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잡동사니

헬조선이지만 괜찮아: 2015년 추석도 웹툰과 함께

pulmaemi 2015. 9. 30. 08:18

헬조선이지만 괜찮아: 2015년 추석도 웹툰과 함께

아직 2015년이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만일 대한민국 올해의 단어를 꼽는다면 단연‘헬조선’이 아닐까. 그만큼 살아가기는 점점 힘겨워지는데 정치, 경제, 사회 어느 면에서나 꿈과 희망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어쩌면 추석도 더는 풍요와 가족애의 상징만은 아닐 것이다. 많은 이들의 삶은 괴롭고, 그 와중에 웹툰을 소개해야 하는 나도 괴롭다. (…)

당연하지만, 웹툰 하나 본다고 해서 헬조선이 헤븐조선으로 바뀌는 건 아니다. 하지만 뭐 어떤가.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라도, 가족과 함께여서 괴로운 사람이라도 좋다. 휴일을 즐기는 사람이든, 휴일이 아닌 사람이든 상관없다. 짬을 내어 좋은 웹툰 한 편씩 보다 보면 HP와 MP가 조금은 채워지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골라 봤다.

여기가 바로 헬조선: 동네변호사 조들호(헤츨링, 네이버웹툰)

[동네변호사 조들호]는 네이버웹툰에서 2013년 3월 6일부터 지금까지 연재 중인 해츨링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흔하지 않았던 법률 소재 만화다. 주인공인 조들호는 잘 나가는 검사였다가 모종의 일들을 거치고는 동네 변호사로 살아가고 있다.

다소 냉소적이면서도 건들건들하는 변호사 조들호와 조들호의 법률 사무실에 대학생 인턴으로 들어온 미숙하지만 나름으로 강단 있는 황이라가 콤비가 되어 각종 사건에 뛰어든다. 임대차보호법, 청소년보호법, 갑을 관계 문제, 층간소음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룬 에피소드들이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조들호의 과거가 조금씩 밝혀진다.

[동네변호사 조들호]는 ‘한국 사회’라는 법정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다루면서, 일반인이 잘 알지 못하거나 헷갈릴 수 있는 법률 지식을 자연스럽게 독자에게 전달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몇몇 에피소드에서 법률용어나 전개상 오류는 아쉬움이다. 작화에서도 아쉬운 점은 있지만, 개성 있는 등장인물과 강렬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에피소드들로 호평받았다.

특히 몇몇 에피소드는 무척 논쟁적이다. 청소년 보호와 개인의 자유 사이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청소년 게임 셧다운제’, 흉악 범죄자의 변호 받을 권리와 사형제 등 단적으로 결론 내릴 수 없는 사안들을 다룬 에피소드들이 많다.

물론 현실이 그렇듯 조들호의 세계에서도 멋진 주인공 변호사가 악당들을 물리치고 사건마다 승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사건은 이기기도 하지만 어떤 사건은 이기고도 찜찜하며, 때론 결론이 없기도 한다. 말하자면 조들호는 한국사회를 그저 거울처럼 보여줄 뿐이다(심지어는 댓글난도 거울이다). 그 거울은 이렇게 묻는다.

‘자, 세상은 이렇게 개판인데,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할까?’ 

[동네 변호사 조들호]와 함께 보기

  • 송곳(최규석, 네이버웹툰): 너무나도 잘 알려진, 그래서 일일이 소개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한 바로 그 작품.

힘을 내요 슈퍼 파월: 캐셔로(team befar, 다음웹툰)

[캐셔로]는 다음웹툰에서 2015년 3월 29일에 연재를 시작해 20화로 1부가 완결된 team befar의 작품이다. 어떤 계기를 통해 소위 슈퍼 파워를 얻게 되는 등장인물의 이야기는 수많은 매체를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로 더 잘 알려진 마블코믹스의 [어벤져스] 같은 슈퍼 히어로물이 대세인 시대이기도 하다.

[캐셔로] 또한 특별한 힘을 가진 소년, 소녀의 이야기다. 여동생 상안과 함께 살며 생계를 꾸리는 청년 상웅은 어느 날 갑자기 강한 힘과 엄청난 점프력을 가지게 되는데, 슈퍼 파워의 발동 조건이 바로 현금이다. 몸에 지닌 현금이 많을수록 더 큰 물리적인 힘을 가지게 된다. 돈이 눈에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빗대는 절묘한 설정이다.

만약 주인공이 정말로 돈이 엄청나게 많다면 (여러 가지 의미에서)세계를 정복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돈이 있어야 슈퍼 파워를 쓸 수 있지만, 현실은 매번 월급날을 기다리며 공과금을 걱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자신의 힘을 남을 위해 쓰려는 상웅의 모습은, 부자들보다도 더 서로 돕고 살아가려 애쓰는 서민들에 대한 찬사가 아닐까. 그렇다고 어둡고 잔잔하기만 한 작품은 아니다. 상웅의 슈퍼 파워와 현실적인 상황들이 부딪혀 빚어내는 개그 또한 아주 알차다.

[캐셔로]와 함께 보기

  • 무빙(강풀, 다음웹툰): 슈퍼 파워를 가진 부모, 이를 이어받은 자식. 그들에게 다가오는 두 세력과의 충돌.

웃다가: 죽어도 좋아♡ (골드키위새, 다음웹툰)


대중문화의 역사가 길어지고 작품이 많아지면서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본 적 없는 참신한 설정과 스토리를 가지기가 점점 더 어렵다. 다음웹툰에서 2015년 4월 7일부터 연재를 시작해 1부 20화가 끝난 골드키위새의 [죽어도 좋아♡]는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보고 스크롤을 내리면 안 된다. 평범한 회사원 여성인 루다는 어느 날 이미 지나온 하루를 다시 반복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반복되는 하루의 비밀은 바로 직속 상사인 과장. 과장은 ‘맨스플레인’과 꼰대이즘의 결정체로 수많은 여사원에게 공공의 적이다. 그런데 그 과장이 죽으면 그 날이 리셋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루다는 무지막지하게 미워하는 과장을 죽게 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어디선가 본듯한 설정이지만, 작가 특유의 약 빤 개그가 매회 빵빵 터지면서 작품을 특별하게 만든다. 또한, 직장 여성들이 알게 모르게 사회생활 속에서 당하는 부당한 경험들을 작품 속에 녹여내 후련함까지 느끼게 한다. 꼰대이즘이 피곤한 젊은 남성에게도 좋고, 꼰대가 되고 싶지 않은 연식의 모든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작품이다. 물론 이 작품의 개그가 웃기지 않는다면, 그건 개인의 취향이니 어쩔 수 없지만.

[죽어도 좋아♡]와 함께 보기

  • 이말년서유기(이말년, 네이버웹툰): 이말년 하면 약, 약 하면 이말년. 분명히 서유기 원전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데도 넘쳐나는 약의 향기.

그 외 추천 웹툰 한줄평

  • 애프터눈 히어로즈(구자윤, 다음웹툰): 현대 사회를 배경의 무협물. 그래픽 노블풍의 작화와 호쾌한 액션 연출이 일품.
  • Ho!(억수씨, 네이버웹툰): 청각장애인 소녀와 평범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 잔잔함과 개그와 감동이 어우러진.
  • 어쿠스틱 라이프(난다, 다음웹툰): 이제는 한 아이의 부모로 성숙해가는 모습이 느껴지는 작가의 육아와 일상 이야기.
  • 시동(조금산, 다음웹툰): 고단한 청춘의 이야기. 마치 2015년 판 [비트](허영만)인 것처럼. 하지만 어둡지만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