월과 9월, 총 2차례의 강제집행이 이어졌다. 주변상인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터를 지켰지만, 고통스러웠던 민씨 부부는 가게를 포기하고 떠나려고 했다. 새로운 임차인과 권리금 양수양도를 진행했다. 그런데 이조차 쉽지 않았다. 건물주를 통해 중개인으로 나선 부동산은 중개비로 2500만원을 요구했다고 그는 말했다. 민씨게 남은 재산이라곤 권리금이 전부였다. 그 권리금의 상당 부분을 달라는 것이었다. 건물주와 부동산의 합작이 의심되는 순간이었다.
분노한 민씨 부부는 건물주를 상대로 투쟁을 선택했다. 가게 입구를 철판으로 막고 CCTV를 설치해 언제 있을지 모르는 강제집행을 대비했다. 민씨의 부인 박서현씨는 가게 안에서 CCTV를 보는 것이 일과가 됐다. 늦은 밤, 박씨가 퇴근하면 민씨가 가게에 남아 가게를 지켰다. 조리대에 매트를 깔고 한뎃잠을 잤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그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가게를 지켰다. 민씨는 “이렇게 생활한지 벌써 10개월”이라며 “사과조차 없는 건물주와의 협상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건물주는 올해 1월경 법원에 강제집행을 접수해 놓은 상태다.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민씨에게 싸워야 했던 이유가 있었다. “이런 식으로 쫓겨난 임차인이 한 둘이 아니에요. 저희 바로 옆 약국도 300만원에서 450만원으로 오른 월세를 이기지 못하고 나갔어요. 나갈 때, 권리금도 2100만원 상당 뜯기다 시피 한 것으로 알아요. 저희 빼고 1년6개월을 못 버티고 대부분의 상가가 그렇게 쫓겨났어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건 아니잖아요. 정말.”
인터뷰 중 단골손님들이 끊임없이 오고갔다. 고된 싸움에도 불구하고 민씨와 박씨는 단골손님들을 보며 “맛있게 드세요~”라며 인사를 나눴다. 민씨는 말했다. “일본이나 독일처럼 한곳에서 10년, 20년 장사를 하면서 그 지역사회에 공헌도 할 수 있고, 헌신도 할 수 있고, 또 지역 주민들과도 소통도 하고 또 우리 가게 찾아온 주민들과 한 가족처럼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민중의 소리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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