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격랑에 떠도는 비정규직 이주민 남녀 story
미래경영연구소 소장 황 장 수
1. 지난 주말 TV 공중파에 『첨밀밀』을 방송했다.
나는 97년 처음 본 이후 세번째로 이 영화를 봤는데 볼 때마다 그 해석이 달라진다. 항간에는 이 영화를 두고 불륜 영화니 애잔한 러브스토리라고 하는데 나도 처음 봤을 때 그렇게만 보였다.
그런데 두번째 보니 중국의 역사와 중국인의 운명이 보였고 세번째 보니 평범한 개인의 삶과 운명이 세계화나 세계 질서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이 보였다.
우리 한국인 또한 지난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IMF 체제에 들어가면서 개인의 삶들이 자신의 잘못 여부와 관계없이 무너져간 기억들이 생생하다. 평범한 은행원, 직장인, 자영업자, 중소기업주들이 외환위기로 직장에서 잘리고, 명퇴하고, 회사가 돈줄이 막혀 흑자부도하고 가게가 문을 닫았다. 이들 중 다수는 자살하고 빈곤층으로 몰락하는 등 다시는 정상적인 가정과 삶으로 복귀하지 못한 채 사라져갔다.
세계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럽 재정위기로 까지 전화되어 경제 대공황적 상황으로 내몰려 가고 있다. 이 또한 수많은 민초들의 삶과 가정과 연애를 파괴한 채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들을 만들어 내고 훗날 『제2차 대공황』이라고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이영화는 유리알 처럼 부서지기 쉬운 소시민과 사회적 약자의 불안을 보여준다
2. 영화 『첨밀밀』은 86년에 시작되어 95년에 끝나는 10년간의 기록이다.
이 영화 감독 진가신은 97년 3월에 이 영화를 개봉했다. 이 영화를 둘러싼 시대적 배경이 여럿 있는데 진 감독은 이 영화를 겉으로는 연애영화인 듯 포장해 놓고 그 속에 은밀히 당시 중국상황과 관련된 감춰진 코드를 여러 개 숨겨두었다. 내가 생각할 때 이 영화는 절대 연애영화가 아니며 홍콩 중국 반환에 대한 두려움과 중국인의 유랑의 역사를 담은 일종의 한의 엘러지이다.
공교롭게 이 영화는 96년 말에 제작되어 97년 3월에 개봉되었고, 이 영화 개봉 즈음에 중국의 개혁개방과 홍콩 반환을 이루어낸 등소평이 죽었다(97.2.19) 그는 문화혁명을 끝내고 1979년부터 개혁개방을 적극 추진했고 이 영화의 시작 무대인 86년 즈음에는 중국전역이 한참 수십 년 만에 맛보는 『돈의 맛』에 취해 너나 할 것 없이 재빠른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앞다퉈 도시로, 홍콩으로, 해외 화교지역으로 빠져나가던 시점이었다.
이 영화는 이 시기인 86년, 홍콩의 구룡 기차역에 주인공 장만옥(이교), 여명(소군) 두 사람이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등을 맞대고 졸던 여명이 황급히 깨어나 역 출구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며 시작된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도 이를 다시 보여주며 여명 앞에 등을 맞대고 졸던 이가 장만옥임을 보여주며 끝난다.
이 영화는 홍콩 반환 협상이 85년 마무리되어 97년 7월1일 반환이 공식 발표된 그 다음해인 86년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중국 지도자 등소평은 사회주의로 환원을 두려워하는 식민지 지배국 영국(1997년까지 150년간 조차)과 홍콩 부유층을 달래기 위해 『일국양제』라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기치 아래 사회주의(본토), 자본주의(홍콩)의 서로 다른 체제를 향후 50년간 유지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러나 홍콩 부유층들과 대다수 주민들은 문화혁명의 기억을 두려워하며 해외 이주를 시도하고 있었고 중국 본토사람들 중 이해 밝은 사람들은 홍콩으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주해왔다.
이 영화의 주인공 남녀는 이때 홍콩으로 건너온 이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이 시기는 80년대 초중반의 홍콩 영화 황금기가 끝나가고 있던 시점이었고 숱한 유명한 홍콩의 스타들이 앞다퉈 반환전에, 캐나다, 미국, 호주, 말레이시아 등 해외로 도피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또 홍콩사회 전반에는 중국으로의 권력 교체기를 맞아 마치 세기말적인 데카당스란 분위기와 좋았던 시절의 옛 홍콩의 영화를 기억하자는 노스탈쟈적 분위기 또한 팽배해 있었다.
홍콩 반환이 확정되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시점인 1989년에 중국 한복판 북경에서 『천안문 사태』가 발생하여 수천 명의 민주화 운동가와 학생들이 학살되는 충격적 사태가 발생했다. 등소평의 온건한 개혁가로 애써 믿고 싶었던 홍콩 시민들에게는 이는 엄청난 쇼크로 다가왔고 그래서 홍콩인들은 재력 순으로 서로 앞다퉈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중국의 이주 노동자들이 채워 오던 시점이었다. 이런 이주는 장만옥 애인인 표와 같은 건달에게도 홍콩반환이 천안문 총살과 같은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3. 이 영화에 주요 인물들은 대략 7명이다.
주인공 여명(소군), 장만옥(이교)이고 여명의 약혼자 격인 소정(양공이), 깡패 두목 표(증지위), 여명의 고모(아이린 수), 여명이 일하던 음식점 주인(장동조), 이 영화 촬영 감독이자 영어교사(크리스토퍼 도일) 등이다.
중국 북부 텐진 출신은 소군은 보통어를 사용해 광동어를 사용하는 홍콩에서 영어는 물론 현지 통용 중국말 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가 이교를 처음 만나게 되는 『맥도날드』에서 그는 『콜라』조차 말을 못해 이교의 도움을 받는다. 여기서 맥도날드는 중국인의 서구사회에 대한 동경의 상징이다.
약삭빠르고 이재에 밝으며 악착 같은 이교는 거의 하루에 대여섯 개의 파트타임을 뛰는데 소군에게 『맥도날드』에 취직하고 좋은 일자리를 잡고 싶으면 영어를 알아야 한다고 그를 꾀어 영어학원에 넘기고 구전을 받는다.
이후 이교에게 일방적으로 이용 당하는 순진한 소군은 온갖 그녀의 뒤치다꺼리를 하면서도 본토의 약혼녀를 데리고 오기 위해 고생을 한다.
이때 두 주인공이 정분이 나는 씬이 86년 섣달 그믐날 밤 새해를 맞아 홍콩인이 축제차 모여드는 빅토리아 공원에서 『등려군』의 음반을 파는 데서 시작된다. (이 빅토리아 공원은 나중에 천안문사태이후 민주화 촉구 시위장소로 유명해진 곳이다.)
중국 본토인은 등려군을 좋아하지만 홍콩에서는 본토인 (2류 국민)임을 드러내기 싫어해 등려군 음반을 사지 않는다. 이들의 음반장사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초의 자영업은 인간들의 행동분석에 실패해 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실패의 쓰라림 속에 두사람은 그날 밤 인연을 맺는다.
이후 이교는 주식 투자에 눈을 뜨고 하루 종일 소군을 데리고 주식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수만 달러를 모으지만 투자 실패로 저 유명한 87년『블랙 먼데이』를 맞아 깡통을 차고 안마시술소 안마사로 추락하게 된다.
주식 사기 위해 줄 서 있는 동안, 소군은 이교에게 묻는다.
『너는 돈이 많은데 왜 그리 악착같이 더 모으려 하니?』
이교 왈 『나는 고향 광주에 어머니 집도 지어주고 여기 홍콩에서도 집을 사야 한다!』
소군이 『그러면 끝이냐?』고 물으니 『그 다음에는 빌딩을 올리겠다』고 이교가 답한다.
이주 비정규직 대여섯 Job 노동자가 자본주의에 최초로 눈뜬 것이 부동산과 주식투기였던 것이다.
『블랙 먼데이』란 1987년 10월 19일 금요일에 뉴욕증시가 하루에 598포인트(22.6%) 급락하며 대공황보다 더 심한 폭락을 한 충격적인 사건이다.
차후 이 사건의 배경으로 새로운 주식투자기법(프로그램 매매, 위험보장 포트폴리오)가 주범으로 지적되었다(새로운 투자기법이나 금융상품은 항상 화근을 부른다!)
어쨌든 이교의 계좌는 깡통이 되어 거덜나고 그녀는 돈 없고 예쁜 여자가 대체로 빠지는 화류계(안마사)로 빠지고 여기서 삼합회 두목격인 표를 만나 애인이 되어 다시 빌딩을 사는 등 신분이 급상승한다.
(이 대목은 육칠십 년대 한국 방화 story와 매우 흡사하다)
이때를 즈음해 소군의 애인 소정이 홍콩으로 들어와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3년 뒤인 90년 소군의 결혼식에서 부자가 된 이교와 만나게 된다(청춘 남녀가 사귀다 한쪽이 망하면 결국 헤어지게 되는 공식!)
4. 이 영화에서 홍콩인의 동양도 서양도 아닌 어정쩡한 심리 상태를 보이는 인물이 한 명 나온다.
올 데 갈데 없는 소군은 먹이고 재워주는 고모인데 그녀는 매춘업소를 운영한다. 그녀는 젊었을 때 50년대 유명 헐리우드 스타 월리엄 홀덴이 홍콩에서 영화 『모정』을 찍을 때 『페닌슐라 호텔』(홍콩 최고 호텔로 엄청 비싸다)에서 만나 식사를 한 적이 있다고 우기며 그에 대한 환상으로 살아간다.
그녀가 영화에서 가진 의미는 끊임없이 서양인들과 교류하며 살아가면서도 결코 서양인이 되지 못하고 홍콩반환에 남겨질까 두려워하는 홍콩인 『내면의 불안』을 상기시킨다.
또 다른 이는 여명이 일하는 음식점 주인인데 이 사람은 농구를 좋아하며 미국 NBA를 동경하다가 결국 90년 뉴욕으로 이주한다. 서양을 동경하다 어떤 이는 죽고 어떤 이는 꿈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소군이 다니는 영어학원 강사는 소군 고모 집의 창녀와 교제하다 에이즈가 걸린 그녀와 함께 홍콩을 떠난다. 여기서 에이즈는 수명이 다한 홍콩을, 영어강사는 돌아갈 곳이 있는 서양인을 상징하며 동서양이 같이 사귀다 결국 헤어질 수 밖에 없는 홍콩의 운명을 암시한다.
이 영화의 숨겨는 주제는 경제적 정치적 여건에 따라 끝없이 유랑해 온 중국인들의 『디아스포라』 의식이다. 거대한 땅과 수많은 민족으로 이루어진 중국인은 역사상 평온한 시절이 별로 없이 동남아와 전세계를 떠돌며 살았다. 이 영화에서도 본토(광주, 텐진) →홍콩→미국 뉴욕으로 떠도는 두 주인공의 표류가 등장한다.
결국 두 사람의 이별도 『투기의 실패』 때문이며, 이후 다시 갖은 고생 끝에 겨우 귀환표 까지 예약(이교)해 놓고도 홍콩이나 중국이 아닌,미국에서 두사람이 우연히 재회한 것도 이러한 중국인의 방랑과 홍콩과 중국의 미묘한 정치적 관계를 보여준다.
5. 이교는 다시 결혼식에서 만난 소군에게 그리움을 느끼며 가까워지다 서로 키스를 하게 되고 옛날 둘이 가던 호텔에서 옛 기억을 되살린다. 그래서 소군은 소정에게 죽은 고모에게서 받은 상속금을 모두 주고 이교와 다시 시작하려 하지만 운명이 또 꼬인다.
이때 키스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인물과 노래가 『등려군』이라는 70~80년대 중화권의 전설적인 가수와 그녀의 노래 『goodbye my love』이다.
이 영화는 음악을 떼어놓고 설명하기 어려운데 간간이 BGM으로 등장하고 마지막 애잔한 재회장면에서 등장하는 등려군의 『월량대표아적심』과 『첨밀밀』이 유명하다. 등려군은 중국에서 대만 본토로 이주한 국민당 군대 출신 부모에서 태어나 70년대 초반 일본에서 크게 활동했으나 입국정지 등 서러움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중국 개방기 전후 중국 본토인들에 중국의 국민가수 대접을 받으며 히트 쳤는데 1989년 천안문 사태에 반대해 홍콩에서 시위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소군과 다시 엮이려다 도망가야 될 일이 생긴 표를 따라 할 수없이 미국으로 도망갔다가 불법입국자로 몰리는 등 고생을 하던 이교가 소군을 다시 만나는 장면이 길거리 TV에서 나온 등려군의 사망보도 때문이다. 그녀는 95년 5월 8일 태국 치앙마이에서 천식으로 죽었는데 중국 정보부가 민주화 시위에 앞장서는 그녀를 죽였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마지막 둘의 뉴욕 재회장면에서 배경에 깔리는 애잔한 『월량대표아적심』은 내가 본 최고의 영화 OST임이 틀림없다.
6. 영화 『첨밀밀』은 청춘 남녀의 연애영화가 결코 아니다.
나도 30대 초반 이 영화를 보고 로맨스영화라고 봤지만 나이 들어 보니 정치 역학과 세계화, 투기 속에 부침하고 부유하는 가련한 비정규직 이주 노동자들의 내잔한 이야기이다.
또 삶과 연애, 결혼등 인간의 기초적 안정 조차 파괴하는 세계화된 자본주의에 대한 두려움이자, 정신적 안식처나 머무를 곳 없이 떠돌 수 밖에 없는 『현대인의 디아스포라』 의식에 관한 우화이다.
영화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고 영화 또한 그러하다.
지금 대공황,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부동산 거품붕괴, 주식 폭락, 불황 등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살벌한 주변환경은 『첨밀밀』처럼 내 잘못 여부와 관계없이 나의 운명을 좌우한다. 내 미래도, 내 가정도, 내 삶도, 내 직장도, 내 자식도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위태로울 수 있다. 97년 외환위기 때 쫓겨난 수많은 이들이 가졌을 의문이 이러할 것이다.
유럽을 흔드는 경제 공황에 신음하는 그리스, 스페인 등의 국민들 또한 외환위기 때의 우리, 첨밀밀의 두 주인공과 똑 같은 의문을 던지고 있을 것이다.
세계 열강의 전략이나, IMF, WTO, FTA와 FRB의 금리정책이나 유로존 통합합의 등과 같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거대한 모든 것들이 내 삶을 파괴하고 나를 끊임없이 불안케 하고 떠돌게 하는 것이다.
첨밀밀은 투기금융 자본주의와 세계화 그리고 무의미한 열강과 자본들의 경쟁이 개인의 삶을 얼마나 불안케 하는가에 대한 『불안보고서』인 것이다. 즉,우리 주변에 늘 만나는 이주노동자 ,다문화 이주민, 우리 서민들 자신의 이야기 이기도한 것이다.
결국 영화 라스트신에 두 연인이 극적으로 우연히 재회하는 장면은 진가신 감독이 우리에게 던지는 조그마한 위안일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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