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한 사회

가자 학살과 용산 학살

pulmaemi 2009. 1. 27. 06:29

그 팔레스타인 여인은 이스라엘군의 폭탄에 남편과 네 자식과 며느리를 잃었다. 기도를 하고 싶다고 울부짖는 딸아이의 몸에서는 불길이 뿜어나왔다. 며느리의 몸은 녹아서 없어졌다. 단순히 살갗이 타는 화상이 아니라 근육과 뼈까지도 녹여버리는 이상한 폭탄이었다. 바로 '인'을 탄두에 넣은 백린탄이었다. 의사들은 생전 처음 보는 화상 앞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팔다리를 자르는 수밖에 뾰족한 치료 방법이 없었다. 가자는 이스라엘의 신무기 실험장이었다.


23일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으로 1500명 가까운 팔레스타인인이 죽었다. 아이도 300명이나 죽었다. 부모 형제를 잃은 아이는 더 많다. 불구가 된 아이는 더 많다. 이스라엘은 사람만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기반 시설도 초토화시켰다. 콘크리트공장도 밀가루공장도 잿더미가 되었다. 팔레스타인은 이제 밀가루조차도 비싼 값을 주고 이스라엘에서 들여와야 한다. 팔레스타인인의 자립 기반을 말살하여 영원히 이스라엘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 이스라엘의 목표다.


이스라엘이 전세계의 빗발치는 비난에도 가자에서 나치 뺨치는 학살극을 자행한 것은 미국의 지지가 있어서다. 이스라엘의 만행을 비판하는 양심적인 유대인도 없지 않아 있지만 미국의 주류를 장악한 유대인은 오직 자신들에게만 생존권이 있다고 믿고 오직 자신들만이 역사의 희생자라고 생각하는 만성 왕자병과 악성 공주병에 걸려 있다. 그들은 정상이 아니다. 나라를 되찾으려고 싸우는 팔레스타인인을 테러리스트로 몰아붙이면서 압도적인 무력으로 민간인을 학살하는 테러 국가를 조국이랍시고 예찬한다.


팔레스타인인은 이민족인 이스라엘 군대의 손에 불타 죽었지만 용산의 철거민은 자국 경찰의 손에 불타 죽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어야 할 경찰이 국민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용역업체 불량배들과 손잡고 진압 작전에 나서서 위아래에서 물로 불로 철거민을 몰아붙여 태워 죽이고 떨어뜨려 죽었다. 두개골이 함몰될 정도로 폭력을 휘두른 사실이 드러날까봐 겁이 났는지 유족들의 동의도 얻지 않고 서둘러 부검을 하고 모든 잘못을 철거민에게 뒤집어씌운다.


군사 독재 정권도 감히 못한 폭력을 김석기라는 신임 경찰청장이 뭘 믿고 저질렀을까? 그러면 윗분이 예뻐해줄 거라고 믿어서였다. 알아서 기었던 것이다. 히틀러 시절에 이루어진 만행 가운데 히틀러가 명시적으로 지시를 한 것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아랫사람들이, "지도자의 뜻에 부응하여" 저지른 짓이었다. 그러나 이명박은 히틀러가 아니다. 히틀러는 자력으로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권력의 구심점 노릇을 할 수 있었지만 이명박은 자력으로 정권을 잡지 않았다.


숱한 사기와 거짓과 협잡과 배신을 밥먹듯이 저지른 전과 14범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신문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한 조중동의 철저한 미화와 포장 덕분이었다. 조중동도 그것을 알고 이명박도 그것을 안다. 옛날에는 조중동이 박정희와 전두환을 두려워해서 알아서 기었지만 지금은 이명박이 조중동을 겁내면서 알아서 긴다. 자기 허물이 워낙 많아서 조중동이 합심해서 까대기 시작하면 1주일도 못 가서 정권이 무너진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방송법을 고쳐서 조중동에게 방송사를 한 아름 선물로 안기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가 부패를 저지르고 정권을 잃었다가 오뚝이처럼 되살아나는 것은 그가 이탈리아 최대의 언론 재벌이기 때문이다. 조중동이 방송까지 장악하게 되면 한국에서도 조선일보 방씨 일족이 대통령까지 하겠다고 나설 날이 멀지 않았다.


히틀러는 이명박이 아니라 조중동이다. 친일을 미화하는 뉴라이트 세력이 판을 치는 것도 조중동이 뒤에서 받쳐주기 때문이다. 이명박을 몰아내도 조중동이 건재하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한국은 여전히 일본을 대신해서 북한과 싸움질을 하고 옆에서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만 회심의 미소를 지을 것이다.


 제대로 된 나라의 정치 세력은 좌와 우가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평등과 공평한 기회를 중시하는 진보 세력과 경쟁과 능력을 중시하는 보수 세력이 모두 건전한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공동체가 치우치지 않고 굴러간다. 그런 정치 세력이 크려면 제대로 된 언론이 있어서 옥석을 가려주어야 한다. 먹고 살기 바쁜 국민이 언론에 기대지 않고 어떻게 자기 공동체의 현실을 정확하게 가려낼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런 언론이 너무 없다. 진보 세력은 그래도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이나 오마이뉴스 같은 그쪽 바닥에서 무시못할 영향력을 가진 언론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양식 있는 보수 세력이 기댈 만한 언론은 거의 전무하다. 조중동은 보수의 가치, 자국의 이익이라는 최소한의 공익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사주의 사익만을 챙기는 '사보'일 뿐이다.


이명박과 조중동은 요즘 민영화를 부르짖고 있다. 이명박은 부자 세금을 깎아줘서 모자란 정부 예산을 알짜 공기업 매각으로 벌충하고 주식 보유로 평생을 떵떵거리자는 계산이고 조중동은 거기서 떨어지는 떡고물을 기대한다. 이들은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는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어갈지에는 관심이 없다.


폴리 토인비라는 영국의 언론인은 공동체를 '삭막한 사막을 가로지르는 낙타 상단'에 비유한 적이 있다. 나라와 나라가 경쟁을 하는 냉엄한 현실도 생각하면서 상단 안에서 낙오되는 낙타도 없게 하는 것이 좋은 사회라는 것이다. 조중동은 나라야 어찌 되건 약자야 어찌 되건 나만 잘 살고 보자는 아메바 수준의 집단이다. 폴리 토인비 같은 양식 있는 언론인이 많아져서 뒤에서 엄호해주지 않는 한 한국에서 아무리 새로운 정치 세력이 신당을 만들고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조중동의 패악질에 쓰레기통에 처박힐 것이다. 좋은 정치는 좋은 언론을 먹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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