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당 / 유시민 / 2010-05-04)
6월 민주항쟁 승리의 비결 - 진보의 단결
6월 2일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야 5당과 진보적 시민단체의 대연합이 갖가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이제 막바지 국면에 와 있습니다. 지난 넉 달 야권연대를 추진하면서 우리의 정치사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국민의 정부는 역사적으로 볼 때 무려 2백여년 만에 탄생한 진보정권이었습니다. 1770년대 후반 조선 정조대왕 이후 권력은 언제나 보수 기득권 세력의 수중에 있었습니다. 정조대왕 시대의 개혁정치는 주권자인 정조가 현군(賢君)이었던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1800년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함께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는 진보세력이 한 번도 집권하지 못한 가운데 조선왕조가 끝났습니다. 보수 기득권세력은 일제강점기에는 친일파로, 해방정국에는 친미파로,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는 반공을 내세운 군부독재 추종세력으로 변신하면서 오늘날까지 강고한 힘을 유지해 왔습니다.
4.19 혁명으로 수립된 민주당 정권은 뿌리도 내려 보지 못한 채 군부쿠데타로 전복되고 말았습니다. 진보세력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징검다리로 삼아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일으킴으로써 군부독재를 끝냈습니다. 그러나 이 승리는 진보세력의 즉각적인 집권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진보세력의 집권은 10년 세월이 더 지나서야 불완전한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그나마 10년 만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진보세력의 집권은 왜 지연되었으며 왜 10년 만에 끝나 버렸는가? 저는 그것이 분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6월 민주항쟁 승리의 비결은 진보세력의 단결이었습니다. 1987년 6월 전국 주요도시의 길거리에서 국민들은 ‘호헌철폐, 독재타도’ 이 구호 하나만을 외쳤습니다. 항쟁의 지도부는 국민운동본부였습니다. 시민운동, 노동운동, 학생운동, 인권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등 사회운동단체는 물론이요 야당인 신민당까지도 모두 국민운동본부의 깃발과 지휘체계 아래 결합해 있었습니다. 그때에도 진보세력 내부에는 서로 다른 사상과 노선이 있었으며 격렬한 내부 대립과 논쟁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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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나의 조국> 1987년 6월 26일 평화대행진이 벌어진 부산 문현로터리에서 웃옷을 벗은 한 시민이 "최루탄을 쏘지 마라"고 외치며 다탄두최루탄을 발사하는 경찰에게 달려가고 있다. 199년 AP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사진에 포함. ⓒ 보도사진집 '그날의거리' |
그런데도 1987년 6월의 거리를 뒤덮었던 것은 단 하나의 구호 “호헌철폐 독재타도”였으며 항쟁의 지도부는 국민운동본부 하나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것은 대중이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중은 다른 구호에 반응하지 않았으며, 대오를 흐트러뜨리고 분열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행동에는 호응하지 않았습니다. 대중의 힘이 1987년 6월 진보의 대단결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것이 진보의 집권으로 곧바로 연결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진보의 분열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진보는 6월 민주항쟁의 승리를 쟁취했던 바로 그 시점부터 분열하기 시작했으며 23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여전히 그 분열의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 진보세력은 세 차례, 성격이 조금씩 다른 역사적 분열을 겪었습니다.
진보의 분열 -사회적 정치적 지역적 분열
진보의 첫 번째 분열은 1987년 7월과 8월의 ‘노동자 대투쟁’ 때 일어났습니다. 노동자들은 6월 민주항쟁의 승리가 만들어내 자유의 공간에서 수십 년 동안 억눌려 왔던 요구를 일시에 터뜨렸습니다. 그 투쟁의 주체들은 시민사회와 여론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럴 여유나 경험, 역량이 없었습니다. 6월 민주항쟁 때 함께 싸웠던 시민들도 ‘노동자 대투쟁’과 연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6월 민주항쟁 이후 진보가 겪었던 첫 번째 분열, 진보의 사회적 분열입니다. 진보세력은 이 분열을 막을만한 리더십이 없었습니다. 제1야당이 평화민주당에서 집권 열린우리당을 거쳐 제1야당 민주당으로 다시 돌아온 지난 20여 년 동안, ‘중도개혁’을 표방한 자유주의 정당과 백기완 선생 대통령 후보 추대운동에서 발원해 민중당을 거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분열한 진보정당 사이에 계속 존재해 왔던 정치적 대립은 바로 1987년 여름 일어났던 진보의 사회적 분열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진보의 두 번째 분열은 자유주의 정치세력 안에서 일어났던 정치적 분열입니다. 1987년 12월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벌어진 양김 분열은 자유주의 좌파와 자유주의 우파의 권력투쟁이 만들어낸 정치적 분열이었습니다. 집권할 수 있었던 유일한 야당이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으로 분열해 각자 후보를 냄으로써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이 형식적 정통성과 합법성을 획득한 노태우 정권으로 변신해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으며, 결국 권력은 보수 기득권 세력의 수중에 그대로 남게 되었습니다.
진보의 세 번째 분열은 지역적 분열이었습니다. 1990년 1월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가 야당을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영남의 자유주의 정치세력을 이끌고 보수 기득권 세력에 투항함으로써 호남을 고립시키는 지역대결의 정치지형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소위 3당합당입니다. 김영삼 총재는 대통령이 되는 데 성공했지만, 이로 인해 동서 지역분열이 고착되면서 우리 진보의 사회적, 정치적, 지역적 진보의 분열이 완성된 것입니다.
민주정부 10년의 기적 - 분열의 최소화
이런 점을 생각하면 김대중 정부의 탄생은 기적과도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IMF 경제위기로 보수 기득권 세력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고, 병역의혹으로 인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했으며, 이인제 후보가 경선에 불복하고 독자 출마함으로써 보수의 득표기반을 분열시켰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김대중 후보가 보수 기득권 세력의 한 축인 김종필 씨와 연합하여 충청지역 유권자를 끌어들였습니다. 정권교체를 열망한 유권자들은 새로운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김대중 후보에게 표를 몰아줌으로써 진보의 분열을 완화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하고서도 김대중 후보는 40만 표를 채 이기지 못했습니다. 한 세대를 뛰어넘은 그의 리더십과 카리스마가 없었다면 결코 손에 쥘 수 없었을 승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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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3년 2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손을 잡고 연단에서 내려오고 있다. ⓒ 주간사진동공취재단 |
노무현 정부의 탄생은 더 큰 기적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국정수행지지도가 매우 낮았고 집권 민주당이 극심한 내홍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거둔 승리였기 때문입니다. 보수세력인 정몽준 씨와 후보 단일화 드라마를 펼친 것도 큰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그 승리의 가장 큰 요인은 국민들이 노무현 후보가 진보의 통합을 도모할 수 있는 후보라고 보았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변호사였던 1980년대 여러 해 동안 부산 경남 지역 노동운동을 지원했습니다. 노동자를 도우려고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초선의원 시절 초기 활동은 전국의 노동쟁의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노동조합을 돕고 협상을 중재하는 일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진보의 사회적 분열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는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6월 민주항쟁 당시의 통합된 야당을 복원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사람입니다. 진보의 정치적 분열을 극복하는 데 오랜 세월을 바쳤습니다. 그는 또한 호남에 기반을 둔 정당의 영남 출신 후보로서 진보의 지역적 분열을 완화하는 데 매우 적합한 후보였습니다. 그가 획득한 1,200만 표는 진보가 세 가지 분열을 극복하고 완전한 통합을 이루었을 때 얻을 수 있는 득표의 최대치에 상당히 근접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노무현 대통령도 진보의 단결을 이루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진보의 사회적 분열은 더욱 심각해져 취임 1년 정도 지난 시점에서 거의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참여정부와 민주노총의 관계는 적대적 대립으로 치달았고 원내 진입에 성공한 민주노동당은 야권연대라는 명분 아래 한나라당과 공조하기도 했습니다. 노사정위원회도 좌초해 버렸습니다. 정치적 분열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된 직후 김영삼 전 대통령을 방문해 부산시장 후보 추천을 요청함으로써 3당합당 이전의 정당구도를 복원해 보려고 했지만, 성과는 없고 부작용만 컸습니다. 지역적 분열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탄핵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열린우리당을 지원해 영남에서 4명의 지역구 국회의원을 만들고 전례 없이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그 정당은 결국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었지만 ‘진보의 통합’이라는 정치적 소망을 성취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의 정치는 노무현 대통령이 좌절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그리고 국민참여당. 진보는 무려 다섯 개의 정당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다섯 정당의 지도자와 당원들이 이 분열을 어떤 논리로 정당화하든, 대중의 눈에는 이것이 분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국민참여당 역시 진보의 분열을 나타내는 현상 가운데 하나임을 저는 부정하지 않습니다.
진보란 무엇인가 - 인간을 자유롭게
진보란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다른 기준을 지니고 있겠지만, 저는 이남곡 선생이 <진보를 연찬하다>라는 책에서 제시한 개념을 따릅니다. 진보는 자유롭게 삶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사람을 해방시키는 일입니다. 물질적 결핍, 불합리한 제도, 낡은 사고방식의 억압에서 인간을 해방시켜 자유로운 존재로 만드는 것이 바로 진보입니다. 역사가 E. H. 카의 말처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은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계속해서 확대 발전된다는 믿음을 의미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만 보더라도 우리의 현대사는 국민이 이 세 가지 억압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킨 진보의 역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은 그 진보의 역사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했던 세력을 정치적으로 대표합니다.
보수 기득권 세력의 정치적 대표인 한나라당 정권이 어떻게 역사를 되돌리고 있는지 따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 3년 차를 맞은 지금 대한민국과 국민은 더 가난해졌습니다. 시민의 자유는 억압되고 있습니다. 평화가 자리 잡아가던 휴전선은 다시 대립과 증오의 현장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권력이 시민 위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개성과 다양성의 발현이 제약당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다시 진보의 정치적 승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진보의 승리를 실현하는 열쇠는 다시금 진보의 단결입니다. 결선투표가 없는 단순다수제 대통령선거 제도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채택한 우리의 제도적 환경을 고려하면 진보는 하나의 정당으로 결속하는 것이 옳습니다. 독일처럼 모든 정당이 지지율만큼의 국회의석을 얻고 선거가 끝난 후 의회에서 자유롭게 연합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진보 진영에 복수의 정당이 있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진보의 모든 정치세력이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되는 것, 이것이 역사가 요청하는 최고 수준의 단결입니다. 그런데 우리 진보세력은 그런 높은 수준의 단결을 이루고 유지할 능력이 없습니다. 다섯 개 정당으로 분열된 현실은 높은 수준의 단결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단결의 당위를 아무리 소리 높이 외쳐봐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분열의 원인 - 연합하는 능력의 부족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열을 생각해 봅시다. 이 분열이 왜 일어났습니까.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과 결별하도록 한 동력은 아무리 옳은 제안을 하고 아무리 명백한 잘못을 바로 잡으려 해도 내부의 정파 대립 구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경험적 절망감’이었을 것이라고 저는 진단합니다. 건전한 노선경쟁을 할 수 없고, 아무리 노력해도 당내에서 다수파가 될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따로 당을 만드는 것 말고는 소수파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을 것입니다.
국민참여당의 탄생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참여당 당원들은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공화정의 정신을 내부에서부터 실현하는 민주정당, 특정 지역에 기대지 않고 지역적 대립을 조장하지 않으며 정책으로 국민에게 다가서는 정책정당의 건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추구했으나 온전히 실현하지 못했던 진보적인 정책의 실현. 국민참여당 당원들은 이런 것을 절실하게 원합니다. 민주당에서 이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면, 열린우리당에 참여했던 것처럼 민주당에 참여해서 노력해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모습 그대로의 민주당’에서는 이것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민주당이 참여정부 정책노선을 제대로 계승하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역주의 정치구도에서 벗어나 정책정당을 지향하려는 각오를 읽어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당원에게 합당한 권한을 부여하는 정당민주주의 기본원리도 사실상 부정해 버렸습니다. 국회의원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은 당원으로 참여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게 된 것입니다. 그 안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이런 소망이 당의 노선에 반영될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치인들이 열린우리당을 소멸시켜 버림으로써 마지막 남아 있던 한 가닥 희망조차 다 없애버렸던 것입니다. 참정권을 행사하고 싶은 ‘깨어 있는 시민’들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정당을 스스로 만드는 것 말고 다른 어떤 대안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국민참여당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민주당을 비판하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국민참여당을 태동시킨 현실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통합의 조건 - 정책, 당원제도, 문화
우리의 진보세력은 연합하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많은 공통점과 적지 않은 차이점을 함께 지닌 다양한 진보세력이 연합하는 최고 형태는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하는 것입니다. 미국 민주당처럼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하려면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정책, 제도, 문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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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8일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5당과 시민단체가 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정책연합과 관련한 1차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 뉴시스 |
첫째, 당의 기본정책을 합의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6.2지방선거 연대를 위한 ‘5+4 연대회의’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공동정책 합의를 했습니다. 이라크 파병, 한미자유무역협정, 비정규직 입법 등 날카로운 대립을 일으킨 정책쟁점을 제외하고 지방행정 관련 정책만 다루었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공동공약을 만들기는 훨씬 어려울 것입니다. 예측할 수 있는 미래에 야 5당이 중대한 정책적 쟁점에 대한 합의를 이루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봅니다.
둘째, 합리적이고 개방적인 당원제도가 필요합니다. 부분적으로 상이한 지향을 가진 세력이 모인 연합정당에는 다수파와 소수파가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의 정당에서 높은 수준의 연합을 이루고 유지하려면 당내 소수파의 존립을 보장하는 제도가 있어야 합니다. 소수파가 다수파에게 승복하려면 당내 경쟁 규칙이 공정하고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모든 의사결정권을 다수파가 독점하여 소수파를 배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수적입니다. 아울러 오늘의 소수파가 내일은 다수파가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당원제도입니다. 당원의 자격요건과 권리가 명확해야 하며, 당 지도부와 공직 후보를 선출할 때 당원들이 직접 또는 대의원을 통해서 당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의 소수파가 자기의 노선에 동의하는 당원을 더 모으거나 기존 당원들의 지지를 획득함으로써 내일은 다수파가 될 수 있는 길을 늘 열어두어야 합니다. 국회의원과 직업정치인, 소수의 리더가 당원들을 지배하고 동원하는 것을 허용하는 비민주적이고 불합리한 당원제도로는 소수파를 지속적으로 통합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경쟁을 통한 내부 권력교체의 길이 봉쇄된 정당은 민주적인 정당이 아니며 발전할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신뢰의 문화가 있어야 합니다. 한번 공정하고 합리적인 당원제도와 경쟁의 규칙에 합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규칙을 준수하며 반칙을 반드시 응징한다는 신뢰가 뿌리내려야 연합정당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규칙과 제도는 사람이 만듭니다. 일시적으로 의사결정권을 장악한 다수파가 그 권력을 악용하여 합의된 제도와 규칙을 파괴하면 연합정당은 존속하지 못합니다. 열린우리당의 소멸은 그렇게 해서 벌어진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국민참여당 당원들 가운데는 열린우리당을 경험한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새로운 정치를 약속하고 대통령 탄핵 역풍 덕에 총선 승리를 거두었던 열린우리당 다수파가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창당 때 합의했던 당원제도를 공격했고 결국 그 정당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여당 당원들은, 정당개혁에 관한 한 민주당 지도자와 국회의원들이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6.2지방선거 - 진보연합의 시험대
이런 이유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 진보진영의 여러 세력들이 하나의 정당 안에서 높은 수준의 연합을 이루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서로 싸우면서 분열할 수는 없습니다. 국민들이 진보의 단결을 원하고 있으며, 단결하지 않으면 어느 정당도 한나라당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진보진영이 모두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하는 높은 수준의 단결을 이루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낮은 수준의 연합마저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당을 달리하면서도 정책연합을 하고 선거연합을 하고, 그리고 선거에서 승리한 다음 연합정부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연합은 할 수 있으며 또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선거를 통해서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이 빼앗아간 권력을 되찾고, 4대강 죽이기와 부자감세, 기본권 탄압과 국가재정 파탄 등 국민을 해치고 나라를 망치는 나쁜 정책을 중단시키고 진보의 좋은 정책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국민참여당의 탄생이 진보진영 분열의 끝이자 연대와 통합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국민참여당은 작년 겨울부터 야 5당과 시민사회가 정책연합-지방선거연합-공동지방정부 수립-2012년 총선과 대선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연합노선을 제안했고 지금까지 ‘5+4 지방선거연대’를 성사시키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했습니다. 진보의 대연합으로 지방선거 승리를 쟁취하고, 그 성과를 발판삼아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연대하기 위한 상설협의기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분열과 패배의 쓰라린 기억이 있던 자리에 연대와 승리의 행복한 경험을 채워 넣음으로써 진보를 지향하는 모든 정당들이 서로에 대한 믿음을 키워나가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모든 진보세력이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하여 높은 수준의 연합을 실현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경기도 선거 - 연합정치 승리의 경험을 축적하자
경기도지사 후보단일화 절차에 합의하지 못한 것이 전국적 지방선거 야권연대 협상 결렬의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 사실입니다. 국민들에게 송구스러웠고, 그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협상을 중재했던 시민단체 지도자들을 볼 낯이 없었습니다. 야 4당이 전국적 야권연대에 합의하지 못한 데에는 더 결정적인 다른 요인들이 있기는 했지만, 저에게도 큰 책임이 있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저와 김진표 후보는 경기도지사 후보 문제만 따로 떼서 직접 협상했고 마침내 합의를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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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김진표 후보(오른쪽)와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왼쪽). ⓒ 오마이뉴스 |
경선규칙을 협상하는 분들께 양보하고 또 양보하는 마음으로 협상에 임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상대가 제안하는 규칙이 우리 쪽에 불리하더라도 단일화를 원하는 국민들 여망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제가 단일후보가 되면 되는 대로, 김진표 후보가 되면 또 그대로,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반드시 야당이 이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연대협상 결렬로 큰 어려움에 처한 민주노동당과 창조한국당에 대해서 민주당이 진보진영의 맏형답게 넉넉한 배려를 해 주기 바랍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야권 단일후보가 이긴다고 해도 원만하게 행정을 꾸려나가려면 기초자치단체장과 광역의회의 뒷받침을 받아야 합니다. 기초단체장 후보와 광역의회 후보 단일화에 민주당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이 도덕적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고서는 진보의 단결을 이루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야권 단일후보가 되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진보의 단결을 호소합니다. 민주당 당원들은 왜 민주당이 진보 전체를 아우르는 정당이 되지 못하며 혼자 힘으로 한나라당을 넘어서지 못하는지 깊이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창조한국당과 우리 국민참여당 당원들 역시 자기들이 그토록 혹독하게 비판하는 민주당이 훨씬 더 많은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 이유를 헤아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깊이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서로 경쟁하면서도 진보의 단결과 국정의 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소망을 받들기 위해 노력합시다. 서로서로 상대방 눈에 비친 내 눈의 대들보를 보는 일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6.2 지방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직도 더 넓고 튼튼하게 연합할 시간이 있습니다. 야 5당과 시민사회가 손잡고 이번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어 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빛나는 승리를 발판삼아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준비하는 정치적 연대를 추진해 갑시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국민이 우리를 살펴주실 것임을 믿습니다.
2010년 5월 4일
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후보 유 시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