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시민’들의 ‘깨어있는 무대’
- 노무현재단 출범 기념공연을 보고
강기석(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그들이 모였다
지하철 1호선·7호선 온수역 2번 출구에서 나와 성공회대 가는 골목길. 오후 6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도 벌써 어둠이 짙다. 길가에는 노란 풍선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 있다.
“아들, 이 노란 풍선들 어디서 많이 보았지?”
“응, 엄마.”
“어디서 보았더라?”
“응, 엄마. 저기 시골.”
“그래, 봉하마을에서 보았지?”
“응, 엄마.”
“또 어디서 보았지?”
“응, 거기. 학교.”
“그래, 덕수 초등학교 가는 길에서도 보았지?”
“응, 엄마.”
초등학교 1학년 쯤 되어 보이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행사장으로 서둘러 올라가는 젊은 엄마에게 물었다.
“덕수초등학교에서는 무슨 행사가 있었죠?”
“아, 녜. 거기 언론노존가, 언론시민단첸가, 얼마 전 미디어 악법 저지 자선행사가 있었어요. 거기 가는 길에도 이처럼 노란 풍선들로 길가를 장식했었거든요.”
“아, 그러세요. 그런 행사에도 아드님 데리고 다니시는군요.”
“그럼요. 얼마나 좋아요. 좋은 행사에 좋은 사람들 만나서 좋은 구경하고…. 이따가 얘 아빠도 회사 끝나자마자 달려 올 텐데요.”
큰길가로 나서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건널목에는 기대에 들뜬 표정으로 오누이처럼 팔짱을 끼고 꼭 붙어 있는 모녀, 심각한 표정의 대학생, 반대로 무엇인가 열심히 재잘거리는 10대 혹은 20대 초반의 여학생 무리, 나처럼 나이든 중년신사들, 동생이 탄 유모차를 미는 아들을 앞세운 젊은 부부까지…
찬찬히 살펴보니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단 한번 공연을 보기 위해 오늘 모이는 관중들이 아니라 지난해 촛불 때는 광화문에 모였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는 봉하마을 혹은 대한문, 서울역 앞에 모였으며, 그 밖에 반민주적이고 부도덕한 권력에 항의하는 어떤 모임에라도 기꺼이 팔을 걷어 부치고 달려들었던, 그런 각성한 시민들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이 아닌가.
그 분이 오셨다
7시 30분 조금 넘어 운동장 좌석을 거의 채우고 뒤편 스탠드를 완전히 꽉 메운 관중들이 갑자기 술렁거렸다. “그 분이 오셨단다.”
공연무대 오른 편 쪽으로 승용차가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권양숙 여사가 천천히 차에서 내려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관중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사님, 사랑해요!” 라는 소리가 비명처럼 여기저기서 터지고 이어 관중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힘·내·세·요·여·사·님”을 연호했다.
권 여사는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여전히 깊이 숨겨진 아픔과 슬픔을 누구나가 보았다. 건강이 아주 좋지 않음에도 여러분께 인사하기 위해 먼 길을 오셨다는 진행자의 소개가 없었더라도 권 여사는 오래 자리에 앉아 있을 만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도 누구나가 알았다. 아주 잠깐 인사만 하고 공연이 시작되기 전 권여사가 자리를 뜰 때도 관중들은 “사랑해요 여사님” “힘내세요 여사님”을 연호했다.
“건강하셔야 할텐데…”
옆 자리에 앉은 중년남자가 한숨처럼 내쉬었다. ‘여사님을 뵌 것은 좋았지만, 잠깐 뵙기 위해 너무 먼 길을 오시라 한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노무현에 관한 한 언제까지고 미안하기만 한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뮤지션이다, 철학자다, 사회개혁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노사모다
그래, “사랑해요, 여사님”이라 했지. 그렇게 연호하는 이 사람들은 사실 여사님만 사랑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사랑이 가득 차 있어야만 비로소 ‘사람사는 세상’을 열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연 오프닝 곡이 ‘All you need is love' 였던가 보다.
윤도현은 언제나처럼 좋았다. 언제나처럼 노래의 곡조도 좋았고 노래의 의미도 좋았고 그런 노래를 소개하는 그의 마음과 정신도 좋았다. 노 대통령 서거 후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꼈던 자신의 낙담을 ‘너를 보내고’라는 첫 곡에서 표현했다는 그는 오늘 모임에 와서 끝난 것이 아니고 다시 시작이란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노 대통령도 자신의 삶을 전혀 후회하지 않으실 거라며 ‘후회 없어’를 불렀고, 희망이란 단어를 찾기 힘든 세상에서 오늘 모인 관중들에게서 그 희망을 찾았다며 ‘깃발을 들어라’를 또 불렀다.
일산 빈소에 술에 잔뜩 취해 나타나 대성통곡했다던 조관우는 오늘도 그 이의 얼굴이 생각나듯 폐부를 찢는 듯한 처연한 소리로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을 부르더니 관중들이 모두 꽃송이로 보이는 듯 선글라스까지 벗어 던진 채 ‘꽃밭에서’를 불렀다.
늘 귀엽고 웃는 얼굴인 이한철은 정말 기분이 엎(up)된 듯 “기분좋다” “분위기 죽인다”를 연발했다. 자신의 노래는 즐거운 것 밖에 없는데 한동안은 노란색만 봐도 울적했다는 그는 재단을 통해서 다시 세상이 흥겹게 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흥분된다면서 기타를 두드려 가며 높은 나발소리에 맞춰 정말 즐겁고 신나는 노래들을 불러댔다. “심장은 왜 왼쪽에 있는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안을 때 상대방의 차가운 오른 쪽 가슴을 덥혀주기 위해서”라고 노래하는 그가 바로 철학자 아닌가.
순서를 기다리다 문득 “만일 당신이 꽃에 대해 가르치고 싶으면 스스로 꽃이 되라”는 최근 읽은 책대목이 떠올랐고 노 대통령이야말로 스스로 꽃이 된 분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강산에의 노무현 사랑은 또 어떤가.
“후회할거라면 싹 잊어버리고 후회하지 않을 거라면 소중하게 간직하라”는 그의 노랫말을 따라 부르고 “너는 보석같이 굴하지 않는 정신이 있으므로 반드시 해낼 것”이라는 대목에서는 더 목청을 높이는 관중들은 이미 범상한 공연장에서 범상한 노래들을 듣고 만족하는 범상한 관중일 수가 없었다.
그들도 참여했다
주최측과 관람자. 그 둘 사이를 이어주는 공연자. 공연마다 당연한 삼각구도지만 이 날만은 주최측도 공연자가 됐고 관람자들도 주최측이 되거나 공연자가 됐다. 번개처럼 모여서 아무리 힘든 일도 제꺽제꺽 해치움으로써 노무현 관련 모든 행사의 주인은 자신들임을 입증하는 자원봉사단의 위력은 이 날도 여실히 발휘됐고-아니, 점점 더 위력이 강해짐을 느꼈고-이젠 악기를 들고 혹은 아름다운 음성으로 무대에까지 올랐다.
‘하얀 우유빗깔’ 이란 공개적인, 그러나 어이없는 칭송을 받은 유시민은 하모니카를 멋들어지게 불어 제쳤고 노래방에서조차 노래를 부른 적이 없다는 조기숙도 장하진, 문성근, 정연주, 이재정 등과 함께 ‘행복의 나라로 가자’는 노래를 ‘잘’ 불렀다. 심지어는 하늘에 있는 노무현 대통령까지 영상과 음성으로 연주자들과 ‘함께’ 자신의 애창곡 ‘상록수’를 불렀다.
오로지 이해찬만이 언제나 관중들이 듣기 싫어하는 딱딱한 주최측 인사를 해야 하는 악역을 맡았는데, 그마저도 재단 출범 과정, 회원가입 현황, 앞으로의 계획과 그 달성을 위한 기부요청 등 자칫 딱딱하거나 어색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마치 약장수처럼, 재미있고 능숙하게 풀어냄으로써 그가 요즘 왜 부쩍 생뚱맞게 ‘잘 생겼다’는 소리를 듣는지를 입증했다.
그들의 의리를 칭송하다
이날 권 여사 말고 가장 많은, 뜨거운 박수를 받은 이는 강금원과 농부 구재상이었다.
강금원. 사심 없이 그저 노무현 대통령이 좋아 사재를 털어 후원했다는 그. 단지 그것이 죄가 되어 언론에 얻어맞고 정권이 바뀌자마자 검찰, 경찰을 제 집 드나들듯 했던 사람. 탈탈 털어서 먼지가 났다는 죄목으로 끝내 감옥에 간 사람.
권력이 바뀌고서도 왜 노무현 후원을 계속 했냐는 너무나 속물 같은 물음에 “내 고향사람들까지 의리 없는 사람들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서…”라고 우직하게 대답했다는 사람. 지금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다는 그가 박박 깍은 머리를 모자로 감추고 시린 무릎을 담요로 덮은 채 자리에 앉아 있다가 진행자의 소개를 받고 일어나 관중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는다.
농부라는 말을 붙여야 비로소 어디선가 들은 듯한 이름 구재상. 한번 본 적도 없는 노 대통령이 너무나 그리워 추수를 앞둔 자신의 논에 ‘그립습니다, 바보 대통령. 바보 농민’을 새겼다는 그. “꿈에서라도 노 대통령을 보고 싶었는데 못 이루고 오늘 겨우 권 여사님을 뵙고 마음이 좀 풀렸다”는 그는 자신이 수확한 쌀 중 일부를 봉하에, 재단에, 그리고 ‘없는 이’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했다.
세속의 권력과 부를 주고받고 나누는 계산에서 비롯된 조폭이나 장세동류의 의리가 아니라 인간 사이의 신뢰나 애정에서 우러나오는 의리는 언제나 우리를 감동시킨다. 노대통령도 언젠가, 파업현장에서였던가, 의리없는 놈은 사람도 아니라고 일갈하지 않았는가.
끝이 없는 핍박
강산에가 노래를 하는데 전혀 출연예고가 없었던 김재동이 무대로 올라 왔다. 말재간꾼이므로 무슨 말이든지 해야 할 텐데, 그리고 관중들도 그의 재치 있는 말 한마디라도 듣고 싶었는데 그는 영 말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무대를 내려갔다. 추측컨대 느닷없이 이곳에 와 그저 흥에 겨워 무대에 오른 것은 아닐까. “저 친구, 여러 방송에서 차례로 잘리고 있다는군” 하는 속삭임이 들려 왔다.
그러고 보니 윤도현도 그 때 그런 비슷한 꼴을 당했었지. 정연주 등 ‘프로젝트 밴드’ 멤버들도 대부분 권력 아니면 최소한 언론으로부터라도 그렇게 당했었지. 따지고 보면 여기 있는 유모차 끌고 온 저 분들도 촛불 때 그렇게 당했었지.
행사 자체가 그랬다 한다. 성공회대가 멀기도 하고 몇 달 전 ‘바람이 분다’ 행사 때 신세를 지기도 해서 기왕이면 시내 가까운 곳에 있는 널찍한 다른 대학을 여덟 군데나 섭외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고 한다. 순수한 문화행사라고 설명했는데도 그러했다 한다.
민주주의가 급격히 역행하고 보이지 않는 공포가 슬며시 우리들의 일상생활에까지 스며들고 있는 이 시대, 항의하고 반대할 만한 모든 이들이 벌거벗은 권력으로부터 모질게 당하고는 있지만 노무현을 둘러 싼 이들과 세력이 이리 몰리고 저리 차이는 수준은 항상 상식을 벗어나고 예상을 뒤엎는다.
왜 'Power To The People'인가
막 가을로 접어들었을 뿐이지만 야외의 늦은 밤은 꽤 추웠다. 그런데도 관중들은 공연이 끝났는데도 바로 흩어지지 않고 책 판매대에 몰려가 인산인해를 이룬 채 ‘프로젝트 밴드’ 멤버들의 사인을 받았다. 단순히 사인을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책을 사면 그만큼 정부의 돈을 더 받아 낼 수 있고 그렇게 재단이 살찌면 노무현이 꿈꾸던 세상을 더 빨리 당길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노무현이 꿈꾼 세상. 그것은 ‘프로젝트 밴드’의 이름처럼 ‘사람사는 세상’이다. 가수 이한철의 오늘 말처럼 ‘사람사는 세상’은 행복하거니와 그 기본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노무현의 말처럼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만 지킬 수 있다.
이 시대 한국은 링컨이 표방한 민주주의 정체(政體)의 3원칙 중 오직 ‘국민에 의한(by the people)’만 지켜지고 ‘국민을 위한(for the people)’은 사라졌는데 그것은 권력이 ‘국민의(of the people) 것’이라는 기본이 무시되기 때문일 터다.
그러므로 이제 권력을 ‘국민에게(to the people)’ 돌려준다 함은 민주주의 3원칙을 세우기 위한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와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오늘의 이 행사는 그 명칭부터가 주최측이 주장했던 데로 단순한 문화행사가 아니라 가장 위대한 정치행사였던 것이다.
책을 사려는 사람들 틈에 섞여 “또다시 영웅을 찾지 말라. 깨어있는 시민주권을 통해서, 시민들을 통해서 노무현을 극복하라”는 노무현 대통령이 제시한 주권회복의 방법론을 생각한다. 그리고 곳곳에 붙어 있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단 말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포스터들을 돌아본다. 오늘 관중들은 함께 모여 웃고 박수치고 율동하면서 얼마나 노무현을 극복했는가.
[사진으로 공연보기①] 자원봉사자, 그들의 아름다운 ‘power'
[사진으로 공연보기②] <사람사는 세상> 밴드와 시민합창단 사전연습
[사진으로 공연보기③] 여사님의 출연자 격려와 명사들 사인회
[사진으로 공연보기④] '깨어있는 시민'들의 '깨어있는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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