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세상

다시 바람이 분다 추모 공연 현장 스케치

pulmaemi 2009. 6. 22. 08:34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

[공연 현장 스케치]
공연전부터 노란 물결…시민 1만명이상 참여
유시민 추도사…안치환, 신해철 등 열띤 공연 
  김민경 기자  




» 21일 성공회대 대운동장에서 노무현 전대통령 추모 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가 열렸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오늘 이 자리, 다시 바람이 부는 이 자리, 다시 바람이 느껴지십니까? 바람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바람을 향해 뜁시다. 함께 뛰시겠습니까? 우리 그동안 너무 지쳤습니다. 너무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진짜 희망의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21일 오후 7시30분, 서울 구로구 항동 성공회대 대운동장. 배우 권해효씨의 사회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공연이 시작됐다. 추모공연의 이름은 ‘다시, 바람이 분다’.

“연세대 오죽했으면 그랬겠습니까”

이번 공연은 본래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학교 쪽이 “사법 2차시험(22~25일 시행 예정)에 방해가 된다”며 거부해 성공회대로 옮겨 열렸다. 연세대는 지난 19일 무대 설치 차량 등이 연세대로 들어가려 하자 정문을 비롯해 모두 4개의 문을 닫아 걸었고, 심지어 학교버스를 이용해 차벽을 치기도 했다.

추모공연 시작을 알리는 권해효씨의 말은 이어졌다.

“연세대학교도 참 애 많이 썼습니다. 오죽했으면 그랬겠습니까. (객석 웃음) 내일 사법고시 2차 보시는 분들, (객석 웃음) 꼭 좋은 성적 올리셨으면 합니다. 다만, 그저 아주 작은 바람이 있다면, 행여 연수원에 들어가시고 졸업하셔서 판·검사, 변호사 법조인에 되셨을 때 좋은 법조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람들 환호+박수) 부끄러움을 아는 법조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와~) 우리는 이렇게 관대하고 너그럽습니다. 그렇지요?”

공연 시작에 앞서, 이날 오후 6시께 콘서트장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성공회대에는 긴 줄이 만들어졌다. 주최 쪽에서는 역곡역까지 늘어섰다고 전했다. 학교 안은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꽉 차고, 학교 밖까지 줄을 길게 늘어서서 5km까지 넘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공연 참가자는 주최 쪽 추산 1만 이상이고, 경찰은 이날 오후 8시 현재 6천명이 모였다고 밝혔다.

  
  

» 21일 성공회대 대운동장에서 노무현 전대통령 추모 공연 ‘다시, 바람이 분다’에 참가한 시민들이 공연을 보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성공회대 안팎은 공연 시작 전부터, 노란 물결로 가득찼다. 노란색 풍선이 길가에 길게 늘어서 있고, 콘서트 장소인 성공회대 대운동장까지 가는 길에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노란 풍선으로 맞아줬다. 콘서트장 입구에선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가 노란색 손수건과 봉하마을 방문 배지 나눠줬다.




시민들은 노란색 손수건으로 모자를 만들어 쓰거나, 스카프 만들어서 목에 걸기도 했다. ‘내 마음 속 대통령 노무현’이란 글씨와 노 전 대통령 얼굴이 그려진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시민도 보였다. 콘서트장도 노란색 풍선으로 물결을 이뤘다. 무대 반대편 즉, 운동장 뒤쪽에는 예전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에 걸려있던 밀짚모자 들고 환히 웃는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걸개 그림이 걸려있었다.

“당신이 남겨준 다리로 미래로 가겠습니다”

추모공연의 첫 무대는 ‘노래를찾는사람들’이 올랐다. 이들은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타는 목마름으로’, ‘광야에서’ 등을 불렀다.

“여러분 다들 느끼고 있을 겁니다. 고인이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을 겁니다.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재임시절 당신은 ‘과거의 썩은 다리로는 미래의 강을 건널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당신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바쳐 오늘 우리에게 거대한 다리를 남겨주고 가셨습니다. 그 다리로 이제 우리는 미래로 가겠습니다. 당신께서 생전에 좋아하셨던 노래 ‘타는 목마름으로’를 올려드리겠습니다.” 

다음으로 펼쳐진 락밴드 ‘피아’의 공연에서는 시민들은 서서 환호했다. 두 손을 흔들기도 하고, 노란 손수건이나 검은색 바탕에 국화꽃 그려진 그림에 ‘근조, 바보 노무현 당신의 뜻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쓴 손팻말 흔들기도 했다. 흥겨운 분위기도 연출됐다. 추모 공연이지만 너무 무겁지도 않는 분위기, 함께 즐긴다는 느낌까지 느껴졌다.

이들은 “음악만 하는 락밴드라서 정치는 잘 모릅니다. 민주주의를 정말 사랑했고 지키려고 했던 그분을 위해 이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저희가 아무래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하늘에서 보는 노짱도 즐겁게 막걸리 마시며 춤출 수 있도록 즐겁게 놀면서 퇴장하겠습니다.”

이어 노래패 우리나라가 ‘그 하늘 그 향기’, ‘우리 하나 되어’, ‘다시 광화문에서’ 등을 불렀다. 시민들은 노란색 풍선을 흔들면서 따라 부르기도 하고, 학생들은 율동을 하기도 했다.

“누가 민주주의를 죽였습니까? (이명박!) 누가 이 땅의 민주주의를 벼랑 끝에서 밀었습니까? (이명박!) 누가 이 땅의 민주주의를 길거리에서 팼습니까? (이명박!) 시민 여러분 이제 우리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다시 광화문에서 만납시다.”

유시민 “부끄러움 많은 좋은 그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곧이어 사회를 맡은 권해효씨가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사회자가 이럴 때 광화문에 나가자고 해야 하는데,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광화문에 나가기 싫습니다. 그냥 투표를 열심히 잘하겠습니다. 혹자들은 색안경을 끼고 이 문화콘서트, 추모콘서트를 바라보고 있다고 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분이 나온다니까 또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떠나가신 그분의 가치와 이상에 대해 늘 가까이에서 현실 정치에서 대변하기 위해 애쓰던 분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봉하마을을 지키셨죠.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을 모시겠습니다. (사람들 환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무대에 올라, 노 전 대통령을 위한 ‘추도사’를 때로 낮은 목소리로, 때로 격정에 차서 이어갔다.

“안녕하십니까. 먼저 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유가족을 대신해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추모공연 준비하신 연세대, 성공회대 총학생회 감사합니다. 사회를 맡은 권해효 선생, 공연을 함께하는 모든 문화 예술인 감사합니다. 공연장 찾은 시민 여러분, 동영상으로 보는 네티즌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이 훌쩍 떠나신 지 한 달이 다 되었습니다. 수많은 국민들이 상주된 심정으로 함께 상을 치렀습니다. 노무현이란 한 사람에 대해 저마다 특별한 감정을 느꼈을 겁니다. 아직은 고인의 삶과 죽음을 평가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기억을 가다듬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노무현에게 저를 비춰봅니다. 그가 저희 내면에 남기고 간 많은 것들을 조용히 살펴봅니다. 침묵 속에서 바람이 된 그분이 제 마음에 내는 소리를 귀기울여 듣습니다. 내 마음의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님을 떠나보낸 후 저는 제 자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왜 그를 사랑했는가. 여러분에게도 물어보겠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인간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을 사랑했습니까. 여러분은 각자 나름의 대답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저도 제 나름의 대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님은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좋은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박수)”

“인간 노무현은 반칙하지 않고 성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는 정말 반칙하지 않고 성공했습니다. 판사가 되었고, 변호사, 국회의원,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성공한 다음에는 부당한 특권을 누리지 않았습니다. 반칙하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는 사회, 성공한 사람이 부당한 특권을 누리지 않는 나라, 반칙과 특권이 없어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 사람사는 세상, 그는 한 순간도 이 꿈을 잊지 않았습니다. 저는 노무현의 그 꿈을 함께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영광과 좌절 그가 느꼈던 슬픔과 분노, 그의 삶, 그의 죽음까지도 모두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박수)”

“그러나 오로지 그것 때문에만 그를 사랑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정말로 그를 사랑했던 것은 그가 작은 허물도 매우 크게 부끄러워하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는 언제나 부끄러움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가 완전무결한 존재라서 또는 반인반신의 위대한 인물이라서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때론 실수도 하고 오판도 하고 잘못도 하는 사람, 그러나 작은 잘못 작은 허물이라도 그것을 깨달았을 때 크게 자책하고 부끄러워하는 사람인 것을 알았기에 저는 그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어떤 정치 사상이나 이념을 변함없이 따르는 것을, 우리는 신념이라고 부릅니다. 굳은 신념을 지닌 사람은 존경을 받습니다. 그런데 어떤 정치인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은 정치 사상이나 이념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때론 내가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믿고 받아들여야 하면, 영광과 명예뿐 아니라 모욕과 질시까지도 함께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이념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일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박수) 인간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 그리고 대통령 노무현을 한결같이 사랑하는 데에는 한없는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때론 심한 모욕을 감수하는 용기도 필요했습니다. 저는 이제 더 큰 용기를 내서 말합니다. 우리는 사랑할만한 사람을,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박수, 환호) ”

“노무현 대통령님이 훌쩍 이 세상을 떠나신 다음 눈물이 잠시도 그치지 않았던 때 서울역 분향소에서 연세 지긋한 시민 한 분이 저를 이렇게 위로해줬습니다. ‘슬퍼하지 마세요, 노무현 대통령은 죽지 않았습니다. 국민의 마음 속에서 대한민국 역사 안에서 영원히 사실 겁니다.’ 저는 오늘 그 분이 저에게 주었던 위로의 말씀을 여러분 모두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여러분, 우리 서로 따뜻한 위로를 나눕시다. 이 가슴에, 여러분의 가슴에 인간 노무현의 기억, 사람사는 세상의 꿈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임을 굳게 믿습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여러분, 바람이 되어 여기 오신 그분을 느끼십니까. 그분을 향해 제가 준비한 마지막 구절을 함께 외치고자 합니다.” “(함께) 노무현 대통령님 / 사랑합니다.”

안치환 “살아남은 자들이 할 몫이 있다” 

 ‘안치환과 자유’가 무대에 올랐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자유’, ‘부메랑’, ‘개새끼들’, ‘한다’ 등을 불렀다.  

안치환씨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저는 사실 추모의 마음만을 가지고 이 자리에 함께하는 건 아닙니다. 더군다나 이제는 추모의 마음과 함께 살아남는 자들이 할 몫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아야 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새라고 표현한다면 좌우의 날개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가지고 있는 우측의 날개를 요구합니다. 정말로 인간이라면, 인간이기 때문에 가져야 할 인간성을 가지고 있는 우측의 날개를 필요로 합니다.”

이날 오후 9시10분께, 노무현 전 대통령 동영상이 상영됐다. 혹자는 엉엉 울었고, 혹자는 “사랑합니다”라고 외쳤다. 이어 권해효씨는 “공연 시작할 때 담담하고 행복하게 해가야겠다고 했는데 막상 영상을 보니까…. 그립습니다. 보고 싶으시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억합시다. 요즘엔 짝퉁이 많아 별별 짝퉁이 다 있습니다. 촛불도 짝퉁이 나오고. 하지만 그들이 절대 흉내낼 수 없는 게 바로 오늘 이런 자리입니다. 사람 냄새 나는 자리. 우리 어린아이들 옆에 앉힐 수 있는 자리. 그런 자리를 그들이 흉내낼 수 있겠습니까? 여기는 상식이 있는 자리입니다.”

이어 9시15분께 ‘신해철과 넥스트(next)’의 무대가 펼쳐졌다. 신해철씨는 삭발을 하고 무대에 올랐다. ‘민물장어의 꿈’을 부른 뒤, 스탠딩 마이크 부여잡고 흐느껴 울었다. 시민들은 “울지마”를 외치기도 했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요? 이명박이요? 한나라당이요? 조선일보요? 저예요.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해자이기 때문에 문상도 못 갔고, 조문도 못했고, 담배 한 자루 올리지 못했고, 쥐구멍에 숨고 싶은 생각밖에 없는데 할 수 있는 게 노래밖에 없으니까 마지막으로 노래 한 자락 올리러 나왔어요.” 

공연 중, 풍등 6~7개 정도 날아올랐다. 주최 쪽은 화재의 위험이 있다고 만류했다. 이렇게 공연은 밤늦게 이어졌다. 하늘나라, 그 양반도 약간은 위로를 받으셨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65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