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도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09.5.23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활개치는 세상에서, 한줌 부끄러움에 몸을 떨던 자 결국 그 자신을 버림으로써 마지막 남은 자신의 존엄을 지키다.
'인간 노무현'에 대한 추도사는 이 한줄로 족하리라.
'정치인 노무현'을 위한 추도사는 한줄로 부족하다.
지역주의, 권위주의, 보스정치, 계파정치에 맞선 그의 도전과 그 한계까지도, 그 자신이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에서 밝힌 대로 "먼 훗날 역사가 밝혀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딴지 편집부 일동
[謹弔] 인간 노무현을 보내며
2009.5.23. 토요일
여느 때처럼 일어나 습관적으로 인터넷을 켰다. 배우 여운계씨의 죽음. 어젯밤에도 본 것이었지만 여전히 안타까운 소식이다. 씁쓸한 마음을 머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다시 뉴스 화면으로 돌아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기도설’
하하… 이건 또 무슨 수작이냐. 87년도인가 김일성이 죽었다는 오보 사건 때보다 더 황당하다. 바보 언론들 또 한 건 하는구나.
하지만 다시 짧은 기사들이 연이어 올라온다. 그리고 조금씩 구체화되는 내용들. ‘노무현 중태’, ‘노무현 위독’, 급기야는 ‘노무현 사망’. 아. 이건 오보가 아니다. 정말 죽었구나. 정말 스스로 목숨을 끊었구나. 노무현이. 다른 사람도 아닌 그 노무현이.
이렇게.
…나는 소위 노빠는 아니다. 물론 고인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누구보다 기뻤고 그 사건이 역사적인 쾌거였다고 지금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같은 이유로 탄핵 책동 때도, 본지 지면을 통해 평소답지 않은 강한 어조로 비난을 퍼부은 바 있었다.
다만 그가 우리나라를 송두리째 바꿔 놓는 대업적을 이룩할 거라는 기대를 가진 적은 없었다. 그것은 그가 어디가 어때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 아니 정치라는 것의 본성 자체가 개인의 양심이나 이상을 통해 그런 식으로 금방 변해 갈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국민을 빽으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리고 그게 가장 옳은 모양새긴 하지만, 그 국민의 마음이라는 것도 실은 갈대와 같다. 결국 그 틈을 주류의 기득권 세력이 조금씩 뚫고 들어와 휘저어 버리고 만다. 실제로 그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고, 국민의 영웅 노무현은 어느틈엔가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낙인 찍혀 버렸었다.
하지만, 그래서 노무현 시대가 실제로 퇴보와 좌절의 시대이며 나아가 ‘잃어버린 10년’의 반쪽이었던가? 물론 아니다. 여기에 대한 나의 견해는 작년 이명박 정부 출범 때 쓴 글에 잘 나와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읽어봐도 좋겠다.
[칼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적이 아니라 상식이다
[칼럼] 자영업 몰락의 진실
[칼럼] 대규모 실업사태의 진실
위 글 중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잃어버린 10년은커녕, 노무현 취임 전에 해외에 나가서 집권 말미에 돌아온 나의 눈에 우리나라의 그간의 발전상은 그 어느 시대 못지 않게 피부로 느껴졌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지고 눈빛에 자신감이 차 있었다. 그런 적 없다고?
글쎄. 스스로는 못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 살다 온 나의 눈에는 그 몇 년 사이에 사람들 얼굴에서 나타난 변화가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는 분명히 발전하고 있었다. 비록 개발 독재 시대와는 좀 다른 의미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가 우리에게 준 것이다. 놀림을 당해 가면서까지 스스로 파기한 최고 권력의 권위, 그 결과 역사상 최초로 권위의 시대에서 해방된 우리 사회가 갖게 된 민주주의와 주체성의 소박한 밝음이었다. 대통령 노무현은 도도한 시대 흐름의 중심에서 바로 그것을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는 그 흐름을 받아 계승할 만한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것의 실체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고, 오해했고, 심지어 한껏 비웃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박정희를, 심지어 전두환을 그리워했고, 그 결과 오만 가지 얼룩에도 눈을 감아 버린 채 그저 돈 벌게 해 준다는 이명박에게 덜컥 나라를 맡겨 버렸다.
------------------------------------------------------------
물론 노무현은 (우리 모두나 마찬가지로) 완벽하지 못했다. 실수도 했고 한계도 있었다. 측근의 비리도 존재했다. 부인과 자녀들의 잘못된 행보도 있었고 이 부분들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노무현을 잡아 넣기 위한 끈질긴 보복성 표적 수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와 관련된 회사들을 사정 요원 수십 명이 수개월간 이 잡듯이 뒤졌다. 그 결과 수십억 규모의 문제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여담이지만 이명박 퇴임 후 이렇게 털어 본다면 과연 뭐가 얼마나 나올지, 무척 궁금하다).
물론 돈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버젓이 살아 숨쉬며, 심지어 노구를 이끌고 여기저기 골프나 유람도 다니던 전두환과 노태우는, 90년대 초반 의 돈 가치로 수천억 원을 해 먹고도 (지금으로 보면 조 단위 규모일 것이다) 아직 추징금도 다 내지 않고 있다. 몇 년 전 전두환은 남은 재산이 몇 십만 원 밖에 없다고 신고해서 국민의 쓴웃음을 자아낸 적도 있다.
세상이 이런데, 노무현은 결코 죽을 이유가 없었다. 조금만 더 뻔뻔했더라면, 조금만 더 스스로에 대해 관대했다면, 조금만 더 눈 딱 감고 버텼다면, 널찍한 감방에서 기껏해야 한 2년 살다 나오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런 다음 다들 그러듯 적당히 억울해 하면서 국가 원로로 훈수나 두며 살면 되는 거다. 하지만 바보 같은 그는 그러지 못했다.
완고한 이상주의자. 타협을 모르던 투사. 그의 양심과 자존심이 그런 삶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부의 속성에 조금씩 물들어버린 나약한 주변을 마냥 탓할 수도, 또 결과적으로 이를 허락하고 만 자신을 용서할 수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추구했던 깨끗함을 지켜내지 못한 데 대한 절망감과 퇴임 이후 거꾸로 가는 세상에 대한 회한, 그리고 오랜 투쟁의 삶 속에서 수십 년 간 쌓인 피로와 외로움이 얼마나 컸던 것일까.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런 고집불통의 노무현이지만, 40대의 젊은 나이에 아직도 서슬이 퍼런 전직 대통령을 향해 호통치던 성깔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에게만큼은 한번도 성질을 부린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기는커녕 너무 권위가 없어 세간의 비웃음만 당했던 대통령. 그게 인간 노무현이 추구하던 민주주의였다. 너무 앞서 갔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옳은 방향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이후 불과 1년여, 한때 국민을 섬기겠다며 촛불에 고개 숙였던 이명박은 이제 그 촛불을 하나하나씩 다 잡아 들이고 있다. 방송, 부동산, 교육, 용산… 사회 전 분야에 걸쳐서 있는 넘들끼리 잘 먹고 잘 살자는 수작이 너무 뻔한데도 눈 가리고 아웅이니 그 뻔뻔함이 하늘을 찌른다. 도심집회 원천 불허니 민주노총 집회 불허니 하는 것을 보면 이들에겐 헌법도 그저 거추장스러운 허울일 뿐이다.
무원칙, 무인권, 무헌법의 3무를 적극 실천하는 이 독재/무식/무대뽀 정권이,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려 그토록 애썼던 노무현의 뒤를 이어 지금 대한민국을 통치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낸 엄혹한 현실이다.
그리고 이제, 노무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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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결코 죽을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처벌이 자살이라면 이것은 너무 가혹하다. 남아 있는 우리들에게도 너무 가혹하다.
오점은 오점대로 인정하고, 오래 살면서 자신의 시대에 대한 역사의 평가를 지켜봐야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묵묵히 버텨 줘야 했다. 이렇게 버리고 가는 것은 너무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이 극단적인 수단을 통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해도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을 상황에서 말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전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이만큼 했으니 앞으로는 너희들이 해라. 하지만 너희들은 이런 나보다 더 잘 해야 된다…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그가 그런 식으로 우리와 소통할 수 밖에 없었던 거라면 그것이야말로 비통한 일이다. 그렇다. 비통하다. 일국의 대통령, 그것도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거대한 변화를 시도했던 그를 그렇게 내몰고 이렇게 보내야 했다는 것이 너무나 참담하다. 최소한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이 고통과 상처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이 진정될 쯤에는 다시 한번 힘을 내야 한다. 그냥 무너져 버릴 수는 없다. 이제 그의 뒤치닥거리는 우리 몫이기 때문이다. 할 일이 많다. 생업에 바쁜 가운데서도 옳고 그름, 착하고 악함은 구별하며 살아야 한다. 돈보다 소중한 것이 세상에 있고(말 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것을 위해 사는 모습도 때로는 보여야 한다. 남의 부족함을 비웃지 말고 연민하고, 남의 아픔을 같이 느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그것을 이 어두워진 땅에 제대로 구현해 낼 수 있을지 끝없이 고민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그가, 새벽녘의 그 절벽에서 외롭게 뛰어내리며 우리가 알아줬으면 바랬던 마지막 소망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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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글을 맺으며, 고인께 드릴 것이 있다. 이 모든 정신 없는 하루 동안의 비극 속에 엉뚱하게도 내가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고인이 투신 직전 동행했던 경호원에게서 담배 한 대를 찾았다는 이야기였다.
그 담배 한 대. 사형수에게도 허락되는 생애 마지막 담배 한 대조차도 주어지지 않은 죽음.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이자 우리 민주주의의 희망이었던 인간 노무현을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
그래서, 비록 직접 드릴 수는 없지만 이렇게 글로써라도 권해 드리련다.
한대 붙이세요. 그리고 이제 푹 쉬세요. 빌어먹을 놈의 세상에서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마냥 헛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요.
파토(patoworld@gmail.com)
2009.5.23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활개치는 세상에서, 한줌 부끄러움에 몸을 떨던 자 결국 그 자신을 버림으로써 마지막 남은 자신의 존엄을 지키다.
'인간 노무현'에 대한 추도사는 이 한줄로 족하리라.
'정치인 노무현'을 위한 추도사는 한줄로 부족하다.
지역주의, 권위주의, 보스정치, 계파정치에 맞선 그의 도전과 그 한계까지도, 그 자신이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에서 밝힌 대로 "먼 훗날 역사가 밝혀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딴지 편집부 일동
[謹弔] 인간 노무현을 보내며
2009.5.23. 토요일
여느 때처럼 일어나 습관적으로 인터넷을 켰다. 배우 여운계씨의 죽음. 어젯밤에도 본 것이었지만 여전히 안타까운 소식이다. 씁쓸한 마음을 머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다시 뉴스 화면으로 돌아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기도설’
하하… 이건 또 무슨 수작이냐. 87년도인가 김일성이 죽었다는 오보 사건 때보다 더 황당하다. 바보 언론들 또 한 건 하는구나.
하지만 다시 짧은 기사들이 연이어 올라온다. 그리고 조금씩 구체화되는 내용들. ‘노무현 중태’, ‘노무현 위독’, 급기야는 ‘노무현 사망’. 아. 이건 오보가 아니다. 정말 죽었구나. 정말 스스로 목숨을 끊었구나. 노무현이. 다른 사람도 아닌 그 노무현이.
이렇게.
…나는 소위 노빠는 아니다. 물론 고인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누구보다 기뻤고 그 사건이 역사적인 쾌거였다고 지금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같은 이유로 탄핵 책동 때도, 본지 지면을 통해 평소답지 않은 강한 어조로 비난을 퍼부은 바 있었다.
다만 그가 우리나라를 송두리째 바꿔 놓는 대업적을 이룩할 거라는 기대를 가진 적은 없었다. 그것은 그가 어디가 어때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 아니 정치라는 것의 본성 자체가 개인의 양심이나 이상을 통해 그런 식으로 금방 변해 갈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국민을 빽으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리고 그게 가장 옳은 모양새긴 하지만, 그 국민의 마음이라는 것도 실은 갈대와 같다. 결국 그 틈을 주류의 기득권 세력이 조금씩 뚫고 들어와 휘저어 버리고 만다. 실제로 그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고, 국민의 영웅 노무현은 어느틈엔가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낙인 찍혀 버렸었다.
하지만, 그래서 노무현 시대가 실제로 퇴보와 좌절의 시대이며 나아가 ‘잃어버린 10년’의 반쪽이었던가? 물론 아니다. 여기에 대한 나의 견해는 작년 이명박 정부 출범 때 쓴 글에 잘 나와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읽어봐도 좋겠다.
[칼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적이 아니라 상식이다
[칼럼] 자영업 몰락의 진실
[칼럼] 대규모 실업사태의 진실
위 글 중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잃어버린 10년은커녕, 노무현 취임 전에 해외에 나가서 집권 말미에 돌아온 나의 눈에 우리나라의 그간의 발전상은 그 어느 시대 못지 않게 피부로 느껴졌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지고 눈빛에 자신감이 차 있었다. 그런 적 없다고?
글쎄. 스스로는 못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 살다 온 나의 눈에는 그 몇 년 사이에 사람들 얼굴에서 나타난 변화가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는 분명히 발전하고 있었다. 비록 개발 독재 시대와는 좀 다른 의미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가 우리에게 준 것이다. 놀림을 당해 가면서까지 스스로 파기한 최고 권력의 권위, 그 결과 역사상 최초로 권위의 시대에서 해방된 우리 사회가 갖게 된 민주주의와 주체성의 소박한 밝음이었다. 대통령 노무현은 도도한 시대 흐름의 중심에서 바로 그것을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는 그 흐름을 받아 계승할 만한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것의 실체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고, 오해했고, 심지어 한껏 비웃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박정희를, 심지어 전두환을 그리워했고, 그 결과 오만 가지 얼룩에도 눈을 감아 버린 채 그저 돈 벌게 해 준다는 이명박에게 덜컥 나라를 맡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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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노무현은 (우리 모두나 마찬가지로) 완벽하지 못했다. 실수도 했고 한계도 있었다. 측근의 비리도 존재했다. 부인과 자녀들의 잘못된 행보도 있었고 이 부분들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노무현을 잡아 넣기 위한 끈질긴 보복성 표적 수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와 관련된 회사들을 사정 요원 수십 명이 수개월간 이 잡듯이 뒤졌다. 그 결과 수십억 규모의 문제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여담이지만 이명박 퇴임 후 이렇게 털어 본다면 과연 뭐가 얼마나 나올지, 무척 궁금하다).
물론 돈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버젓이 살아 숨쉬며, 심지어 노구를 이끌고 여기저기 골프나 유람도 다니던 전두환과 노태우는, 90년대 초반 의 돈 가치로 수천억 원을 해 먹고도 (지금으로 보면 조 단위 규모일 것이다) 아직 추징금도 다 내지 않고 있다. 몇 년 전 전두환은 남은 재산이 몇 십만 원 밖에 없다고 신고해서 국민의 쓴웃음을 자아낸 적도 있다.
세상이 이런데, 노무현은 결코 죽을 이유가 없었다. 조금만 더 뻔뻔했더라면, 조금만 더 스스로에 대해 관대했다면, 조금만 더 눈 딱 감고 버텼다면, 널찍한 감방에서 기껏해야 한 2년 살다 나오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런 다음 다들 그러듯 적당히 억울해 하면서 국가 원로로 훈수나 두며 살면 되는 거다. 하지만 바보 같은 그는 그러지 못했다.
완고한 이상주의자. 타협을 모르던 투사. 그의 양심과 자존심이 그런 삶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부의 속성에 조금씩 물들어버린 나약한 주변을 마냥 탓할 수도, 또 결과적으로 이를 허락하고 만 자신을 용서할 수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추구했던 깨끗함을 지켜내지 못한 데 대한 절망감과 퇴임 이후 거꾸로 가는 세상에 대한 회한, 그리고 오랜 투쟁의 삶 속에서 수십 년 간 쌓인 피로와 외로움이 얼마나 컸던 것일까.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런 고집불통의 노무현이지만, 40대의 젊은 나이에 아직도 서슬이 퍼런 전직 대통령을 향해 호통치던 성깔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에게만큼은 한번도 성질을 부린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기는커녕 너무 권위가 없어 세간의 비웃음만 당했던 대통령. 그게 인간 노무현이 추구하던 민주주의였다. 너무 앞서 갔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옳은 방향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이후 불과 1년여, 한때 국민을 섬기겠다며 촛불에 고개 숙였던 이명박은 이제 그 촛불을 하나하나씩 다 잡아 들이고 있다. 방송, 부동산, 교육, 용산… 사회 전 분야에 걸쳐서 있는 넘들끼리 잘 먹고 잘 살자는 수작이 너무 뻔한데도 눈 가리고 아웅이니 그 뻔뻔함이 하늘을 찌른다. 도심집회 원천 불허니 민주노총 집회 불허니 하는 것을 보면 이들에겐 헌법도 그저 거추장스러운 허울일 뿐이다.
무원칙, 무인권, 무헌법의 3무를 적극 실천하는 이 독재/무식/무대뽀 정권이,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려 그토록 애썼던 노무현의 뒤를 이어 지금 대한민국을 통치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낸 엄혹한 현실이다.
그리고 이제, 노무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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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결코 죽을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처벌이 자살이라면 이것은 너무 가혹하다. 남아 있는 우리들에게도 너무 가혹하다.
오점은 오점대로 인정하고, 오래 살면서 자신의 시대에 대한 역사의 평가를 지켜봐야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묵묵히 버텨 줘야 했다. 이렇게 버리고 가는 것은 너무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이 극단적인 수단을 통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해도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을 상황에서 말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전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이만큼 했으니 앞으로는 너희들이 해라. 하지만 너희들은 이런 나보다 더 잘 해야 된다…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그가 그런 식으로 우리와 소통할 수 밖에 없었던 거라면 그것이야말로 비통한 일이다. 그렇다. 비통하다. 일국의 대통령, 그것도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거대한 변화를 시도했던 그를 그렇게 내몰고 이렇게 보내야 했다는 것이 너무나 참담하다. 최소한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이 고통과 상처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이 진정될 쯤에는 다시 한번 힘을 내야 한다. 그냥 무너져 버릴 수는 없다. 이제 그의 뒤치닥거리는 우리 몫이기 때문이다. 할 일이 많다. 생업에 바쁜 가운데서도 옳고 그름, 착하고 악함은 구별하며 살아야 한다. 돈보다 소중한 것이 세상에 있고(말 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것을 위해 사는 모습도 때로는 보여야 한다. 남의 부족함을 비웃지 말고 연민하고, 남의 아픔을 같이 느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그것을 이 어두워진 땅에 제대로 구현해 낼 수 있을지 끝없이 고민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그가, 새벽녘의 그 절벽에서 외롭게 뛰어내리며 우리가 알아줬으면 바랬던 마지막 소망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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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글을 맺으며, 고인께 드릴 것이 있다. 이 모든 정신 없는 하루 동안의 비극 속에 엉뚱하게도 내가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고인이 투신 직전 동행했던 경호원에게서 담배 한 대를 찾았다는 이야기였다.
그 담배 한 대. 사형수에게도 허락되는 생애 마지막 담배 한 대조차도 주어지지 않은 죽음.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이자 우리 민주주의의 희망이었던 인간 노무현을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
그래서, 비록 직접 드릴 수는 없지만 이렇게 글로써라도 권해 드리련다.
한대 붙이세요. 그리고 이제 푹 쉬세요. 빌어먹을 놈의 세상에서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마냥 헛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요.
파토(patoworld@gmail.com)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45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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