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세상

뉴스 보기가 겁나는 세상!

pulmaemi 2009. 3. 2. 08:25

(서프라이즈 / 논가외딴우물 / 2009-02-28)


돌아오는 3월 1일자로 춘천교도소가 개청 100주년을 맞는다고 한다. 1909년 3월 1일 경성감옥 춘천분감으로 시작된 춘천교도소 100년의 역사를 기리는 행사가 27일에 있었음을 알리는 기사에 눈에 뜨이는 이름이 거론된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수감된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춘천교도소에서 2년여 간 수감되었던 일이 기사 내용 중에 언급된 것이다.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09&no=126595

 

얼마 전, 모 인사와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자리에서 때아닌 감옥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참석한 모 인사가 20여 년 만에 때마침 감옥에 갔다 와서였는지, 자연스럽게 과거를 되돌아보는 자리가 이루어진 것이다.

 

함께 참석했던 이들이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이구동성으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언급했을 만큼 여러 교도소를 전전하며 고생한 이야기들은 사실 민주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대한민국, 우리 현대사의 부끄러운 증언 중의 하나일 것이다.

 

고문받은 몸으로, 누운 채 배변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느꼈던 인간적 모멸감 등, 차마 입에 담기 민망한 이야기들까지 회상하자니 오늘 전여옥 의원과 한나라당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헌법기관에 대한 테러”라는 발언이 갑자기 더욱 가증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전 의원과 한나라당의 주장대로라면 국회의원이 백주 대낮에 68세 노인에게 테러를 당했다는 말인데 그게 테러였다면 이 국회는 이제 해산할 때가 되었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원칙과 상식에 반하는 사법의 잣대에 분노하고, 밀어붙이는 입법 테러와 색깔 공세에 항거하기 위하여 이제는 68세 노인마저 테러에 나설 정도로 우리 사회가 분열되었으며, 힘없는 이들의 분노가 극에 다다랐다는 말인데, 해방 후 좌우 대립이 이 정도였을까? 역사의 순리란 결국 변곡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들의 생각에 테러로 몰아붙이면 여론을 유리하게 몰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인간사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이제 테러를 겁내야 할 정도의 세상이 되었다는 생각이 여러 사람에게 들기 시작하면 결국 사회적 갈등은 어떤 임계점에 이르게 될 것이고, 비로소 집단의 자정 능력이 발휘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전여옥 의원 정도는 말 섞기도 싫으니 차치하고 정부 여당에 권하고자 하는 말이 있다면,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이 혼란과 국정 실패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따지지도 않고 묻지도 않을 국민이라고 착각하지나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전 의원이 68살 할머니에게 맞으면서 혹시라도 “미디어법 통과는 어떻게 되죠…” 하고 쓰러지지 않은 것이다. 누구처럼 “대전 상황은?” 하고 쓰러졌으면 열사 날 뻔했으니……

 

아무튼, 이런 종류의 인간들과는 거의 종이 다른 류의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개인의 사욕이 아니라 우리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하여 독재에 항거하다 감옥에 갇힌 사람이 수감자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교도소 내의 열악한 환경과 공무원 비리, 그리고 각종 부조리와 싸워나간 이야기는 흥미진진함을 떠나,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 정도의 수준이라도 이르게 된 연유를 어느 정도 설명해 주는 부분이 있다.

 

때로는 배꼽을 잡을 만큼 웃기고, 때로는 그 배짱에 속 시원하고, 슬프고, 또 한편으로는 눈물 날만큼 감동이 있는 이야기, 그리고 어떤 반전! 이 이야기는 하나의 영화 시나리오로서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훌쩍 넘은 어느 날, 초로의 신사가 대한민국의 국무총리로서 법무부 교정국 순시에 나섰을 때, 순시에 나선 본인이나 그를 박수로 영접하던 교정국 공무원 모두에게 어떤 소회가 들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새삼스럽게 우리의 민주주의가 소중하기만 할 뿐이다.

 

그중에 춘천교도소에서의 에피소드도 하나 있다.

 

감자 이야기다.

당시 교도소 내의 감자국은 껍질을 제거하지 않고 조리해 나왔다고 한다. 교도소 측은 감자 껍질 벗길 인력도 부족해 해결해주고 싶어도 곤란할 수밖에 없던 시절, 이 전 총리가 건의하기를 감자가 메뉴에 오르는 날이면 미리 각 방마다 정량의 감자를 나누어주고 수감자들에게 감자의 껍질을 벗기게 해 달라고 요구했단다.

 

당연히 수감자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먹을 감자니 혹시나 감자 속살마저도 깎일까 봐 정성스럽게 껍질을 벗겨 주방에 전달했고, 그날은 껍질을 벗긴 부드러운 감자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는 사연인데, 이런 종류의 사연들과 어울려 사랑과 슬픔이 넘치는 이야기는 전국의 교도소마다 푸짐하게 많다.

 

생리적으로 불합리한 것을 못 참는 이 전 총리가 그 까칠한 성격으로 교도소 내에서 무슨 일들을 끊임없이 벌였을지, 그리고 그 시절 수감되어 고락을 함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짧은 글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졸필을 변명하는 것이지만 오늘은 그냥 상상만 해 보라는 말로 글을 맺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있다고 한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 현실이 과거지사 이야기할 때가 아닌 듯해서이다.

 

환율은 거침없이 뛰고, 북한은 미사일 실험인지를 한다고 하고, 앞뒤 좌우 온 세상이 험한 이야기뿐인데 이 정권은 미디어법에 생명을 건듯 한다.

 

누구의 힘으로 이 정권이 태어났는지 생각해보면, 그들의 처지를 이해 못 할 바가 아니기에 불쌍하기까지 한데, 그 바람에 우리 모두까지 불쌍해졌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참으로 뉴스 보기가 겁나는 세상이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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