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한 방송사 프로그램을 통해 저탄수화물·고지방식이 소개된 뒤, 다이어트나 건강을 위해 이 식사법을 시도해보겠다는 열풍이 불었다. 친목카페에 하루 평균 100명이 가입하고, 대형마트에서 버터가 불티나게 팔렸다. 이에 대해 대한내분비학회 등 5개 학회(대한당뇨병학회·대한비만학회·한국영양학회·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가 지난 10월 '저탄수화물·고지방식이는 건강상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대다수 전문가들이 이 식사법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국민들이 헷갈려 하고 있다. 이 식사법의 장점을 주장하는 의사들은 대부분의 비판이 긍정적인 연구 결과를 무시하거나,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일방적인 주장 대신 근거를 제시하는 합리적인 논쟁이 필요한 시점에서 찬반 주장을 쟁점별로 정리했다.
심혈관 질환 관련성
▷비판론 “심혈관 질환 위험 높인다”
포화지방을 과다하게 섭취하면 지방이 혈관 벽에 달라붙어 염증을 유발하는 LDL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여,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에너지원으로 소진되지 못한 지방이 체내에 쌓이면 고지혈증 위험도 높아진다. 뉴질랜드 오타고대학 연구팀은 란셋지 최신호에서 25년간 스웨덴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 평균이 처음에는 감소했지만 결국 증가했다고 밝혔다. 스웨덴 국민 중 20%가 저탄수화물·고지방식을 하고 있다.
▷찬성론 “지방과 심혈관 질환, 관계 없다”
영국 캠브리지대학 공중보건대학 라지브 초우두리 박사팀은 지방 섭취와 심혈관 질환에 관련된 논문 78건(18개국 66만5884명 대상)을 분석한 결과를 2014년 미국내과의학저널에 게재했다. 그에 따르면 고기 같은 동물성 식품에 든 포화지방이나 코코넛오일 속 포화지방을 많이 먹어도 심혈관 질환 위험이 높아지지 않는다. 25년간 스웨덴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저탄수화물·고지방식을 하지 않는 국민까지 포함해서 이뤄진 것이므로, 저탄수화물·고지방식의 문제라고 단정할 수 없다. 2014년 미국 내과학저널에 ‘저지방식과 고지방식 비교 연구’를 발표한 연구팀은 148명을 저지방식 그룹, 고지방식 그룹으로 나눠 체중과 체지방량, HDL콜레스테롤, 중성지방을 1년 전후로 비교했다. 그 결과 고지방식을 한 그룹이 4개 항목 모두 긍정적으로 변화됐다. 특히 고지방식의 경우 HDL콜레스테롤 수치가 0.24㎎/㎗ 증가한 반면, 저지방식은 0.6㎎/㎗만 증가했다. 중성지방 감소 효과도 고지방식(0.24㎎/㎗)이 저지방식(0.07㎎/㎗)보다 좋았다.
케톤산증·뇌 기능 관련성
▷비판론 “탄수화물 과도하게 제한하면 뇌 기능 떨어져”
저탄수화물·고지방식으로 탄수화물 섭취를 극도로 제한하면 우리 몸은 에너지원을 지방에서 쓴다. 지방이 분해될 때 분비되는 케톤(대사물질)의 혈중 농도가 높아지면 두통이나 피로감 등이 생길 수 있고, 심할 경우 우리 몸이 산성화되면서 혼수 상태가 유발될 수 있다. 또 탄수화물이 부족하면 탄수화물 분해로 생산되는 포도당을 주 에너지원으로 쓰는 우리 뇌는 집중력을 잃을 수 있다.
▷찬성론 “케톤도 뇌 에너지원 될 수 있어”
저탄수화물·고지방식을 하면, 케톤산증이 생기는 게 아니라 우리 몸이 생리적케톤증 상태가 된다. 케톤산증은 당 수치와 케톤이 무한대로 증가할 때 발생한다. 반면 생리적케톤증 상태가 되면 우리 몸이 당 수치가 높아지지 않도록 조절하면서 케톤은 계속 만들기 때문에 케톤산증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저탄수화물·고지방식을 하면 3~4주 차에 케톤산증과 같은 증상이 생길 수 있지만, 대부분 그 시기가 지나면 증상이 사라진다. 케톤도 뇌 기능에 필요한 에너지원(포도당의 75% 수준)으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탄수화물 섭취 부족에 따른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저탄수화물·고지방식의 지속 가능성
▷비판론 “섭취 제한 어렵고 요요현상”
저탄수화물·고지방식을 하면 3~4주쯤 케톤산증 증상이 나타나고 탄수화물에 대한 욕구가 늘기 때문에 지속하기 어렵다. 이 식사법을 중단하고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순간부터 인슐린이 분비돼 살이 급속도로 찔 수 있다.
▷찬성론 “4년째 지속 중… 탄수화물 섭취 조절 가능”
고도일병원 양준상 진료과장은 4년 전부터 해당 식단을 지속 중이고, 부산이영안과 이영훈 원장은 2015년 5월부터 현재까지 저탄수화물·고지방식을 진행 중이다. 한식으로도 지방 80%, 탄수화물과 단백질 20%의 비율로 극단적이지 않은 식단을 짤 수 있기 때문에 지속할 수 있다. 생리적케톤증 상태를 만들어서 몸이 케톤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초기에만 탄수화물을 하루 20%로 제한하면 되고, 케톤 분비가 일정해지면 지방 섭취는 50%로 낮추고, 탄수화물의 경우 하루 밥 한 공기 분량으로 늘릴 수 있다.
☞ 저탄수화물·고지방食
밥·빵류 등의 탄수화물 섭취를 10~15% 이하로 제한하고, 고기·버터 같은 지방을 60~80%로 먹는 식단. 탄수화물(당) 섭취시 분비되는 인슐린 호르몬 분비를 제한해 지방을 먹어도 체내 저장되지 않고, 신체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도록 만드는 식단이다. 다이어트 효과는 반대론자도 인정하고 있다.
이보람 헬스조선 기자