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잡동사니

[세번째 사랑] '바람'에 대한 남녀의 인식 차이 *

pulmaemi 2012. 9. 18. 10:26


세 번째 사랑 Barney's Version, 2010, 캐나다, 이탈리아 134분 
감독: 리차드 J. 루이스
출연: 폴 지아마티, 더스틴 호프먼, 로자먼드 파이크, 미니 드라이버

젊은 시절 난잡한 생활을 했던 주인공 바니(폴 지아마티)는 1974년 이탈리아에서 한 여자와 결혼한다. 그 여자가 자기의 아기를 가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니는 그 여자에 대해 별로 아는 것도 없었고 심지어 뱃속의 아이는 자기 아기도 아니었다. 아기를 사산한 첫 아내는 자살한다.

1975년 바니는 삼촌의 일을 도우기 위해 몬트리올에 가서 방송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삼촌이 소개해 준 명문가 집안의 딸과 결혼하게 되는데 결혼식 날 운명적인 여자 미리엄(로자먼드 파이크)을 만난다. 미리엄은 바니가 피우는 시가의 이름을 알고 있고 또 바니가 좋아하는 하키에도 호감을 표한다. 바니는 미리엄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미리엄은 자기 결혼식에서 다른 여자에게 구애하는 황당한 바니를 당연히 거절한다. 

결혼생활은 따분하고 바니는 여전히 뉴욕에 있는 미리엄 생각 뿐이다. 우연한 기회에 바니의 친구가 자기 아내와 불장난을 하게 되고 바니는 마치 그런 기회를 기다렸다는 듯이 아내와 이혼한다. 그리고 바니는 뉴욕에 있는 미리엄에게로 가서 최선을 다해 구애하고 결국 미리엄과 결혼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완벽'하고 '평범'한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이 영화는 바니라는 한 '평범한' 남자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평범한' 인생은 코미디, 비극, 엽기, 공포, 살인, 불륜 등으로 점철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이 영화는 막장 드라마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온갖 장르적인 감정을 오간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이 영화의 주제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는 같은 일로 울기도 웃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이 말은 몽테뉴의 <에세이>에 나오는 소단락의 제목과 같다. 

몽테뉴는 <에세이>에서 "마음은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침통해하는 서로 반대되는 드러난 모습 속에 자기 격정을 숨긴다"는 내용의 이탈리아 시인 페트라르카의 시를 인용한다. 그리고 "우리 마음이 너무나 '가볍고' '부드럽기' 때문에, 그 가장 허약한 움직임들도 짧은 충격을 주는 일이 없지 않다."라고 한다. 사실 우리의 인생은 몽테뉴가 말한 감정적 사건들로 가득하다. 

어느날 사랑하던 늙은 아버지 이지(더스틴 호프만)가 유곽에서 복상사 했을 때 바니는 아버지의 시체를 보고 웃음을 터뜨린다. 가장 슬픈 순간임에도 바니는 죽은 아버지의 시체를 앞에 두고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한다. 마치 고대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이 그리스 침략을 앞두고 그리스의 운명을 동정하여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를 떠올리게 하는(바니가 죽은 아버지에게 '왕'같다고 하기 때문에) 이 장면은 우리가 우리의 복합적인 감정에 죄의식을 갖지 말라고 위로하는듯 하다. 

이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사랑과 결혼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몽테뉴도 "내가 아내에게 냉담하다가도 금세 상냥해지는 것을 보고, 누가 그 중에 하나는 가짜 심정이라고 한다면 그는 바보다. 네로 황제는 제 어미를 물에 빠뜨려 죽이러 보내느라고 작별하면서도 이별에 마음이 동요되어 끔찍하고 측은하게 느꼈다."고 했다. 

바니가 두번째 부인과 이혼하려고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이지는 결혼생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난 결혼이 얼마나 힘든지 체험한 사람이야. 처음엔 정신 없지. 그러다 곧 진짜 인생이 시작돼. 뼈 빠지게 일하고 오면 아내는 얘기하자고 조르고, 남자는 자고 싶지. 그러다가 금방 처음 느낌이 시들시들해져서 손에 똥을 쥐고 있는 기분이 돼."

결혼에는 흔히 두 가지 관점이 있다. "너무 평범하고 누구나 다 하는 뻔한 생활이라서 할만한 것이 아니다."라는 관점, 또는 "진정한 즐거움과 깨달음은 평범함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라는 것. 하지만 이 영화는 결혼과 사랑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평범하지 않다고 말한다. 바니라는 별 볼일 없는 외모의 평범한 남자에게도 사랑과 관련하여 온갖 괴상한 일이 다 일어난다. 이 영화의 원제 'Barney's Version'은 어떤 인생과 사랑이든 그 자신의 판본에서는 특별한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바니와 미리엄의 결혼생활은 이지의 말과는 달리 나름 모범적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큰 틀에선 아버지의 통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미리엄은 자기가 새로 시작한 방송일에 바니가 관심을 가지지 않아 서운해 하고 바니는 아내의 직장동료를 괜히 의심하고 은근히 아내 일을 방해한다. 물론 얼핏 보기엔 바니가 과분한 아내를 얻은 것처럼 보이는 이런 구도와 관련해서 바니의 아내에 대한 사랑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보이기는 한다. 비록 바니가 실수로 바람을 한 번 피워서 결혼이 깨지긴 했지만 바니는 죽는 순간까지 아내를 사랑했다고 쉽게 결론 내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영화의 후반부에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장면이 있다. 이혼하고 치매에 걸린 바니가 미리엄을 다시 만나면서 "내가 당신을 포기한적 있어? 그런데 어떻게 지금 당신을 포기하겠어?"라고 하고 미리엄도 그 말에 동의한다. 그런데 바니가 미리엄에게 키스하려 하자 미리엄은 바니의 키스를 살짝 거부한다. 일반적으로 보기에 이 영화의 잔잔하고 타협적인 듯 보이는 결말에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장면이다. 

 

남자는 일반적인 통념보다 더 정신적으로 집착하고 또 여자는 생각보다 육체적인 면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실질적인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도 미리엄에게 '관념적으로' 집착하던 바니는 미리엄이 없을 때 하룻밤 바람을 피운다. 사실 바니에게 그 원나잇 스탠드는 아무 의미도 없다. 하지만 미리엄은 바니의 외도를 결국 용서하지 못하고 끝까지 바니와의 사소한 육체적 접촉도 거부하는 것이다. 

 

남녀간의 사랑이 종종 엇갈리는 것은 이 부분에 대한 의식 차이와 서로에 대한 몰이해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부분은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성애 性愛는 특수한 두 사람 사이의 특별하고 완전히 '개인적인 매력'이라는 견해(여자의 견해?)와 '의지의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또 다른 견해(남자의 견해?)는 모두 옳다. 혹은 더욱 적절하게 말하면, 진실은 전자에도 후자에도 없다."고 한 마당에 확실히 결론 내리기가 거의 불가능한 문제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 영화는 내내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도 용감하고 진지하게 인생과 사랑을 통찰하고 있다. 이 영화의 원작소설 ’Barney’s version’은 캐나다의 소설가 모데카이 리클러의 유작이자 대표작으로 영화 엔드 크레딧에는 원작자를 추모하는 자막이 나온다. 이 소설은 1997년 출간 당시 언론의 극찬을 받으며 커먼웰스상, 길러상을 수상한 베스트셀러였다. 

주인공 바니역을 맡은 폴 지아마티는 이 영화로 골든글러브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미리엄’ 역의 로자먼드 파이크(<오만과 편견>의 ‘제인’ 역할을 맡았던 영국 여배우)와 바니의 친구같은 아버지 역의 더스틴 호프만은 최고의 연기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