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협동조합' 운영해온 서울 독산고 이야기
불량식품 팔던 매점 개선하려 학생·학부모 '직접 운영해보자' 협동조합 꾸려
경남 교육계에서도 협동조합 바람이 불고 있다. 경남도교육청은 올해 학교협동조합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지난 3월 선도학교를 공모해 지난달 양산 범어고등학교와 사천여자고등학교, 창원 태봉고등학교 3곳을 선정했다. 범어고와 사천여고는 매점 운영방식, 태봉고는 기초·전문 직업체험 프로그램 운영방식이다.
학교협동조합을 처음 추진하는 이들 세 학교 교직원·학부모·학생들은 협동조합을 어떻게 만들고, 어떤 식으로 운영할지 모든 게 낯설다. 이에 도교육청이 지난 19일 경남교육연구정보원에서 사단법인 경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공동으로 학교협동조합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에서는 한발 앞서 학교협동조합을 시도, 현재 활발하게 운영 중인 서울 금천구 독산고등학교 '독산누리사회적협동조합' 사례가 소개됐다.
독산고협동조합 기초를 닦은 홍태숙 교사가 '학교협동조합으로 배우는 사회적 경제 교육'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홍 교사는 올해 서울 수명고로 자리를 옮겼지만, 독산고협동조합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한 시간 반 동안 열띤 강의를 펼쳤다. 독산고 사례로 경남 학교협동조합 미래상을 찾아본다.
지난 19일 경남교육연구정보원에서 열린 학교협동조합 세미나에서 홍태숙 교사가 서울 금천구 독산고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정봉화 기자 |
◇학교협동조합이란? = 홍 교사는 개념부터 설명했다. 서울시교육청 학교협동조합 지원 및 육성에 관한 조례에는 '학교를 기반으로 공통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교육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학생·교직원·학부모·지역주민 등이 설립한 협동조합 기본법상의 협동조합 또는 협동조합연합회(사회적 협동조합·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포함)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홍 교사는 이를 좀 더 쉽게 풀이했다. '초·중·고등학교에서 학생·교직원·학부모가 중심이 되어 교육 또는 학생의 복지와 관련이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만든 교육공동체'가 학교협동조합이다.
▲ 매점 '한 입 두 입' |
◇독산고 협동조합 설립 배경과 과정 = 독산고는 왜 협동조합에 관심을 보였을까? 월 100만 원이 넘는 비싼 임대료에 수익을 남기려는 매점 업체는 요즘 학생들이 자주 쓰는 말로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 과자들을 팔았다. 유명 제과업체를 선호해서가 아니라 최소한 영양이나 성분조차 인증되지 않은 '불량식품'이 버젓이 판매됐다.
2013년 4월 학교운영위원회에서 건강한 매점을 만들자는 논의 끝에 협동조합으로 운영해 임대료 수익금을 학생복지비로 쓰고, 매점에서 파는 제품 질을 관리하자고 결정했다. 막상 협동조합을 추진하려니 순탄치만은 않았다. 기존 규정에 따라 공개경쟁 입찰 시스템(최고가)에서 매점 낙찰에 실패했다. 협동조합을 갓 추진하는 학부모·학생들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밑천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독산고 실패 사례가 촉매제가 돼 2014년 12월 서울시는 '사회적협동조합으로 학교 매점을 임대할 때 수의계약이 가능하도록' 조례를 개정하는 성과를 거뒀다. 독산고는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설립해 같은 해 매점 낙찰에 성공, 11월부터 매점을 운영했다.
독산고 협동조합 매점 간판은 '한 입 두 입'. 학생들 공모로 뽑은 이름이다. 기존 매점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불량식품이 완전히 사라졌다. 생활협동조합(생협) 협조로 싼 가격에 납품받아 친환경제품이 70% 이상 차지한다. 홍 교사는 "학생들 호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중간이윤이 적더라도 과자 자격이 2000원을 넘지 않도록 했다"며 "간식거리만 팔던 학교 매점이 교육과 소통 공간이 됐다"고 설명했다.
▲ 빵 가격 협상. |
◇'사회적 경제' 교육으로 = 홍 교사는 학교협동조합이 이윤을 바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사회적협동조합은 이윤이 발생해도 배당할 수 없고 공익적 목적으로 써야 한다. 홍 교사는 협동조합 설립을 계기로 매주 1시간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사회적 경제 수업을 진행했다. 협동조합 국내외 사례와 더불어 마을기업·사회적 기업·공정무역·윤리적 소비 등을 가르쳤다.
사회적 경제에 눈뜬 학생들이 '우리 함께'라는 협동조합 동아리를 만들었다. '세상을 바꾸는 마개 2g' 캠페인(플라스틱 물병 모으기)과 '캔모아 축구공' 프로젝트(음료수캔 모은 돈으로 축구공 구입), '에코옷장'(교복 물려주기) 사업 등은 학생들 호응이 커 지금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또 직접 문구점에 가서 문구류 리스트와 가격표를 작성해 매점 가격과 비교하고, 동네빵집협동조합과 품목과 가격 협상을 벌이는 등 학생들 스스로 사회적 경제를 체험하고 있다.
▲ 에코 옷장 운영 |
캠프나 아카데미 등 다양한 사회적 경제 활동 가운데서도 지난해 처음 진행한 '사슴사냥게임 대회(서로 협동하면 토끼보다 사슴 같은 더 큰 이익을 얻는다는 협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제학 게임 명칭)'는 학생들 반응이 뜨거웠다. 학생들이 힘을 모아 학교 안팎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기회를 주는 체인지메이커 프로젝트로, 이 대회에서 학생들이 내놓은 결과물은 기대 이상이었다.
홍 교사는 "성에 관한 궁금증을 해결하는 프로젝트가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는데, 기존 학교 성교육 수업이 채워주지 못했던 내용을 학생들이 스스럼없이 묻고 답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면서 "이런 과정 역시 협동의 가치를 배우고 체험하는 좋은 기회"라고 설명했다.
◇학교협동조합으로 변해가는 학교 = 학생들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은 물론 나눔과 배려, 협동의 가치를 배우고 있다. 협동조합 이사회에 참여함으로써 학생 자치를 경험하고, 조합원으로서 1인 1표 등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 관련 진로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도 생겨났다. 학생과 교원·학부모가 함께 계획, 실행하고 참여하는 수평적인 관계가 형성됐다. 사회적 경제 체험 기회와 장소는 물론 학교와 지역사회가 만나는 소통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 학용품 가격 조사. |
홍 교사는 "독산고가 서울 변두리 지역에 있는 학교로 저소득층 학생들이 상당수이고 학력도 떨어지는 편이었는데, 협동조합이 생기고 나서 학생들 자존감이 높아져 학교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어 "학교협동조합은 경제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학생들 문제해결 능력과 민주시민 역량을 키워주는 것은 물론 지역사회와 학교를 결합시키는 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도교육청은 이날 세미나를 시작으로 도내 3개 선도학교에 학교협동조합 설립 절차 컨설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양산 물금고·보광고에서 학교구성원들이 자체적으로 협동조합을 만들려고 준비하는 등 도내에도 학교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 플라스틱 물병 모으기. |
▲ 사슴사냥게임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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