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살다 온 친구 하나가 언젠가 말했다. 한국은 섬나라라고. 처음에 들었을 때는 '그래 북쪽이 막혔으니 남한은 섬이지'하고 기계적으로 응수했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곳이 얼마나 좁디좁은 섬인지를 절감한다.
엊그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동시집 『솔로강아지』 전량 폐기 논란. 시집에 실린 시 한 편이 '잔혹성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작가가 쓴 시 '학원 가기 싫은 날'은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 이렇게 / 엄마를 씹어 먹어 / 삶아 먹고 구워 먹어 / 눈깔을 파먹어' 등 다소 폭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충격적이다', '비교육적이다', 심지어 '패륜'이라는 비난성 댓글이 인터넷을 도배했고, 출판사는 사과문을 발표하고 책을 전량 폐기하기로 했다. 하지만 작가와 부모는 이에 반대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이 시를 보고 아이의 엄마는 처음에는 화도 났지만, 곧 아이가 다니던 영어 학원을 그만두게 했다고 한다. 아이는 평소에 엽기호러물과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다소 기발한 방식으로 창착을 한단다. 표현이 거칠기는 하지만 아이의 발상이 재미있어서 모녀는 시를 두고 한바탕 유쾌하게 웃었단다.
열두 살 어린이가 쓴 것이지만 이것은 엄연히 시이고 예술이다. 예술의 본질은 내면의 표현이다. 어느 곳, 어느 시대에나 예술가들이 '표현의 자유'를 외쳤던 것이 이 때문이다. 예술의 힘은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진실에서 나온다. '내가 이렇게 표현하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눈치를 보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가면을 썼기 때문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과격한 장면이 나오는 것과, 실제 현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당신은 누군가가 죽이고 싶도록 밉거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 싶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는가? 삶의 복잡다단한 감정과 아픔을 마음껏 표현하고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이 예술이다. 작가가 미성년자라고 해서 이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마녀사냥하듯이 이 어린 작가를 몰아붙이고 손가락질하는 '패거리'들 중에, 이 꼬마 작가만도 못한 사고 수준을 가진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몇년 전에는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실린 만화에 학부모들이 항의하고 잡지를 절독하는 사건이 있었다. 천사를 죽이는 잔인한 장면이 나온다는 이유에서였다. 발행인은 "아이들은 이 작품을 보고 어른들이 걱정하듯 심각한 충격이나 상처를 받지 않는다"면서 불편해하는 것은 오히려 어른들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비슷한 일이 또 생각난다. SBS TV 프로그램 『짝』 폐지 사건. 짝짓기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본능이자 생애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다. 『짝』은 젊은 청춘 남녀가 일주일 동안 공동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짝을 탐색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려내 많은 인기를 얻었다. 사람들은 늦은 밤 TV 앞에 앉아 남녀의 미묘한 심리 게임이 만들어내는 드라마에 울고 웃었고, 시청률 미달로 폐지되는 일이 다반사인 방송가에서 『짝』은 3년 가까이 제자리를 지켰다. 한 여성 출연자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이번 동시집 출판사처럼 '짝'의 제작진도 사과문을 발표해야 했고, 프로그램은 폐지되었다. 출판인으로서 우수하다고 생각되는 글을 발굴해 출판한 것이나, 방송인으로서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해 제작한 것이 왜 사과할 일인가. 이들이 정녕 사과해야할 죄를 저질렀다면 그것은 단 하나, 대중-으로 포장된 이 사회의 집단적 감시 체제-의 비위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북쪽 통로가 막힌 데다 그전에도 대륙의 동쪽 끝 반도였던 탓에 '우리끼리' 사는 데만 익숙했다. 사방이 막힌 산골에 가면 사람들의 보수성이 강하다. 텃세도 심하고 누군가 알량한 권력이라도 잡으면 소위 '어른 노릇'을 하며 위계질서를 세우려고 한다. 자기들이 사는 세상이 전부인 줄 알기 때문이다.
7,8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는 언론, 출판은 물론 음악이나 미술 등 예술에까지 국가의 검열이 횡행했다. 공전의 히트곡으로 사랑받았던 송창식의 '고래사냥'은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춘다'는 가사가 너무 '나태하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고, 막걸리에 취해 정부 비판조의 발언을 했다며 사람을 잡아들이는 '막걸리 보안법'이 엄존했다.
타인의 생각을 재단해서 '허가' 또는 '불허'를 내릴 수 있다는 오만한 사고방식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문제가 있어? 그럼 없애' 식의 사고는 단순·무식하게 사병을 통제하는 군대 문화에서 나온 것이다. 믿을 수 없게도 한국은 여전히 이런 군대 문화가 통하는 나라다.
그런 지배 체제에 익숙하다보니 사람들의 생각도 획일화되었다. 다양한 사고를 하지 못하고 한 가지 기준에만 목을 맨다. 요즘 서울 도심에 나가면 성형외과, 미용실, 아니면 학원 간판 뿐이다. 통장에 찍힌 숫자가 절대 기준이 된 물질만능주의 사회는 눈에 보이는 외모를 절대 기준으로 치는 외모지상주의를 불러왔다. 남들 다 가는데 기죽으면 안 되니까 꼭 필요하지도 않은데 허리띠 졸라매며 대학에 간다. 남들 다 하니까 근사한 예식장에서 수천만원짜리 결혼식을 치러야 하고, 하객이 적으면 창피하니까 인력업체를 통해 '하객 대행' 알바까지 모집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정신없이 세태를 좇아가는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생각이나 해본 적이 있을까.
체제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주입받은 기준을 가지고 타인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자기 자신은 제 정신으로 살고 있는지 먼저 돌아볼 일이다. 개인의 자유로운 생각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 모두가 한 가지 기준으로 사고하도록 강요되는 것은 폭력이다. 그런 집단적 '무의식'이 폭력이 된 사례는 역사적으로 셀 수 없이 많다.
좁은 곳에서 좁은 생각만 하고 살면 사고가 굳는다. 길은 하나가 아니고, 세상에는 수많은 다양성이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을 열린 마음으로 포용하지 못하면 그 영혼에는 성장의 기회가 없다. 평생 사춘기 수준의 사고에 머문 채 살다 죽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허핑턴코리아 임은경 작가,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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