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세상

나의 노무현, 민족의 노무현

pulmaemi 2009. 6. 25. 13:51

(서프라이즈 / 먹물의가면/ 2009-06-24)

 

(前略)

 

140여년 전 미국에서 링컨이 그러하였듯, 지금 노무현 대통령은 너무나 고독한 전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상과 신념이 이 나라와 민족의 영원한 가치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에, 그리고 아직 소수일지언정 깨어있는 국민들이 자신을 이해하고 지지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이 막강한 어둠의 세력들과 감히 맞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노무현 대통령이 기대고 있는 이 시대의 새로운 바람이란 것은 막상 총칼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선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기상조건일 수도 있습니다. 노대통령이 시대의 동남풍만 믿고 홀로 싸우게 내버려두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 서프라이즈에서 정치적 불만과 정열을 함께 불태우고 있는 바로 우리들이, 화살 한 개, 돌멩이 하나라도 챙겨들고, 노무현 대통령을 엄호하며, 앞장서서 적들을 무찔러 가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우리 캡틴이 차가운 주검으로 뱃전에 누운 다음, 휘트먼처럼 애통해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저 어둠의 세력들은 장중한 애도기사를 내고 이 시대의 영웅 노무현을 죽인 것은 바로 너희들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그 경우 그들이 말이 절반은 맞는다는 사실이 될 것입니다. 

위 인용한 글은,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그 해 2003년이 저물어 가고 있던 12월 30일, 서프라이즈에 올렸던 제 글의 마지막 두 단락입니다. 글의 제목은 휘트먼의 시 제목을 그대로 차용한 ‘오 캡틴 마이 캡틴’ 이었습니다. (이 글은 서프라이즈 서버에서 오래 전 망실된 것 같습니다. 아마 검색하면 누군가의 블로그에 있을 것입니다)

 

당시 저는 노무현이란 사람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 일반의 평균적 수준 정도로만 알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가 거의 천연기념물 수준의 정의로운 정치인이란 생각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렵, 가끔 언론을 검색할 때마다 저는 놀라움과 일정 수준의 두려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김대중이나 문창극 등 조중동에서 밥 먹는 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학 강단에 서는 교수들, 책 좀 팔린다는 작가들, 종교계에서 방귀 좀 뀐다는 자들, 정치판의 계파 보스나 행동대장들 등, 소위 이 나라 파워 그룹을 맴도는 모든 먹물들이 한 사람, 비주류 출신의 대통령을 세워놓고 산채로 물어뜯고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나는 그 먹물들과 파워그룹의 구심점이 어딘지 알 수 있었고, 그들의 잔혹한 물어뜯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먹물들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얻고자 이 나라 정치권력의 정점에 올라 선 한 인간에게 그런 집단 이지메를 가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실 대한민국에서만 일어 난 일도 아니었습니다.

 

위에 인용한 글에 제가 옮겨 놓았던 휘트먼의 캡틴 링컨을 비롯해 미국 역사에서 암살된 모든 대통령이 비슷하게 걸어야 했던 운명이었고, 우리 나라의 김구 선생님도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도 피할 수 없었던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상황의 디테일이 좀 다르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들은 모두 강한 신념을 가지고 정치 사회적 정의의 구현을 추구했던 사람들입니다.

 

정의(正義)가 뭡니까? 만고불변의 정의는 억압 받고 고통 받는 약자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신념이란 무언가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강한 의지입니다. 이런 정의를 이런 신념으로 지켜내고 그것 때문에 생명을 던진 사람을 무어라 부르나요? 시대의 성자라고 부릅니다.

 

그런 성자를 죽여 손에 피를 묻힌 자들은 죽으면 살아라한(殺阿羅漢)의 대역죄인으로 가장 혹독한 지옥인 한열규환(寒熱叫喚)의 고통을 받는다는 불가(佛家)의 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죽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그들이 지금 이 순간 획책하는 음모와 전횡을 허용하면 안 됩니다. 그들은 반드시 그 피의 값을 치러야 합니다. 지금 즉시.

 

**

그리고 5년 5개월 후, 토요일 아침, 우리 노통이 부엉이 바위에서 자신의 몸을 던지셨다는 말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몸과 정신이 아득하게 떨렸습니다. 저는 지금 봉하까지 걸어 갈 수도 있는 거리에서 살고 있습니다. 부엉이 바위도 사자 바위도 가끔 아침에 올라가곤 했던 곳입니다. 그러나 저는 태양을 쫓아 움직이는 그러나 태양과 손잡을 수는 없는 해바라기였습니다.

 

그때까지도 저는 단 한 번도 그를 직접 뵌 적이 없습니다. 그에 대해, 그를 위한다고, 실로 많은 밤을 새우고 글을 썼었고, 숱한 눈물을 닦았었고, 그를 몰라주는 사람들이 너무나 야속했고 그를 비난하는 자들이 너무 미웠었고, 막내 아들을 일부러 불러내려 봉하에도 데려 갔었지만, 살아서 그를 만났던 일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다음 세상에선 그러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그는 나의 캡틴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캡틴이었고, 그의 생애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 모두를 위한 것이었지요. 비록 살아 그를 본 적은 없어도, 그는 내 가슴속에 눈물로 기쁨으로 그리고 떨림으로 살아 있을 것입니다. 미안해요 캡틴.. 다시 만나요..

 

아래 글은 서거 다음 날(5월 24일) 올렸던 제 마음입니다. 한 달이 지난 이 새벽, 그를 위해 밤새 타오르는 촛불의 심정으로 다시 한 번 올립니다.

 

오, 캡틴! 나의 캡틴!


우리의 항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모진 풍파에 배는 상했고 피곤에 지쳐
차라리 모든 것을 잊고 싶을 따름입니다.

 

조롱하고 욕하던 자들마저 침묵의 비단으로
저들의 기쁨을 겹겹이 숨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쓰러진 당신 가슴에
더 이상 쏟을 피가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 나의 캡틴이여,

 

차가운 시신을 덮을 꽃은 흘러 넘칩니다.
아침에도 독화살을 날리던 자들이
정오가 되기 전에 예의 바른 조문객이 되었습니다.

 

유린을 피해 뛰어내린 비겁한 자들이나
파멸을 노래하던 약 먹은 앵무새들이나
가장 비싼 조화를 주문하고 있습니다.

 

그 조화들이 길가에 뒹굴고 교회의 종소리가 사라질 때
저들은 당신이 선물한 가장 아름다운 전리품들을
시간의 심연에 매장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캡틴이여,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고 축축한 육신을 벗고
햇살같이 따스하고 깃털처럼 가벼워진 당신의 영혼
지금 내 팔에 이 가슴에 안겨 있습니다.

 

그 모든 피로와 좌절도 이제 당신을 어쩌지 못합니다.

 

당신의 겁 없는 용기와 불굴의 눈물
끝나지 않은 항해와 정복되지 않은 꿈은
이 땅의 피 끓는 젊은 운명으로 살아 갈 것입니다.

 

영원히 떠나 보낼 수 없는 우리의 캡틴으로

 

2009년 6월 24일


먹물의가면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667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