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세상

4월의 마지막 날, 노무현을 만났습니다

pulmaemi 2010. 4. 30. 14:00



(서프라이즈 / 유시춘 / 2010-04-30)


비포장도로는 험하고도 길었다. 버스는 출렁거렸고 함께 타고 있는 이들은 서로 몸이 뒤엉켰다. 모두 서로 쳐다보기만 해도 정겨운 ‘못난 것’들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덜컹거리며 달렸다. 개울을 건넌 것 같기도 하고 산모롱이를 몇 구비 돌아간 것도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집에 다다랐다. 60년대에 농촌에서 흔히 보던 초가집이었다. 방안에 사람들이 여럿 앉아 있었다.

 

나는 그들 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누군가 열심히 무언가에 대해 떠들었다. 나도 무엇인가 쉬지 않고 떠든 것 같다. 한참 후에 좌중에서 한 남자가 일어섰다. 그는 한지 종이가 낡아서 너덜거리는 격자문을 밀치고 마루로 내려섰다. 그리고 천천히 챙이 둥근 보리짚 모자를 썼다. 그리고는 방안의 사람들을 향해 한동안 정지한 듯 가만히 서 있었다. 다소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상대방이 열렬히 외치는 말을 이해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다는 그런 난감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마주 보았다. 비로소 그가 입꼬리를 약간 올리며 웃어 보였다. 나는 그가 나에 대한 예의로 일부러 억지웃음을 짓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집을 떠나려는 듯이 보였다.

 

나는 답답했다. 떠나려는 그를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 것 같아 무척 답답했다. 아니. 방안 가득한 사람들은 그가 떠나려 한다는 사실조차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마구 마구 소리질렀다.

 

“가면 안 돼요. 혼자 가면 안 돼요. 우리 같이 가요”

혼신을 다했지만 내 목소리를 그들은 듣지 않았다.

“안돼요!”

 

그리고 그 남자 또한 내 말을 듣는 것 같지 않았다. 어느 순간, 그는 돌아섰다. 그리고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돌아오세요, 제발. 함께 가야해요”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나는 숨이 막혔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점점이 사라지고 퀭하게 빈, 드넓은 들녘이 가슴을 덮쳐왔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보리짚 모자를 쓴 그 남자. 노무현이었다.

 

 

나는 침대에 기대앉은 채 오랫동안 숨죽여 울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파트 베란다 아래로 늦게 핀 목련 몇 송이가 어둠 속에 하얗게 웅크리고 앉아 사월의 때늦은 추위에 떨고 있었다. 피어날 때 그토록 기적같이 눈부시다가 낙화할 때 그토록 참혹하게 일그러지는 꽃이 또 있던가. 나는 뚝뚝 한 잎씩 허물어지는 목련을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달력을 보았다. 4월 30일. 4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가 떠난 이후로 오랫동안 그토록 가슴이 시렸는데 한 번도 꿈에서조차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비로소 처음으로 만난 것이다.

 

우리가 꾸는 꿈의 대부분은 대체로 평소에 생각하거나 느끼거나 상상하던 것들이라고 한다. 왜 하필 오늘일까? 그러고 보니 막 출간된 자서전 ‘운명이다’를 머리맡에 두고 잠들었다. 단지 그 이유일까? 또한, 지난 24일 토요일에 봉하 묘역에 자서전을 헌정하는 자리에도 다녀오기는 했다. 나는 노무현재단의 상임운영위원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재단 관계자들 열댓 분이 함께 다녀왔다. 그러나 그전에도 봉하 묘역에는 여러 차례 다녀온 적이 있다.

 

아무래도 오늘 찾아오신 이유가 뭔가 있을 것 같았다. 골똘히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전율이 가슴을 송곳처럼 찔렀다. 아, 오늘이 바로 그를 마지막으로 본 지 딱 1년째 되는 날인 것을!

 

2009년 4월 30일. 노짱은 검찰에 출두했다. 가장 부패하고 탐욕스러운 집단으로부터 역사상 가장 순결하고 부끄럼 많던 지도자가 불려나가야 했던 그 물구나무선 채 뒤집힌 타락한 현실의 소용돌이! 지금도 그날을 기억하면 피가 역류하는 것 같은 고통이 덮쳐든다.

 

작년의 바로 이날 나는 조기숙, 최민희와 함께 봉하에 갔다. 국가인권위에서 일했지만 나는 엄밀히 분류하자면 굳이 참여정부 인사도 아니었다. 그러나 가고 싶었다. 사면초가에 빠져든 그에게 혹여 봉하에 가는 것만으로도 작은 위안이 될까 하는 그저 그런 소박한 마음뿐이었다.

 

아침에 그가 검찰행 자동차에 오르기 전에 봉하 사저 회의실에서 어찌하다 보니 바로 그의 곁에 앉게 되었다. 그새 흰머리가 많이 늘어났고 다소 수척해 보였다. 차에 오르기 직전에 그는 권 여사의 흐느낌 소리를 들었던지 잠시 다시 회의실로 올라왔다. 그때 노무현 대통령과 나는 딱 마주쳤다. 나는 억장이 무너져 그를 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는 그런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리고 잠시 손을 잡아주었다. 따뜻했다.

 

“유 선생, 서프라이즈에 올린 글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위안을 받았습니다”라고.

그 글은 하도 억장이 무너져 잠들 수가 없어 전전긍긍하던 내가 일필휘지로 한 시간여 만에 써 갈겨 올린 ‘나는 노무현이로소이다’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많은 서프앙들이 다투어 읽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때 할 말을 잃고 그를 그저 바라보았다. 돌아서 나가느라 문고리를 잡은 그가 잠시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말했다.

“근데 날 변호하느라 좀 억지를 부렸더라”

그는 한순간 씨익 웃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를 본 마지막이 되었다.

 

꿈에서 깨어난 얼마 후에야 나는 문득 깨달았다. 보리짚 모자를 쓰고 집을 나서는 그의 표정과 억지 미소는 바로 일 년 전 그날의 그것이었음을. 나는 두 손을 찬찬히 펴보았다. 일 년 전 그의 손이 전해주던 온기가 상기 남아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노짱, 하늘에서도 편하지 않으신가요? 다 놓아버리셔요. 제발”

일 년 전 오늘을 생각하니 다시 잊었던 분노가 솟구친다. 노무현 죽이기 프로세스를 다시 작동한 그들이 한명숙의 무죄선고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사람 기죽지 않고 있는 현실이 통탄스럽다.

 

스폰서 검사의 그 구린내 나고 천박한 소란이 과연 검찰을 개혁할 수 있을까? 설령 몇 사람의 옷을 벗긴들 무슨 대수인가? 변호사 개업을 하고 더 돈을 많이 벌어들여 떵떵거리며 자자손손 잘 먹고 잘 살 텐데. 적어도 정치검찰에 관한 한 지금 세상은 완전히 뒤집혀 있다. 노짱이 그토록 ‘공직자수사비리처’ 신설을 주장한 것이 옳은 판단이었음을 뒤늦게나마 깨닫는 이들이 있을까?

 

고름이 살 되는 법은 결코 없다. 검찰은 송두리째 그 권력구조를 뒤엎는 제도로 개혁하기 이전에는 못된 버릇 고치기 어렵다.

 

꿈에서 만난 노짱은 왜 그리 불편한 표정이었을까? 무슨 말을 전하고 싶으셨을지 생각해본다. 그러다가 세상에나 내가 왜 이렇게 우둔할까 자책한다.

 

지금 노무현의 가치와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이른바 ‘친노’는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다. 각자 위치와 입장도 다르다. 그러나 한때는 ‘폐족’, ‘주홍글씨’로 몰리던 그들이 노무현의 죽음을 딛고 함께 부활하려 한다.

 

노짱은 스스로 그가 가진 그 마지막 목숨을 버림으로써 그를 둘러싼 미진한 세력에게 부활의 기회를 선사했다. 이는 새삼스런 것이 아니다. 그는 늘 ‘버림’으로써 가치를 세웠다. 나의 아우, 유시민의 경우를 보아도 그러하다. 그는 정치 입문할 당시에 내게 이렇게 말했다.

 

“누나, 나 정치 길게 안 할 거야. 그저 한 6년 남짓 쯤. 애국심이 부족해서 그 험한 일 길게 못 해. 노무현 무사히 마칠 때까지만”

 

시작할 때의 자세가 그러했기에 그는 재선, 삼선 금배지를 위해 또는 다른 더 높은 자리를 위해 계산하거나 교언영색하는 일을 일체 하지 않았다. 정치인은 백인의 우군보다 한 사람의 적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그는 정반대로 했다. 원칙에 어긋나거나 가치에 반하는 일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싫은 일은 하지 않았으며 이익이나 목적을 위해 두 얼굴을 갖지 않았다. 작당을 하기 위해 식사정치 음주정치를 하는 일은 아예 적성에 맞지 않았다.

 

결과로 열혈매니아 집단은 늘어났지만, 내부의 안티는 많아졌다. 지난 총선 이후 실제로 그는 정치를 접을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는 논객으로 살면 훨씬 빛나고 행복한 사람이다. 특히 민주당 내부의 적의를 생각할 때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노무현은 목숨을 버리시면서 그를 야권의 대권주자 1위에 올려놓아 버렸다. 이 역시 ‘운명이다’. 이는 유시민의 것이 아니라 참여정부 공동자산이므로 유시민 혼자 어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늘 경기지사 후보단일화 논의가 다시 불붙었다. 반가운 일이다. 이 글을 읽는 서프앙 여러분도 그동안 민주당이 유시민에게 퍼부은 융단폭격, 십자포화는 그만 잊어주시기 바란다.

 

정당인이 정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어찌 비난만 할 수 있겠는가? 김진표 후보 역시 훌륭한 분이고 두 사람이 힘을 모을 때라야만 거침없이 역주행하는 현 정부의 미친 질주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참 가슴 아프다. 민주당의 전략기획을 맡고 있는 이가 ‘유시민은 싫어하는 집단이 많아 절대 안 된다’는 소릴 버젓이 하는 현실이. 전에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김대중은 군부가 비토해서 안 된다’고.

 

유시민을 비토하는 세력이 누군가 생각해보라. 아무리 한국정치가 불가예측하다 할지라도 최소한의 금도는 지켜야 한다.

 

한밤에 홀로 오두마니 앉아 노짱을 추억한다. 결코, 늙을 줄 모르던, 그의 젊디젊은 시퍼런 기개와 수줍음이 많던 심성을.

 

그를 많이 닮았다는 나의 아우, 유시민이 노짱으로 인해 정치의 삶을 살면서 당하는 핍박과 음해와 고난을 생각한다. 분노와 슬픔과 연민이 교차한다. 이 역시 운명인가? 꿈속에서나마 그에게 물어볼 것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

 

노짱이 보고 싶다. 무척 그립다. 그가 하늘에서 오늘의 현실을 내려다보신다면 마음이 무척 고되고 불편하실 것이다. 그래서 정녕 꿈에 그런 모습으로 오신 걸까?
 
4월의 마지막 날에 이렇게 노무현을 만났다. 작년의 오늘, 그가 전해준 체온이 상기 내 손에 남아있는데 그는 가고 없다.

 

바라건대, 앞으로는 부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오셔요!


그리운 우리들의 친구, 바보 노무현!

 

유시춘(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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